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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Dec 15. 2022

여전히 비우는 중입니다

보관? 버려? 그것이 문제로다

비우고, 채우고,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며 산다. 비워야 채울 공간이 생긴다는 간단명료한 진리를 앞에 두고 또 고민을 하고 있으니 바로 쌓여가는 아이의 미술작품(?)들이다. 미술학원을 가네 안 가네 실랑이했던 기억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는 미술학원에서의 시간을 좋아하고 심지어 미술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다음 수업은 또 언제인지를 묻는다.


집에 와서도 배 깔고 누워 스케치북에 슥슥 그림을 그리고는 “엄마, 이거 봐봐!” 하고 으쓱한 표정을 지어댄다. 우선 돌고래보다 더 높은 톤으로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준 뒤 특히 잘한 점을 구체적으로 칭찬한다.(오은영 박사님이 시키는 대로) 색깔의 조합이 좋다든가, 우주괴물을 보며 이런 건 엄마가 생각하지 못하는 건데 상상력 있게 잘 표현했다든가.


미술학원에 세 번째 수업비를 결제를 했고, 그간 진행된 수업의 결과가 착실하게 집에 쌓이고 있다. 우선은 창가 싱크대 쪽을 쇼케이스 삼아 전시해두긴 했으나 볼 때마다 영 거슬리는 게 아니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뭘 하지 않는 거라는데 ‘투머치’가 따로 없다. 미술학원 작품만이 아니다. 유치원 가방에서도 매일 한 두장의 그림이 나오고 집에서도 하루에 대여섯 장은 기본으로 그림을 그린다. 스케치북으로 산이라도 쌓을 기세이다. 이 그림들도 보관하기 애매한 건 마찬가지이다.


버리겠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힘들게 그린(만든) 줄 아느냐며 없던 눈물까지 짜낸다. 몇 번 몰래 버린 적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버려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들을 협의 하에 정리한다. 아이의 말대로 아이가 정성껏 그리고 만든 것이니 그에 대한 저작권은 인정해 주는 게 맞지 싶다. 어린이집 다닐 때 만들어온 개구리 가면부터 최근에 만든 우주를 표현한 작품까지 '예쁜 쓰레기들'이 쌓여가는 이유이다. 조만간 가족회의를 소집할 계획이며 회의 안건은 ‘작품을 사진으로 남긴 후 처분하기‘가 될 예정이다.

< 너에게는 작품, 나에게는 예쁜 쓰레기 >


최근에 하루에 하나씩 비우자며 옷도 버리고 프라이팬도 버리고 베개도 버렸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주말에는 안방 침대를 옮기며 묵은 먼지를 청소하고 극세사와 구스로 겨울맞이 이불로 재정비했으며 오늘은 아이방에서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치웠다.


집 안뿐만 아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수익창출, 부업 등 광고를 목적으로 하는 의미 없는 팔로워들을 삭제했다. 얼마 없는 팔로워 수가 더 줄었지만 애초에 팔로워 수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숫자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휴대폰 연락처와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서도 많은 이름들을 지웠다. 더 이상 대화가 오가지 않는 휴대폰 문자와 카카오톡 채팅방도 과감히 버렸다. 1년에 한 번은 꼭 하는 일이다. 언젠가는, 혹시 연락할 ‘가능성’에 기대어 누르지도 않는 번호들을 보관하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브런치에서 구독하고 있던 작가들 중 몇몇을 구독 취소했다. 여름에 한 번, 이번이 두 번째이다. 오십여 명의 구독 작가가 사십 여 명으로 줄었다. 새롭고 참신한, 진정성 있는 문장들로 나를 매혹해 줄 작가님들을 만나면 언제든 구독을 누르기 위한 비우기이다. 브런치도 sns이며 작가-독자, 작가-작가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는 데 동의는 하지만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 글로써 성장하는 것에 치중하기로 했다.


아직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책장은 하루에 한 칸씩 정리를 해볼까 한다. 미처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한 마음의 부채와 두 번은 손대지 않는 책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이미 여러 번 읽어 손 때가 묻은 책들에 대한 애정이 책장 칸칸이 깃들어있다.


‘지적이다’라는 단어는 좋아하고 ‘허영심’이라는 단어는 싫어한다. 그래서 ’ 지적 허영심‘이란 단어는 내게 가깝고도 먼 느낌인데 책이 가득 들어찬 책장을 보면서 통장에 잔고가 쌓이는 것처럼 흐뭇해하는 마음은 허영이고 책을 읽으며 내면의 허기를 채우고 싶은 지적 욕망은 진정이라서 그럴 게다. 읽을 책들은 부지런히 읽고 손이 잘 가지 않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책들은 나눔이나 시설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허영의 잎사귀들을 떨구려고 한다. 잎새 하나 붙어있지 않은 겨울나무들이 추워 보인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무엇으로도 치장하지 않은 나무 그 자체가 더 단단하고 올곧아 보인다.

< ’지적‘만 남기고 ’허영‘은 버려야 할 나의 책장 일부 >


몸에만 다이어트가 필요한 건 아니다. 삶에도 간헐적 단식이 필요하다. 솜털처럼 가볍게 날리는 눈송이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나뭇가지도 부러지고 비닐하우스도 무너뜨린다. 아이의 작품이 예쁘다고 해서, 한번 맺은 인연이 소중하다고 해서,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계속 쌓아두기만 할 수는 없다. 털어낼 것은 털어내야 먼지가 쌓이지 않고 가벼워진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도 있다. 아기가 뱃속에 있어(꼭 이 이유때문은 아니지만 지금은 이 핑계를 대기로 했다.) 몸은 비록 무거울지라도 마음은 가뿐하게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중이다. 조금 이르지만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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