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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Oct 22. 2023

아이의 두 번째 독립

아이가 유치원에 혼자서 갔다

- S누나는 좋겠다. 학교 혼자서 가고...

유치원 등원길.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느라 서 있을 때 S를 만나자 아이는 슬며시 잡고 있던 내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했다. S는 첫째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 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한 살 많은, 초등학교 1학년 누나이다. S는 보호자 인솔 없이 혼자서 등교를 하는 중이었다, 꽤 누나답게. 초록불로 바뀌자 아이는 횡단보도부터는 혼자 가겠다며 내가 들고 있던 태권도 가방을 가져갔다. 홀로 등교하는 누나를 보고 어떤 종류의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내일부턴 집에서부터 혼자 갈 거야!” 다짐인지 통보인지 모를 한 마디를 남기고 아이는 유치원을 향해 걸어갔다.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자못 씩씩한 자태로.


다음 날이 되자 아이는 정말로 혼자서 등원하겠다고 했다. 사실 아이가 혼자 등원하고 싶다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학기 초부터 계속되었다.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고려해 보면 아이가 혼자 유치원에 가는 데 있어 큰 문제나 어려움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먼저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유치원은 집에서부터 어른 걸음으로 5분, 아이 걸음으로 7-8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깝다. 신호등을 한 번 건너기는 해야 하지만 건널목 앞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이들을 지도해 주시는 교통 지도 도우미 어르신들과, 학부모님들, 선생님들까지 함께 계셔서 위험하지 않다. 그리고 아이는 늘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냐는 물음을 받을 정도로 키가 크고 덩치도 좋다. 태권도 하원 차량에서 내리면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까지 올 수 있을 정도의 용맹함(?)까지 갖췄다.


6월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남편과 등하원을 하던 아이였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혹시 잊어버려 집에 들어오지 못할까 봐, 또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게 무서워 아이 혼자서는 집 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일을 시작한 7월을 앞두고 변수가 생겼다. 방과 후 활동을 한다고 해도 오후 다섯 시에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남편 퇴근 시간괴 맞지 않았고, 나 역시 갓 100일을 넘긴 아이를 데리고 매일 집 밖에 나서는 게 쉽지 않았다. 태권도 학원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차량비를 추가로 내면 아이 하원부터 귀가까지 차량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가 상황을 이해하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처음 며칠은 내기 아기를 안고 1층으로 마중을 가주었고, 또 다음 며칠은 베란다 창문에서 아이가 공동현관에 들어서는 걸 바라봐 주었다. 혹시라도 공동현관문을 열지 못하면 바로 내려가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실수 한 번 없이 몇 번의 연습을 마친 이후, 아이의 ‘나 홀로’ 귀가가 자연스러워졌다.


'나 홀로' 귀가도 하는데 '나 홀로' 등원을 못하겠냐는 아이의 주장에는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태권도 차량이 집 앞까지 오는 것과 집에서부터 유치원까지 가는 건 다른 문제라는 것이 엄마인 나의 입장이다. 일곱 살은 미취학 아동으로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이고, 아파트 단지 내 지상 도로가 위험 요소이기 때문에 '나 홀로' 등원은 시기상조라 여겼다. 지하주차장 입구, 인도와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는 일단 멈추고 차량이 오가는지를 살핀 뒤 보행을 이어가야 하는데 일곱 살 아이에게는 다소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이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막아서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를 너무 과잉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예닐곱 살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지금 아이를 두고 하는 고민이 무색하기만 하다. 기억 속의 나는 여서일곱 살부터 두부나 콩나물을 사러 길 건너 가게로 심부름을 갔고, 차로 20여 분의 거리에 있는 이모 집에도 혼자서 버스를 타고 갔다. 아예 혼자서는 아니고 엄마가 터미널에서 나를 버스에 태워주면 도착 정류장에 사촌 언니가 기다리고 서 있다가 나를 받아주는 식이었지만.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에도 부모님의 동행은 없었다. 부모님들이 바빠 돌봄에 여력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땐 너도 나도 다 그렇게 컸다. 그래도 잘만 컸다. 그때랑 지금이랑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아이의 손을 붙잡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는 준비가 된 것 같으니 내가 슬쩍 놓아주기만 하면 되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스스로 걸음마를 떼던 날처럼.


여느 날과 똑같이 둘째를 아기띠에 둘러메고 혼자서 가겠다는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위험한 길목마다 멈추어 서서 좌우를 잘 살펴야 한다고 일러주면서 혼자 다닐 수 있겠는지 다시 한번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상기된 얼굴로 아이는 연신 알겠다고 답했다. 마음 속에서는 뿌듯하기도 서운하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약속한 대로 현관에서 인사를 나누었고 아이는 혼자서 갔다. 태연하게 아이를 보내고 문이 닫히자, 나는 분주하게 아기띠를 메고 아이의 뒤를 따라나섰다. 아이는 이미 저만치 가고 있었다.


엄마가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아이의 발걸음은 경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전날 일러준 대로 차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잠시 멈춰 좌우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길을 건너면서 도우미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고, 엄마와 함께 있는 친구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등교하는 형, 누나들 사이에 끼어있어도 내 새끼만 크고 선명하게 보이는 게 신기했다.(이런 게 후광?)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이가 정문을 지나고 유치원 입구까지 무사히 다다르자 안도와 섭섭함이 뒤섞인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에효, 울애기 다 컸네.' 가까운 길이 분명한데 멀게만 느껴진 건 버진로드 이후 처음이었다.


 뒤따르기 이틀을 더 하자 한 주가 끝이 났다. 아이의 뒤를 따르는 건 이제 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만 유치원 담임 선생님께 아이의 등원 독립에 대해 말씀드리고 혹시 모를 돌발 상황(사전 연락 없이 아이가 등원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도움을 요청드렸다. 첫 번째 잠자리 독립에 이은 두 번째 등하원 독립 또한 대성공이다. 아이는 더욱 주체적으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자신의 일과를 채우게 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야 했던 아이의 일상 중 내 손이 닿는 부분이 몇 개 남지 않았다. 서운함은 나의 몫일뿐, 아이는 늘 그렇듯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성장하고 있다. 혼자 등원하기 시작했을 때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벌써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분다. 부는 바람처럼 나의 시간에 잠시 머물다 갈 아이, 한 계절이 지났을 뿐인데 두 걸음 내게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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