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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Dec 09. 2022

맛있는 건 못 참아!

초밥, 케이크, 초코과자

임산부가 된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이다. 그런데 희한할 정도로 먹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는다. 한 여름에 귤, 한 겨울에 딸기가(요즘엔 여름에도 귤을 먹을 수 있고 딸기는 아예 겨울 딸기가 제철이 된 것 같지만) 그것도 새벽에 먹고 싶어, 자는 남편을 한 번은 깨워봤어야 무릇 임산부라 할 수 있을 텐데 남편한테 뭐가 먹고 싶으니 사 오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 물만 마셔도 토한다는 토덧, 아니면 끊임없이 계속 먹을 걸 먹는다는 먹덧도 없고, 살이 홀쭉하게 빠진다거나 힘들어서 미리 휴직을 하는 그런 일도 없이 씩씩해도 너무 씩씩하다.(임신 초기 울렁거림 때문에 다소 힘들긴 했으나 먹을 건 다 먹었다.) 분명 감사한 일이긴 한데 남들이 보기에는 무난한(?) 임산부 생활을 하고 있어 그런지 가장 가까이서 나를 지켜보는 남편조차 나의 고단함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 살짝 서운하기도 하다.


먹고 싶은 건 딱히 없지만 맛있는 건 참을 수 없다.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가장 먼저 외식을 하러 간 곳은 초밥집이었다. 이십 대까지는 무조건 고기였지 회나 초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불에 지글지글 구운 고기를 한 쌈을 크게 먹고 보글보글 끓고 있은 두부된장찌개까지 한 숟가락 떠 줘야 제대로 먹은 것 같았다. 어쩌다 횟집에 가면 곁들이찬으로 나오는 옥수수 철판구이나 튀김을 주로 먹고 회는 초장을 듬뿍 찍어 초장 맛으로 몇 점 먹을 뿐이었다. 그런데 삼십 대를 지나 사십 대가 되고 나니 고기보다는 회가 좋다. 쫄깃쫄깃한 생선회를 고추냉이 듬뿍 넣은 간장에 찍어 오물오물 씹고 있으면 입 안이 바다 그 자체이다. 매운탕보다는 깔끔하고 담백한 지리를 선호하게 된 것도 사십 대가 되고 바뀐 입맛 중 하나이다.


아이가 아직 회를 먹을 줄 모르니 세 가족이 먹기엔 초밥이 간단하다.  오후 5시에 저녁 장사가 시작되는 초밥집에 5시 30분쯤 도착했는데 가게 내부는 이미 만석이고 줄 서기도 시작되었다. 요즘은 직접 줄을 서는 대신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대기번호를 알려주는 시스템을 활용하는 곳이 많은데 우리가 가는 곳도 그렇다. 일반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내 앞에 4팀이나 더 있었다. 볼 일도 볼 겸 2시간 조퇴를 했으니 망정이지 더 늦게 왔으면 엄청난 대기를 견뎌낸 후에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식사를 마친 후에는 온라인 줄 서기를 하고도 식당 문 앞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있었다.

< 30-40분 대기는 양호한 편이다. >


우리 부부는 메뉴 선정의 고민 없이 ‘오늘의 스시’ 두 개와 아이가 먹을 새우튀김 우동을 주문했다. 재밌는 건 아이는 새우튀김 우동의 국물과 면만 먹고 새우튀김은 먹지 않고 대신 초밥에 세트로 나오는 우리 몫의 새우튀김을 탐낸다는 점이다. 고기나 새우튀김이나 물에 빠진 건 아이에게 인기가 없다. 오늘의 스시에는 식전에 일본식 계란찜인 차완무시가 나오고 그날 그날 달라지는 초밥 10피스와 미니 우동, 튀김(단호박+새우)이 뒤이어 나온다. 연어의 말캉말캉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연어초밥을 나에게 넘기고 나는 장어구이초밥과 생새우초밥을 건넨다. 한 점을 입에 넣는다, 역시나 맛있다.

< 훗, 맛있는 거 옆에 맛있는 거!>


생일도 아닌데 케이크를 샀다. 딸기가 이제는 겨울 제철 과일로 자리를 잡은 모양새이다. 동네 단골 빵집의 인스타그램에도 딸기 생크림 케이크 피드가 올라왔다. 빨간 딸기가 담뿍 올려진 케이크는 하얀 생크림과 어우러져 보기에도 상큼해 보였다. 조각 케이크로 먹을까 하다 역시나 맛있는 건 참을 수 없으니 홀케이크릋 주문하기로 한다. 가장 작은 사이즈를 주문했다. 보통 2,3호는 2-3일 전에 주문해야 하고 1호도 전 날까지는 예약을 해야 하는데 다행히 당일 예약을 받아주셨다. 단골 하길 잘했다. 케이크 시트 사이에 생크림 말고도 커스터드 크림이 발라져 있어 달콤+고소한 맛에 더해 큼직하게 잘린 딸기가 알알히 박혀있어 먹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맛있는 건 매일매일 먹어줘야 하는데 맛있는 건 비싸다.

< 매일 먹고 싶은 딸기 생크림 케이크 >


(그나마)비싸지 않으면서 맛있는 것도 있다, 초콜릿 과자. 같은 초콜릿 과자라고 최애는 따로 있으니 바로 빈츠와 몽쉘 생크림, 그리고 아몬드빼빼로이다. 다음 진료에 임신 당뇨 검사가 있을 예정이라 마음 놓고 먹을 수가 없어 아쉬움 가득이지만 초콜릿 과자들이 보물창고(수납장 간식 칸을 보물창고라 부른다) 안에 가득 차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배가 나오면서 위가 눌리니 소화가 어려워 한 끼에 많이 먹기보다 조금씩 자주 먹는 쪽이 속이 편한데 끼니 사이 출출할 때 초콜릿 과자 하나 집어 먹으면 입도 심심하지 않고 배고픔도 가신다. 자꾸 손이 가지 않도록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 아몬드빼빼로 사와야겠다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먹으면서 얻어지는 기쁨이 큰 편이다. 아주 어릴 때에는 하도 안 먹어서 밥 한 술 먹이려면 회초리를 옆에 두고 억지로 삼키게 했었다는데 엄마의 기억에만 존재할 뿐이고 그 아이는 지금 없다. 엄마가 그때 나에게 한약을 먹이지 말았다면 내 인생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내 삶에서는 한 번도 마르고 날씬했던 적이 없다. 지금은 임신 중이라 뭘 먹어도, 살이 쪄도 면죄부를 얻는다. 마르고 날씬한 사람들은 임신을 해도 살도 안 찌고 배만 볼록 나오던데 나는 만삭도 아닌데 이미 틀렸다. 먹고 싶은 건 딱히 없지만 맛있는 건 참을 수 없는 이 식탐은 평생의 숙제가 될 모양이다. 일단 지금은 뱃속 아기에게 영양분이 갈 수 있도록 잘 먹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참을 수 없이 맛있는 게 세상에는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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