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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Jan 13. 2023

왜 먹지 말라는 건 더 먹고 싶을까?

두 번째 라면이야기

'오늘은 마음먹고 공부를 좀 해볼까?' 호기롭게 책상에 앉으려는 찰나 "공부 좀 해!" 하고 예고도 없이 날아든 엄마의 말 한마디가 공부를 향해 끓어 올린 결연한 의지를 단번에 꺾어버리곤 했던 경험 한 번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기에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잠을 자는 편을 택하곤 했다. 공부를 안 하면 안 했지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 지금 공부하려고 했는데! 엄마 때문에 다 망했어!' 나는 정말로 '스스로' 공부가 하고 싶었을 뿐이다.


왜 하라는 건 하기가 싫고,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을까? 비단 나이가 어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춘기를 지나도 한참 지난 40대 아줌마인 나 역시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으니 말이다.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라면이 문제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라면과 멀어진다고 하던데 밥보다 라면이 좋은 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에도 둘째를 임신해서 먹는 게 영 속 편하지 않을 때에도 라면에 청양고추 하나 썰어 넣은 얼큰한 국물을 곁들이면 밥 넘기기가 조금 수월했다. 토요일 아점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 우리 집에서 공식적으로 라면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으나 입덧으로 힘들어하는 동안에는 예외였다. 이게 원인이었을 거라 짐작하고 있다, 나의 임신당뇨.


지난해 12월 말(2022년을 지난 해라고 칭하는 게 이렇게 자연스럽다니...)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은 후 2주가 지났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루에 4번 채혈을 하고 당 수치를 확인해서 메모하는 일이 제법 몸에 익었다. 당 수치를 측정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인지라 되도록 국물 음식은 피하고 볶음김치와 계란 등 반찬위주로 밥을 먹었다. 현미와 귀리 같은 잡곡의 비율도 늘렸다. 그래서인지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당 수치가 거의 정상범위(90-140) 안에 머무르고 있다, 딱 한 번만 빼고.


엄마가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초밥을 먹으러 갔던 날이었다. 초밥만 먹겠다는 굳은 의지는 단숨에 꺾여버렸고(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건만...) 우동에 튀김까지 야무지게 먹은 뒤, 길거리를 지나면서는 뜨끈뜨끈하고 달콤한 즉석 풀빵의 유혹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고야 말았다.(이 정도면 애초에 굳은 의지 따위는 없었던 게 맞다) 몸은 참으로 정직도 하여 한 시간을 넘게 걸어 다녔음에도 무려 156이라는 당 수치를 기록하고야 말았다. 밀가루와 국물이 당 수치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두 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 나의 임신당뇨 일지. 병원에 갈 때 들고 가야 한다. >


밀가루와 국물의 완벽한 조합이라고 하면 라면을 빼놓을 수가 없다. 임당이 확정되자마자 햄버거만 못 먹게 된 것이 아니라 라면 또한 먹지 못하는 음식 최상위권에 랭크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정말 요상하기 짝이 없다. 라면이 무슨 산해진미도 아니고 안 먹자고 하면 안 먹을 수도 있는 음식이건만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자나 깨나 라면 한 번 먹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떤 산모들은 임신 당뇨나 다른 사람들의 권유가 없어도 엄마로서 아이에게 좋을 게 없다는 이유로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10개월 동안 라면이나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는데 나는 무슨 엄마가 이리도 모성애가 없단 말인가?


라면을 먹지 못하니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쯤 아빠가 오셨다. 엄마, 아빠가 1년 만에 제주에 오셨는데 집밥만 먹을 수는 없다는 구실을 핑계로 드라이브도 할 겸 두 분이 좋아하시는 해물파전을 먹으러 구좌까지 갔다. 해물과 야채가 밀가루보다 많음이 분명해보이는(그래야만 한다) 해물파전 2판과 문어라면 2개를 주문했다. 목적은 해물파전이었는데(밀가루는 조금이고 해물과 파가 더 많다, 고 여전히 믿고 있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해물 가득한 라면을 보자마자 나의 본성이 또다시 검은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슬쩍 라면에 젓가락을 담근 것이다. 다행인 건, 가늘게나마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 두어 젓가락 맛을 본 이후에는 젓가락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  문어라면과 해물파전. 이 사진의 주인공은 해물라면 너야, 너!  >


하지 않는 것과 못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람에게 자유 의지, 자발성의 발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 들어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내가 공부하고 싶을 때 하는 것, 자고 싶을 때 자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은 생각보다 그 영향력이 크다.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내적 동기에 따른 자기 통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때 우리 자신은 성취감을 통해 스스로의 성장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임신 당뇨 판정을 받기 전에 내가 먼저 건강한 식단으로 챙겨 먹고 운동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일주일에 한 번 먹는 라면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깨달음은 언제나 한 발이 늦다.


식단 조절의 시작은 임신 당뇨였지만 실천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의지에 따르는 나의 몫이다. 아침을 챙겨 먹게 되었고, 점심에는 집에서 도시락을 챙겨가기 때문에 학교 밖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다.(요즘 방학이라서 구내식당이 문을 닫았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으니 점심시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넓은 캠퍼스를 거닐며 가벼운 운동을 하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기도 한다. 모든 것이 선순환이다. 자고로 먹지 말라는 건 더 먹고 싶은 법이지만 지금 나는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이 모든 상황이 오히려 좋다고.

< 도시락 먹는 즐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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