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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Apr 23. 2023

내가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이유

나는 내가 애틋하다

- 단유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모유량이 이렇게나 풍족한데...

둘째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옮긴 첫날, 조리원에서 퇴소하기 전에 단유를 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유방 관리 원장님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셨다. 남편과 다시 한번 상의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미리 준비해 간 답변을 차분히 말했다. 남편은 수유에 관한 한 100% 나의 결정을 지지하며 병원에서 단유약도 처방받아왔다고. 유방관리 원장님은 산모들이 산후조리원에 머무는 동안 원활한 모유 수유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모유 수유를 하도록 나를 설득하는 것이 원장님 본연의 업무에 더 가까울 터였지만 확고한 나의 태도에 한 발 물러섰고 ‘첫째에게 모유 수유할 때 행복하지 않았어요.’라는 나의 말에 이내 알겠다며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첫째를 키울 때 모유 수유를 했다. 제왕절개의 방법으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수술하고 3일 후 아기에게 처음 젖을 물릴 수 있었는데 젖을 무는 아기의 입이 얼마나 필사적인지 또 젖을 빠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이의 입에서 젖을 떼어냈던 기억이 난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젖냄새를 따라 젖꼭지를 찾아대는 조그마한 입술에 다시 젖을 물리며 깨달았다, 이 아이에게 내가 어떤 의미일지. 갓 태어난 아기가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말이다. 처음 젖을 물린 날을 시작으로 100일만 먹여야지, 6개월만 먹여야지 했던 모유 수유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까지 11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돌 전 아기는, 특히 신생아일수록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픈 탓에 아기의 밥줄인 나는 24시간 대기해야 했다. 아기가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면 낮엔 물론이고 자다가도 부스스 일어나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물렸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외출도 쉽지 않았다. 유축해 둔 모유를 다른 양육자가 수유할 수도 있겠지만 유축하는 과정이 성가실 뿐만 아니라 젖을 물리지 않는 시간 동안 젖이 또 불게 되므로 젖을 물리는 게 사실상 최선이었다. 휴대용 유축기를 챙기기 번거로워 그냥 외출할 때면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의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 하기는 힘들다. 젖이 불어 수유 패드를 적시다 못해 티셔츠 앞 섶을 적시거나 공중화장실 한 칸에서 급한 대로 두 손을 이용해 젖을 짜내고 있거나. 삶의 질이 급하강했다, 아니 삶의 질을 논하는 자체가 부질없었다.


단지 잠을 자지 못한다거나 외출하기가 어려워서 둘째에게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의 불편함은 젖을 물리는 동안 마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 웃음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 본질은 대체불가능한 밥줄의 역할을 또다시 감당할 것인가였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감당 여부는 O.K 그런데 기쁜 마음은...... 오랜 고민 끝에도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육아의 과정들 대부분은 부모로서 부부가 함께 할 수 있지만 모유 수유만큼은 전적으로 엄마인 아내의 몫이 된다. 임신 10개월을 오롯이 견뎌낸 것도 엄마인 나인데 다시 긴 시간 동안 나를 지우고 아기를 위해서만 존재하라니 자신이 없었다. 모유 수유는 한 번으로 족하다. “아기가 배고픈 거 같네, 얼른 젖 물려라." 하는, 아기가 우는 이유를 막론하고 '젖'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무해하면서도 무지한 말을 다시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조금씩 더 투명해지고 ‘젖’만 남게 되었던 과거와는 이별이다, 마침내.(헤어질 결심 서래를 따라해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빠르게 흘러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밤잠을 충분히 자거나 외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다.(외출은커녕 잠든 아기가 깨어나서 울까 봐 화장실 볼 일도 문을 열어 놓고 보는 신세임은 아이를 키워본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기가 보내는 배고픔의 신호를 놓치지 않아야 울음이 터지기 직전 앵두 같은 입술에 젖병을 안착시킬 수 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새벽 공기를 대차게 가르는 까랑까랑한 울음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질 수 있으므로 신속 정확은 필수이다. 품에 안은 아기가 가슴 쪽에 머리를 드밀며 코를 박을 때면 엄마 젖을 한 번도 빨아보지 못한 요 쪼꼬맹이가 젖을 찾고 그리워하는 건 아닌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더 꼭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게 된다.


모유를 먹어야 면역력도 생기고 머리도 좋아진다는데 우리 둘째 잔병치레가 잦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아마도 죄책감일 테다) 아쉬운 대로 초유는 병원에 있는 동안 먹인 걸로 위안을 삼을 수빆에. (요즘은 분유가 잘 만들어지니까) 또 모유 먹어야 머리가 좋다는 것도 애바애(케이스 바이 케이스처럼 애기 바이 애기), 남들 볼 것도 없이 돌까지 꽉 채워 엄마 젖을 먹고 자란 나만 봐도 진리는 아니란 게 판명되고도 남는다. 모유를 못 먹이는 대신 영양이 골고루 들어간 분유를 최대한 ‘정성껏 조유‘하고, 더 크고 요란하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엄마인 내가 나를 애틋하게 여겨야 내 새끼도 더 잘 돌볼 수 있지 않을까? 삶에 정답이 없듯이 육아에도 정답은 없다. 오늘도 현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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