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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Dec 24. 2022

중고거래에도 품격이 필요하다

애증의 당근마켓

최근 안 방과 아이 방에 둘 공기청정기 2대를 당근마켓으로 구입했다. 거실에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구입한 2단짜리 공기청정기가 있지만 방에는 따로 없이 지냈는데 이번 겨울 유난한 추위 때문에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게 여의치 않아 추가로 구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기청정기야 필터만 바꾸면 새것과 다름없을 거라는 생각에 중고거래 앱을 탐색했다. 다행히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공기청정기들이 보였고 가격도 예상과 크게 빗나가지 않아 최대한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판매자에게 우선 연락했다. 상태도 좋고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고 구매 의사를 밝혔다. 다음 날 찾으러 가기로 약속을 정하고 대화를 마쳤다. 하나 해결.


또 다른 하나를 마저 구하기 위해 검색을 이어가던 중 A와 B가 후보에 올랐다. A는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고 가격은 125,000원, B는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으나 주말에 이동하게 될 장소 근처였고 가격은 80,000이었다. A와 B의 구매시기를 물어보았는데 A는 잘 모르겠다, B는 2021년 초라고 각각 답했다. 가격 차이가 45,000원 나는 데다 A의 답변이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져서 B를 구매하기로 마음먹고 주말에 찾으러 가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다음 날 찾아가기로 한 공기청정기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현관 앞에 두는 비대면 거래를 하기로 했다. 집을 나서는 중에 판매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출근하면서 깜빡 잊고 그냥 나왔다며 내일은 꼭 꺼내두겠다고, 미안하다는 메시지였다. 그 다음날 아침이 되자 판매자는 문 앞에 공기청정기를 꺼내 놓은 사진과 함께 처음 사기로 했던 105,000원에서 5천 원을 뺀 100,000원만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마도 전 날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분에 대한 에누리인 듯했다. 출발하기 전 판매자가 연락을 주었기 때문에 허탕을 치지 않았는데 5,000원까지 깎아주니 기분이 좋았다. 이 맛에 중고거래를 끊지 못한다니까!

< 쿨거래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


중고거래를 할 때 판매자 입장에서는 더 높은 가격에 물건을 팔고 싶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더 낮은 가격에 물건을 사고 싶은 게 흔한 마음이다. 그런데 판매자일 때 한 가지 고려할 점은 판매하려는 물건을 너무 높은 가격에 내놓으면 팔리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공기청정기 이외에도 시동생 결혼식 날 화동을 하기로 한 아이의 정장을 사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번 입고 말 것 같아서 우선은 당근마켓에 들어가 보았다. 마침 디자인과 사이즈 둘 다 아이에게 괜찮을 것 같은 정장 세트가 있었는데 가격이 45,000원이었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쿠팡에 들어가 남아 정장을 검색해보니 중고로 올라온 옷과 가격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이럴 때에는 새 옷을 사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한 번 사용한 새것 '같은' 상태일지라도 중고는 중고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옷은 아직도 팔리지 않고 있다.


구매자 입장에서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터무니없는 가격 흥정이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판매자도 충분히 고려해서 정한 가격일 것이기에 존중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은 판매글을 올릴 때 '가격제안불가'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서 '가격제안불가'라고 표시된 물건들에 대해서는 에누리 문의를 하지 않는 것이 기본 예의이다. 반면 판매자가 '가격제안하기'를 선택했다면 조금 더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선택했던 공기청정기 역시 '가격제안불가'였기 때문에 나는 105,000원 그대로 물건 값을 치를 예정이었으므로 예상치 못한 에누리는 작은 선물처럼 마음을 설레게 했다. 비록 5,000원일지라도 말이다.


 주말이 되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다행히 내가 생각한 것처럼 오늘의 목적지에 가는 길목에 있었다. 판매자가 물건을 가지고 주차장으로 나왔는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부는 추운 날씨라서 물건을 꼼꼼히 볼 수가 없었다. 판매자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필터 있는 부분까지 깨끗하게 청소를 해 두었다며, 정말 싸게 잘 사는 거라고 했다.  80,000원이면 싸긴 하지, 하며 물건을 트렁크에 실었고 그날의 여정을 마친 뒤 저녁이 되어서야 공기청정기를 집 안으로 가져왔다. 남편이 공기청정기를 안 방으로 가지고 가서는 작동 여부 확인을 위해 전원버튼을 켜는 소리가 들렸는데 곧이어

- 여보, 이거 언제 산 거래? 냄새 엄청나는데?

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작년에 산 거라고 했는데...

- 물건 받고 제대로 확인 안 했어? 곰팡이 냄새 엄청 심하잖아!

- 너무 추워서 확인은 못했는데 판매하는 사람이 청소 깨끗하게 했다고 했어!!

서로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중고로 사 온 공기청정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할 판이었다.

< 청소를 해 놓았다는, 가장 저렴하 판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배신감이 좀 덜 들었을까? >


필터 있는 쪽을 열어보니 눈앞에 펼쳐진 암담한 현실에 말문이 막혔다. 먼지와 곰팡이가 가득 끼어 있는 공기청정기의 상태는 그야말로 쌍욕이 나올 수준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필터는 새로 교체해야 할 수도 있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내부가 이렇게 엉망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구매를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판매자는 대체 어디를 청소했다는 것일까? 사진을 찍어 곧바로 판매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답이 없었다. 답이 없으니 더 화가 났다. 답장을 할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물건을 팔겠다고 올리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어떻게 사진까지 보냈는데 사과 한 마디가 없단 말인가? 집을 아니까 환불해 달라고 다시 들고 찾아갈까? 아무리 중고거래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필터만 교체해서 쓸 사람에게 무료 나눔을 하는 게 적당한 수준의 물건을 세상에 80,000원에 팔다니! 심지어 나는 그 돈을 주고 싸게 샀다고 내심 좋아했다. 돈을 주고 쓰레기를 사 온 꼴이 되어버렸다.

< 님아, 다음부터는 부디 매너거래 부탁해요. >


물음표와 느낌표가 계속 이어지며 별의별 생각이 들었지만 그 자리에서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나의 잘못도 있음을 인정하기로 하고, 소독티슈와 면봉을 가져와 공기청정기 대청소를 시작했다. 필터도 새것으로 바로 주문했다, 판매자가 말했던 쿠팡이 아니라 공식사이트의 정품으로. 공기청정기 80,000원에 교체 필터 구입, 청소로 인한 수고 비용까지 합쳐지니 차라리 새것을 샀을 걸 왜 중고거래를 했을까 후회가 밀려들었다. 최악에서 두 번째 중고거래였다.(최악의 거래 첫 번째는 아이 어렸을 때 육아용품을 사기당한 경험으로 돈을 먼저 송금했는데 물건이 오지 않았었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그때 날린 돈도 80,000원이었다.) 며칠 사이에 기분 좋은 거래와 기분이 상하는 거래 둘 다를 경험했다. 평균을 내면 쏘쏘(so-so), 평범한 거래였던 걸로 치자.

< 어느 쪽이 문제의 공기청정기일까? 공기청정기는 죄가 없지 뭐. 이렇게 된 이상 우리집 공기를 부탁해! >


새 물건을 사는 게 제일 좋기야 하겠지만 물건은 개봉과 즉시 중고품이 되고 가격은 떨어진다. 사용하다 보면 나에게는 더 이상 쓸모가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여전히 필요한 물건이 생기기도 한다. 중고 거래는 이러한 중고 물건을 재활용 함으로써 쓰레기를 줄이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개인 간 거래를 활성화시킨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긍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인격이 반영되어야 한다. 물건을 매개로 하지만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기에 중고 거래에도 품격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배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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