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소중함에 대한 고찰
- 집이 텅텅 비었네.
유치원에서 하원하고 집으로 들어서던 아이가 말했다. 오늘 아침 아이의 육지할머니이자 나의 엄마가 다시 엄마 집으로 가셨다. 오실 때는 혼자였는데 가실 때는 뒤따라 오신 아빠와 함께라서 엄마를 보내는 마음이 조금 나았다. 처음부터 함께 지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던 20일의 시간은 늘 그렇듯 빠르게 흘렀다. 엄마가 오시는 날 하늘까지 부풀었던 마음이 엄마가 가실 날이 되자 바람 빠진 풍선마냥 쭈글쭈글해졌다.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엄마 품을 떠났으니 이제 엄마랑 같이 산 시간보다 독립해서 살고 있는 시간이 더 길다. 그간 무수히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지만 헤어짐의 순간은 엔딩 크레디트가 다 끝나가도록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여운 가득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쉽기만 하다. 엄마 집에 다니러 갈 때 엄마는 늘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마찬가지로 다시 서울 내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배웅을 잊지 않으셨다. 손님처럼 며칠, 짧게 다녀가는 어린 딸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제는 내가 늙은 엄마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있다.
지난겨울에 한 번, 여름에 한 번 그리고 꽤 오랜만에 이번 만남이 성사되었다. 상반기에는 여전히 코로나 때문에 이동하기가 조심스러웠고, 여름 이후에는 임신과 같이 찾아온 입덧 때문에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아이의 열흘간의 유치원 방학을 핑계로 나는 엄마를 소환했고 엄마는 응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 신부인 김고은이 불을 밝히기만 하면 어디든, 언제든 소환에 응했던 도깨비 공유처럼. 도깨비가 아니라면 산타클로스가 준비한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2022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제주에 엄청 많은 눈이 내렸었는데 바로 전 날 엄마가 도착했다. 하루만 늦었어도 비행기가 결항되어 예정된 날짜에 오시지 못할 뻔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산타할아버지는 여전히 다 알고 계셨다. 나에게 엄마가 필요하고, 나는 착한 아이라는 걸.
엄마가 올 때면 나만 들뜨는 게 아니다. 우리 집 꼬맹이도 외할머니를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유치원에 갔다 오면 할머니가 와 계실 거라고 거짓말을 해놓고 아이 하원 시간에 엄마랑 같이 아이를 데리러 갔다. 나는 옆으로 숨어 있었고 엄마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이는 한눈에 할머니를 알아보고는 싱글벙글 입이 귀에 걸렸다. 신발을 신자마자 가방도 잊은 채 할머니에게 한달음에 달려와 안겼다. 긴 그리움이었지만 포옹 한 번이면 충분했다. 아이의 머리가 할머니 가슴팍에 닿았다. 아이는 키가 부쩍 컸고 엄마는 조금 작아졌다. 시간은 제 할 일이라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흘러갔다.
아이는 3일 동안 외할머니와 함께 잠을 잤다. 폭설로 외출이 어려운 탓에 유치원 방학도 당겨서 한 꼴이 되었으니 72시간을 할머니와 붙어살았다. 아이가 할머니를 끌어안고 할머니 냄새를 맡으면 엄마는 연신 아이에게 볼을 맞추고 엉덩이를 두들겼다. 할머니가 오셨으니 누룽지에 숭늉도 먹을 수 있고 주전부리가 쉴 새 없이 아이 입으로 들어갔다. 창문 밖은 하얀 눈으로 얼어붙은 반면 집 안은 아이와 엄마의 웃음꽃이 활짝 피어 겨울인지, 봄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우리의 계절은 그저 행복,이었다.
반전 없는 인생이 있을까? 아이의 심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 건 정확히 3일 뒤부터였다. 3일 동안 내리 완전하게 충전되어 있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의 밧데리가 조금씩 방전이 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할머니가 며칠 내로 가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걸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할머니가 곁에 있는 것에 안도한 나머지 할머니의 존재를 당연하게 느끼게 된 것 같았다. 이제는 잠도 아빠랑 자고, 뺨을 맞대고 싶은 할머니를 피해 도망 다니느라 바빴다. 까륵까륵 웃으며 할머니랑 장난을 치는 모습이었으나 나는 '우리 엄마'에게 소홀해진 것 같은 '내 아이'가 사뭇 서운하게 느껴졌다.
- 할머니 서운해서 이제 안 오면 어떻게 하려고 해~~ 그러면 앞으로 방학에 제주도 할머니 집에 가 있어야 돼.
-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그냥 장난하는 거야. 나 할머니 좋아해.
- 좋으면 좋다고 말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이제 할머니랑 같이 잠도 안 자고, 할머니랑 뽀뽀도 안 하고 도망 다니고. 우리 엄마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니?
- 할머니랑 세 밤이나 같이 잤어! 아빠랑도 자고 싶으니까 그렇지~
- 세 밤이 뭐가 많아? 할머니 이제 또 금방 가시는데... 할머니가 3일짜리 할머니도 아니고...
- 뭐어? 3일짜리 할머니? 하하하하하하하하 엄마 그게 뭐야!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지!
그렇다, 아이 말이 맞다.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지 유통기한이 없다. 엄마가 온 지 벌써 3일이나 지났고 나만 혼자 하루하루 엄마가 갈 날짜를 세면서 마음을 졸이고 있음에 분명했다. 아이는 금세 할머니가 익숙해졌을 뿐이다. 할머니의 손길이,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할머니의 모습이 원래 우리 집에 있었던 듯 당연해진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등장은 신선했고, 반가웠지만 이내 눈에 익자 시들해졌고, 사소해졌다. 나는 엄마 품을 떠나고서야 엄마가 더욱 애달파졌지만 아이는 애달픈 마음이 뭔지 알 턱이 없을 터였다.
우리는 자주, 가까이에 있는 사소하고 소중한 존재들을 잊고 살아간다. 너무 눈에 익어서, 오히려 없다는 게 이상한 그런 존재들 말이다. 곁에 있는 가족, 나를 둘러싼 풍경들, 매일 쓰는 물건들까지. 이제 집에는 우리 세 식구의 온기만 남았고 엄마는 엄마의 자리로 돌아갔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을 뿐인데 느낌은 전과 사뭇 다르다. 아이의 말처럼 집이 텅텅 비었다. 3일짜리 할머니의 존재감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은 아이는 신발을 벗으면서도 잔뜩 코가 빠져있있고, 나는 코가 살짝 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