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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Nov 22. 2023

이런 ‘원 플러스 원’은 사양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얼마 전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내가 사는 곳은 남쪽이라 산간지역 말고는 눈이 내리진 않았는데 아침부터 비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날씨가 심상치 않아 겨울 패딩을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는 패딩을 한번 입어보고는 바로 벗은 뒤 기모도 없는 후드 점퍼를 입고 가겠다고 했다. 패딩을 입으니 ‘찝찝한 기분’이 든다며 불만을 표현했다. 작년에 사서 몇 번 입지 않아 충전재가 빵빵하게 살아있는 상태였다. 피부에 착 감기는 옷들을 입고 다니다가 갑자기 부피가 큰 구스 패딩을 입으려니 몸의 움직임이 전과 같지 않다는 말인 것 같았다. 그래도 타협할 수는 없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것보다야 부둥할지언정 따뜻한 게 백번 낫다는 엄마 입장을 관철시켰다. 오지 않길 바란, 오더라도 천천히 오길 바랐던 겨울이 이윽고 오고야 말았다.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는 봄, 여름, 가을보다 겨울에 챙길 게 더 많다. 집안 난방을 해야 하고 난방으로 건조해지는 공기를 촉촉하게 유지도 해야 한다. 차가워진 날씨에 기승을 부리는 독감 바이러스는 최대의 적. 아이들과 24시간 집에서만 생활한다면 모를까 부모는 회사,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으니 바이러스가 언제, 어디에서 침투하는지 알 수 없다. 마스크는 최소한의 예방일 뿐 사실상 무방비상태라고 할 수 있다. 아이는 벌써 몇몇 친구들의 독감 소식을 전해 왔고 남편 또한 아이가 독감이라 출근하지 못한 동료의 근황을 말해 주었다. 적들이 코앞까지 도달했음이다. 비상.


날씨가 풀린 틈을 타 주말에 아이들과 짧은 외출에 나서기로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며칠째 집에만 있던 둘째에게 원피스를 입혔다. 내복만 입다가 예쁜 옷을 입으니 기분이 좋았는지 연신 팔을 휘저으며 흥흥거렸다. 내 입술에도 오랜만에 생기가 돈다. 앵두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붉다. 목적지는 첫째 아이 겨울 옷을 살 옷 가게. 다시 찾아들 추위에 대비해 기모가 든 옷 상하복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구입하지만 가끔은 매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고 입어보고 사는 재미가 있다. 아이 손에 들려준 아이사크림 가격이 사악하기 그지없었지만 아이들에게 나들이의 묘미는 사 먹는 간식이지 않을까. 초겨울의 찬 공기가 두 뺨을 스치고 지나가면 곧바로 따뜻한 햇빛이 감싸 안아주는, 냉기와 온기가 묘하게 조화로운 오후였다.


두어 시간의 짧은 외출이었는데 대가는 혹독했다. 자고 일어난 아이의 얼굴이 발그스름할뿐만 아니라 퉁퉁 부은데다 눈도 퀭한 게 한눈에 봐도 아픈 아이였다. 체온계를 가져다 대어보니 39.9도, 빨간색이다. 한번 더 측정해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콧물이나 기침처럼 눈에 띄는 증상은 없는데 열이 이렇게나 치솟으니 일단은 해열제를 먹이고 휴식을 취해보기로 했다. 유치원은 당연히 결석이고 아이는 방에 격리되었다. 이제 막 8개월 된 아기와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1시간 쯤 지나자 열이 내리고 아이도 생기를 되찾았지만 오후가 되니 다시 열이 올랐다. 아이가 처지지 않고 밥도 한 그릇씩 비워 안도감이 들었지만 이제는 병원에 가야 할 터였다. 독감이면 어쩌나...


편도가 부은 게 열의 원인으로 보이지만 고열이 난만큼 독감 검사를 해 보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권유에 따르기로 했다. 코를 찌르는 코로나 검사와 달리 키트를 목에 가져다 대는 형태라서 아이가 겁에 질릴 새도 없이 검사는 금방 끝났다. 3만 원의 비용은 들었지만 음성 판정을 받으니 완전히 안심이 되었다. 다음 날까지도 39도를 넘겼다가 해열제를 먹으면 가라앉는 식으로 아이의 열은 오르락내리락했다. 모처럼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 있게 된 아이는 5분에 한 번씩 엄마를 불러댔다. 엄마, 물 좀. 엄마, 이마 좀 만져줘. 엄마, 물수건. 엄마, 리모컨. 엄마, 엄마, 엄마. 아이가 혼자라면 백 번 천 번 어리광을 부린 들 전부 받아주련만 둘째는 둘째대로 엄마의 손길과 눈길을 기다리고 있으니 몸이 하나인 게 애석할 뿐이었다.


시련은 금방 물러서지 않았다. 저녁 무렵 둘째의 콧구멍에서 말간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쌍콧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마에 손을 짚어보니 열감이 느껴진다. 순간 드는 마음은 ‘아, 망했다.’ 보다 ‘올 것이 왔구나.’였다. 첫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상황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격리를 한다고 해도 화장실 간다고 나오고, 과자 먹겠다고 나오고, 동생 보고 싶다고 보고 가고. 문제는 저녁 일곱 시가 다 되어 진료 가능한 동네 소아과가 없다는 것이었다. 급한 대로 동네 의원에 연락해 보았지만 대기 인원이 40명이 넘어 5분 내로 접수하지 않으면 진료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날아가지 않는 한 무슨 수를 쓰더라도 5분 내에 도착은 불가능했다. 또 다른 병원은 한 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지만 진료는 가능하다고 했다. 퇴근 중인 남편이 병원에 들러 접수를 먼저 하고 집으로 왔다. 전날 첫째를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만 해도 평일 낮이어서 그런지 대기 시간이 그렇게 길지가 않았는데 이번에는 퇴근하고 온 어른들,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온 아이들까지 병원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감기 환자가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열이 완전히 잡힌 첫째는 쌔근쌔근 잘 잤다. 아침이면 유치원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면 둘째는 콧물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했고 간신히 든 잠에서도 금방 깨어났다. 아이를 안아서 재우면 코막힘이 조금 덜한 것 같아 앉아서 잠을 잤다. 이틀째 밤을 새다시피 하려니 피곤이 몰려왔다. 둘째가 태어나고 아이 둘 다 아픈 건 처음 겪는 일이라 정신이 혼미한 지경이었다. 약봉지도 두 개, 시간마다 챙겨 먹일 약도 두 번. 육아 휴직 중이라서 아픈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아도 되고, 밤을 새워도 부담이 덜하다는 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아이가 두 명이 되고 웃을 일이 두배로 많아졌다. 오빠가 웃으면 동생이 따라 웃으니 말그대로 웃음이 '원 플러스 원.'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부부도 저절로 웃음이 났더랬다. 육아의 단맛에 빠져 쓴맛을 잊고 살았는데 아이들이 아프니 아이 둘 육아가 비로소 실감 난다. 마트에서 진행하는 원 플러스 원도 좋고, 오빠가 웃으면 따라 웃는 웃음 원 플러스 원은 더 좋지만 아이들 감기 원 플러스 원만큼은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다. 앞으로,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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