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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Dec 28. 2022

출산 전 마지막 햄버거일 줄 미리 알았더라면

두 개 먹었을 걸

눈이 덜 녹은 토요일 아침 9시부터 장장 3시간에 걸쳐 병원에 대기하면서 4번의 피를 뽑았다. 지난주 수요일 임산부 당뇨(이하 임당) 검사가 있었는데 기준수치인 140보다 높아 재검을 받으러 간 것이다. 임당 검사를 받을 때에는 채혈하기 1시간 전에 포도당 50ml를 먹고 가는데 사실 피를 뽑는 것보다 이 포도당 먹는 게 곤욕이다. 그런데 재검을 받기 위해서는 검사 12시간 전부터 금식에 포도당도 기본 임당 때의 2배인 100ml를 마신다. 이걸 마실 때 혹은 힘겹게 마시고 검사 중에 간혹 구토를 하는 산모들도 있는데(실제로 엄청 울렁거린다) 이 경우에는 검사 날짜를 새로 잡고 금식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검사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이다.

< 병원에서의 3시간은 너무 길다 >


시간마다 주시 바늘 4번을 찌르는 줄 알았는데 손 등에 피가 나올 출구(?)를 만든 후 거기서 피를 추출(?)하는 모양이었다. 첫째 임신 중에도 임당 검사 후 재검에서 통과된 경험이 있는데 그때도 포도당 먹는 게 괴로웠다는 것 외에 다른 건 기억에 없다. 도착하자마자 공복 상태에서 채혈을 하고 뒤이어 포도당 원액을 5-10분에 걸쳐 대략 10번 정도로 나눠 마셨다. 김이 다 빠진 사이다 같은 맛인데 단맛의 밀도가 엄청 높다. 두어 번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물도 마시면 안 되기에 마른침을 꿀꺽 삼켜서 가라앉혔다. 이제 한 시간에 한 번씩 찔러 놓은 바늘을 통해 선붉은 피가 주사기를 채울 터였다.


힐끔. 자꾸 휴대폰에 눈이 간다. 주말이 지나고 임당 겸사 결과가 정상이면 문자로, 임당 확정이면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지출원인행위 결재를 올렸다. 단순 업무가 주는 최대 장점은 시간의 흐름을 가속화한다는 데 있다. 겨우내 짧게 빛나는 오후 햇살이 나무들의 그림자를 점점 길어지게 할 때였다. 손목에 차고 있던 애플와치에 진동이 느껴져 소매를 살짝 걷어보니 ‘ㅇㅇ산부인과’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하아,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 여보세요.

총 4번의 검사에서 2번 이상이 정상 혈당보다 높으면 임신당뇨인데 2번이 높다고 했다, 그러므로 임신당뇨 확정이라고. 빠른 시일 내 병원에 내원해서 원장님과 상담을 받으라고 했다.


임당-재검-확정 상담, 일주일 사이 세 번째 병원 방문이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더니 ‘안녕은 한데 이제 엄마는 고생을 좀 하겠네요’하신다. 원장님이 설명해 준 관리방법은 이러했다. 매일 일어나서 공복에 한 번, 나머지는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후 2시간마다 총 4번 채혈 후 혈당량을 기록하고 수치가 90-140 사이일 때는 정상범주이니 상관없지만 140을 넘긴 끼니에 대해서는 무얼 먹었는지 소상히 기록해서 병원 방문 때마다 원장님께 제출하기. 임산부 당뇨 카페에 가입해서 식단을 참고하면 좋다는 꿀팁까지 주셨다.

- 조절이 된다 싶으면 만삭 출산하는 거고 안 되면 내과 진료 연계하고 출산일도 조정해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너무 걱정은 하지 말고, 엄마는 이제 맛있는 거는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임산부 당뇨검사를 위한 키트는 10% 자부담, 나머지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비용 지원이 된다고 했다. 내 몫의 36,700원을 결제하고 약사님의 도움으로 시험 삼아 채혈을 해 보았다. 수치는 90. 계속 이대로 잘 유지되면 좋을 텐데. 운전하며 돌아오는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 끝이 아렸다. 거의 6개월까지 입덧으로 고생하다가 이제야 먹고 싶은 것 좀 먹나 싶었는데 식단 조절도 모자라 내가 내 손에 침을 찔러 피를 봐야 한다니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그것도 매일 하루에 4번이나. 노산에, 입덧에, 임당 확정까지! 얼마나 예쁜 녀석이 찾아오려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남편에게 상황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잠시 뒤 남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자마자 나도 모르게 나온 첫마디는 ‘망했어 엉엉.’이었다.

< 출산 때까지 잘 해 보자!>


어쩌면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난주 임당 검사를 하던 날 비가 왔는데 검사를 마치고 함덕까지 차를 몰고 가 새로 생긴 버거킹에서 와퍼를 와그작와그작 베어 먹으며 ‘여보, 이게 내 마지막 햄버거가 될지도 몰라.’하고는 해맑게 웃었더랬다. 그 말을 하지 말았을 걸, 말이 씨가 될 줄이야. 초초초번화가인 노형 이마트 옆에 하나뿐이던 버거킹이 동쪽으로도 하나가 생겨 좋다고, 밤 10시까지 영업이고 드라이브쓰루도 되니 촌에 다녀올 때마다 들러서 먹으면 되겠다고 얼마나 들떠서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그날 먹은 햄버거가 출산 전에 먹은 햄버거가 될 줄 알았더라면 두 개를 먹을 걸 그랬다. 맛있었는데, 혀 끝이 공허하다.

< 잠시만 안녕, 내 사랑 와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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