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늉까지는 아니더라도
- 엄마, 육지할머니가 해주는 물 해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아이가 정수기 물 대신 다른 물을 달라고 했다. 아이가 달라고 하는 육지할머니의 물은 숭늉이다. 놀놀하게 밥을 눌린 뒤 물을 부어 끓여내는 누룽지와 숭늉은 육지할머니의 전매특허. 시판 누룽지를 사다 끓여봤는데 그 맛 일리가 없고, 돈만 버렸다. 아쉬운 대로 보리차를 끓이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커다란 주전자도 엄마가 제주에 왔을 때 사다 놓은 것이다, 숭늉을 매 끼니 끓일 수는 없으니 보리차라도 끓여야겠다고.
정수기가 있어도 엄마는 집에서처럼 물을 끓이신다. ‘귀찮게 뭘 끓여, 그냥 정수기 물 마시게 둬.’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엄마가 와 계신 동안에 나는 정수기에는 손도 대지 않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리차를 따라 마신다. 남편과 아이도 마찬가지. 엄마는 조금이라도 눈에 좋으라고 보리차와 결명자차를 섞어서 물을 끓이시는데 보리차만 끓였을 때보다 더 구수한 맛이 난다. 보글보글. 물이 끓는 소리가 난다.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주방으로 간다. 불을 끄고 주전자에 보리차와 결명자차를 하나씩 넣었다.
결혼 전에 서울에서 자취를 할 때에 엄마가 온다고 하면 비상이었다. 쓸고 닦고 치우고 정리하고 이만하면 됐다! 싶은데 회사에 갔다 오면 엄마는 욕실 하수구부터 창문 틈, 냉장고 구석구석을 반짝거리게 했다. 다음에는 나도 더 신경 써서 청소를 해 두면 엄마는 옷장 안, 싱크대 안 정리를 했다. 어떻게 하더라도 엄마의 날렵한 레이더망을 피해 가기는 어려웠다. 나중에는 그냥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시도록 두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엄마 마음에 쏙 드는 건 무리였다.
결혼을 한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엄마가 오시기 전엔 늘 대청소에 돌입한다.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고 정전기포로 다시 한번 쓸어내고 물걸레를 밀대로 밀어서 청소를 한 건데도 엄마는 기어이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는 주방부터 거실까지 손걸레질을 하신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 딸 둔 엄마는 싱크대 앞에서 고쿠라져 죽는다더니 내가 그 짝이네.
하신다. 밀대로 미는 건 소용이 없다며 손으로 싹싹 문질러야 깨끗하다고 걸레를 뒤집어 확인까지 시켜준다.
- 엄마 집이나 깨끗하게 하고 사셔. 너무 깨끗해도 안 좋아. 적당히 지저분한 데 살아야 면역이 생기지.
-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혀.
- 엄마 온다고 다 청소한 거라고!
- 청소 두 번 했다간 돼지우리가 따로 읎겄네.
내가 져야지, 당할 재간이 없다.
- 그려, 그려, 엄마 맘대로 하셔!
엄마를 보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른다. 사랑하는 소년을 위해 열매며 가지며 나무 기둥까지 다 내어주는데도 소년은 정작 자신이 나무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찾아온다. 그래도 나무는 소년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행복해한다. 나무의 모든 것을 가져간 후 늙은 노인이 되어서야 다시 나무를 찾은 소년이 쉴 곳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밑동을 내어주며 쉬고 가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엎드려 책을 읽다가 펼쳐진 책장에 얼굴을 박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소년을 사랑해서 소년에게 주기만 하는 나무가 안쓰럽고 욕심만 많고 나무의 마음을 몰라주는 소년이 미웠다. 책을 읽을 때에는 너무 어려서 나무는 그냥 나무였고 소년은 그냥 소년일 뿐이었는데 다 커서 다시 생각하니 나무는 엄마였고 철없던 소년이 바로 나여서 어느 날엔가는 또 한참을 울었더랬다.
- 엄마, 12월 말에 2주 동안 유치원 방학이야. 엄마 그때 오셔야 돼.
낼모레면 연세가 70이 되실 노모를 또 소환하는 전화를 한다. 결혼을 할 때만 해도 육십 대 초반이셨는데 곧 일흔이 되신다니 세월이 밉다. 오빠와 나는 둘 다 결혼을 늦게 했는데 우리 부부는 (아직까지, 곧 둘) 아이 하나, 오빠네는 둘을 낳았다. 우리 아이는 양가 통틀어 첫 손주였다. 육아휴직을 하기는 했지만 살림과 육아에 서툰 딸을 둔 엄마는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제주와 육지를 오가셨다. 17개월 뒤에 오빠네 큰 조카가 태어난 이후로는 엄마한테 도움을 청하기가 어려워졌지만 그전까지 우리 아이는 엄마가 다 키우신 거나 마찬가지이다. 아이도 그런 육지 할머니를 애틋해하는 구석이 있다.
올해는 엄마가 제주에 한 번 밖에 오시지 못했는데 할머니를 공항에 배웅하면서는 내내 웃는 얼굴이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 자기가 울면 할머니가 슬플까 봐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며 대성통곡을 하는 통에 나도 남편도 다 같이 엉엉 울었다. 엄마보다 자기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이 바로 육지 할머니라고 말하는 아이이다. 이제 몇 주만 지나면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이 오랜만에 상봉을 한다. 여름휴가 때 우리가 친정에 다녀온 이후로 5개월 여 만이다.
연례행사와 같은 엄마의 김장김치가 쌀과 함께 도착했다. 김치도 쌀도 사 먹겠다고 했는데 기어이 또 보내셨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마흔이 넘었어도 나는 여전히 엄마한테 어린아이와 다름없는 모양이다. 배추, 알타리, 깍두기 김치종류가 다양도 하다. 배추는 김장의 기본이라 치고 알타리랑 깍두기는 옵션인데 엄마 입장에서는 딸인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뺄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무 못나고 불효하는 딸이 되니까.
택배 상자에서 김치와 쌀을 꺼내 정리하는 남편에게 괜히 한 소리 한다.
- 여보 시험 합격하면 울 엄마한테 효도해야 돼 진짜.
- 갑자기 나? 왜? 내가 장모님께 불효해?
- 사위가 자기 딸 데려다가 호강시켜줘도 모자란 마당에 반대로 딸이 남편 뒷바라지하고 있는데 어느 부모가 사위가 이쁘겠어! 이거 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거야.
- 아닌데? 장모님이 당신보다 나 더 좋아해!
철없는 소년이 여기 또 있다. 엄마의 노후 전망이 밝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가 엄마한테 잘하고 있는 것도 하나 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하고 아끼며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딸 내외가 매일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한다면 가뜩이나 멀리 계시는 엄마 속이 얼마나 시끄럽겠는가. 엄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게 물질적으로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그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식은 보리차를 유리병에 옮겼다. 보리차에서 엄마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