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가 필요해
날씨를 볼 땐 항상 내가 사는 제주를 제일 먼저 보고 그다음은 엄마 아빠가 계신 고향, 서울 순서로 확인한다. 영상 4도인데 영하 4도 같았다. 육지는 영하권의 온도였다. 털 달린 구스 패딩을 꺼냈고 아이는 내복을 입혀 유치원에 보냈다. 추운 날씨를 핑계 삼아 그리운 이들에게 안부도 전했다. 서울의 한기를 생각하니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서울에 살 때 겨울철 뚜벅이의 기본 착장은 롱 패딩, 어그부츠, 목도리 그리고 장갑이었다. 머리가 망가지니까 털모자는 퇴근하면서 썼다. 어디 식당이라도 들어가면 패딩부터 목도리, 장갑, 모자까지 벗어놓은 옷들로 빈 의자가 한 사람 몫을 할 정도였다.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사치이자 불가능의 다른 말일뿐이었다.
제주의 겨울은 육지의 겨울에 비하면 이빨도 채 나지 않은 하룻강아지이지만 몇 번의 혹독한 겨울은 있었다. 아이를 낳았던 2017년 겨울에도 눈이 많이 왔다. 육아휴직 중이었으므로 돌 전 아기와 함께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출근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작년에도 큰 눈이 몇 번 내렸다. 산1번지에 위치한 직장어린이집까지 아이를 데려갈 수 없어 아이는 남편에게 맡겨두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 인파에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느라 출근길부터 지쳤더랬다. 무척이나 낭만 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눈을 지독히도 싫어한다. 누군가에게는 설렘이겠으나 나에게는 진돗개 1호만큼이나 위험 신호이다. 도로와 길이 미끄러우니 운전하는 사람이나 걸어 다니는 사람이나 조심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현실적인 나의 시선일 뿐, 겨울이 되자, 아이는 은근히 눈을 기다리는 눈치이다. 하얀 눈 세상은 아이에게 즐거운 놀이터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
긴긴 겨울, 싸워서 이기지도 못할 추위를 마냥 못마땅해하며 지낼 수는 없다. 내게도 겨울이 좋은 한 가지 이유 정도는 있으니 바로 따뜻한 카페라떼이다. 카페라떼가 가득 담긴 머그잔을 양 손바닥으로 감싸 온기를 느끼는 것으로부터 음미가 시작된다. 완벽히 조화를 이룬 따뜻한 우유와 갓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어느새 벽난로 켜진 아늑한 거실 한가운데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몽글몽글한 우유 거품은 복슬복슬한 담요처럼 부드럽고, 달콤 쌉싸름한 커피맛은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만큼이나 여운을 남긴다. 호록, 두 번째 모금이 입 안을 가득 채우면 차가운 바깥공기마저 이미 봄이다.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아메리카노는 아무리 따뜻해봤자 다정하고 온화한 카페라떼를 대신할 수 없다.
겨울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붕어빵이 그렇고 호빵이 그렇다. 군고구마가 그렇고 호떡이 그렇다.(쓰고 보니 다 먹는 거다) 호호 불어가며 반을 뚝 떼어 옆에 있는 사람과 나누어 먹어야 제 맛인 것들이다. 혼자 먹을라치면 그 맛깔스러운 맛이 나지 않는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온기가 음식에도 전해지는 모양이다. 36.5도의 체온이 필요한 건 겨울 간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피부를 얼얼하게 만드는 칼바람에 맞서기 위해 우리에게는 서로의 온기가 필요하다. 어릴 때 두꺼운 이불속에 발을 넣으면 엄마, 아빠, 오빠의 살이 닿았는데 지금 손발이 특히 차가운 나에게 제일 따뜻한 난로는 남편의 배, 아이의 볼이다. 으, 차가워! 하면서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나의 두 손을 물 녹듯 녹여주는 화롯불 같은 두 남자 덕분에 이번 겨울도 걱정 없이 든든하다.
방구석 이불속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만화책이니 보면 좋겠지만 생계형 직장인에게는 배부른 투정일 뿐이다. 출근길에 나서며 외투의 옷깃을 세워보지만 틈새를 파고드는 차가운 공기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이 절실하다. 남편의, 아이의 따스함이 간절하다. 겨울을 견디게 해 주는 나의 사랑스러운 무기들이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위를 버티게 해주는 비밀병기가 있겠지? 뜨끈한 우동국물이나 휴대용 손난로일 수도 있겠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구세군의 빨간 냄비. 12월 1일 시종식을 가졌다고 한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시리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잔인한 계절임이 분명하다. 사실 남의 도움만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랄까. 하지만 도움을 주고, 받는 마음은 쌓인다. 그 마음이 가난마저 가난해지지 않도록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용기가 되어 줄 수도 있다. 주위 사람들과 온정을 나는 것도 좋지만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겨울의 온도를 1도만큼은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씰은 월드컵 주장, 손흥민 님이 모델로 나섰다. 직장에서 단체로 주문하는 거라서 키링과 씰을 신청했는데 아직 받지는 못했다.(작년에는 유재석 님이었다.) 학교 다닐 때에는 10장 세트를 사서 모아두곤 했는데 어느 순간 시들해져서 모으지 않다가 요즘은 키링으로 나오니까 자동차 키에 매달고 주변에 선물하기도 좋아서 몇 개씩 주문한다. 신청한 금액만큼 월급에서 자동으로 공제되는 시스템으로 주머니에서 직접 돈이 나가지 않으니 공짜로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요즘은 결핵 환자가 거의 없다고는 하는데 적은 돈이나마 좋은 일에 쓰였으면 좋겠다. 기부는 부자들만 하는 게 아니다. 작은 정성이라도 내어주는 사람이 부자이다,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 마음을 가진 부자. 작은 것들이 모여 큰 쓰임을 만들 것이다. 오늘의 카페라떼는 내일로 미뤄야겠다. 두 손으로 머그잔을 붙잡지 않아도 얼어붙은 몸이 아랫목에 들이민 엉덩이처럼 뭉근해지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