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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Dec 07. 2021

손 맛 좋은 엄마, 깔끔한 아내는 아니에요

것,것,것(못 하는 것,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

일주일에 한 번 반찬을 배달한다. 동네에 있는 반찬가게에서 3만 원 이상이면 무료 배송을 해주는데 보통 국이나 찌개는 7천 원, 다른 밑반찬들은 3-5천 원 선이다. 국 두어 가지, 반찬 서너 가지를 주문하면 일주일을 배 불리는 아니어도 적당히 먹을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요리를 못한다. 요리를 못할 뿐 만 아니라, 청소 등 집안일에도 소질이 없다. 소질이 없다고 말하면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밥도 하고 청소도 잘했느냐고 누군가가 꾸짖을 것만 같아 조금 더 솔직한 속내를 밝혀보자면 '하기가 싫다.' 집안일 하는 게 싫어서 회사 일 하는 사람이 '나'라는 사람이다.


못 하는 것

아이가 처음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친해져 제주에서 마음 붙이며 정을 나누는 아이의 친구 엄마는(이하 K) 말 그대로 '살림의 여왕'이다. 한 번씩 놀러 가는 그이의 집은 늘 단정하고 깨끗하다. 이야기 나누며 놀다 보면 커피를 두 잔 내려 마실 때가 있는데 설거지 늘리는 게 미안해서 그냥 마시던 잔에 달라고 하지만 늘 새로운 잔에 따뜻하고 맛있는 커피를 또 내어준다. 또 아이들을 놀게 하다 보면 밥때가 되기도 하는데 불고기며 김밥이며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로 나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배려심까지 갖췄다.

- 언니, 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언니는 일 하잖아. 그냥 편하게 먹고 놀고 가. 나는 애들끼리 노는 것만 봐도 그냥 좋아."

K가 모르는 게 있다. 나도 살림에 흥미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어떻게 해서든 전업 주부로 살았을 거라는 것. 반찬을 불러 먹으려면 돈이라도 벌어야 그나마 양심에 가책을 덜 느낀다는 것. 이렇게 엉덩이 붙이고 남이 해주는 음식 얻어먹으려면 비싸고 맛있는 빵이라도 두 손 무겁게 사 와야 한다는 것 말이다.


잘하는 것

지난 주말은 12월 치고는 날이 포근했다. 가까운 야외라도 나가보려 했지만 요즘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에, 변이 바이러스까지 심상치가 않아 그냥 집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카드 게임 3판을 하기로 했다. 집에 있는 날은 밥이 늘 고민이다. 평소 반찬을 주문해 먹는 걸로 잔소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주말 한 끼 정도는 내 손으로 밥을 차려주어야 할 것 같아(내가 꼭 해야 하는 집안일 중에 '끼니'가, 남편이 꼭 해야 하는 집안일 중에 '분리수거 및 아이 목욕'이 있다) 냉장고를 뒤적뒤적해보아도 요리를 해 먹는 살림살이가 아니다 보니 곤궁할 뿐이다. 다행히 사다 놓은 레토르트 국물떡볶이와 지인에게서 받아 온 부산어묵이 보였다. 아이 반찬인 비엔나소시지는 냉장고 단골이니 오늘의 아점은 '떡볶이'이다.(주말에 삼시세끼를 다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은혜로운 반조리 식품이여! 내가 가장 잘 하는 건 '반조리' 음식을 '조리'하는 것이다. 봉지에 쓰여 있는 조리법 대로만 하면 양도, 맛도 2% 부족하기 마련. 권장 물의 양보다 더 넉넉히 잡았으니 고추장 및 양념장(엄마가 고춧가루, 양파, 마늘 등을 갈아 오실 때마다 만들어 주시면 얼음틀에 얼렸다가 한 개씩 사용한다)을 적당히 풀어준 후 불려둔 넙적 당면과 떡, 비엔나소시지, 마지막으로 미리 삶아둔 삶은 계란까지 추가로 넣어주면 정말 돈 주고 사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떡볶이가 완성된다. 냉동 만두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식탁에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요리를 했다고도, 하지 않았고도' 말하기 애매한 한 끼 식사가 차려졌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음식은 뭐든 맛있게 먹으면 된다.


좋아하는 것

최근 두 명의 동료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은 대체 언제 책을 읽고 글을 쓰느냐고. (회사 내에서는 '주무관'이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는 것이 맞으나 동료 사이에서는 편하게 선생님, 혹은 '쌤(샘)'이라고 부른다.) 한 명에게는 아이가 잠든 시간 이후(지금도 밤 12시가 넘었다)에 한다고 했고 다른 한 명에게는 집안일을 안 하는 시간에 한다고 했다. 전자는 부지런하다고 했고, 후자는 술 처먹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책을 읽고 한 줄이라도 글을 쓰는 것이 삶의 낙이다. 왜 그렇게 '뺄라진추룩*' 하느냐고 타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좋은 데 이유가 있나. 다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데는 남편의 배려가, 아이의 엄마에 대한 존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편은 밤 10시가 되면 아이 양치를 시키고 씻겨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이야기놀이'를 시작한다. 아이는 엄마인 나에게 오늘도 공부 잘하라는 말로 굿나잇 인사를 대신한다.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포기가 빠른 편이고, 잘하는 일은 더 잘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은 계속해서 하고 싶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나를 옆에 끼고 앉아 책을 읽어주는 분은 아니었지만 끼니때마다 반찬을 만들어 주시는 분이었다. 집에 들어서기 전부터 풍겨오는 된장찌개의 냄새는 잊히지 않고 눈 감고 떠올릴 때마다 늘 엄마 집에서의 맛있는 시간으로 나를 데려다 놓기도 한다. 내 아이가 느끼는 엄마는 내가 나의 엄마에게서 느꼈던 손 맛 좋은 엄마가 아니라서 아쉬울까? 남편은 밭에 다녀오셔서 피곤하실 텐데도 집안을 정갈히 보살피는 엄마(시어머니) 같은 깔끔한 아내가 아니라서 혹여 결혼 생활이 불만스러운 것은 아닐까? 걱정과 우려 사이에서도 매일 나는, 우리 가족은 우리 만의 방식으로 '것, 것, 것'을 할 것이다. 나답게, 우리답게.


*뺄라진추룩: 평범하지 않게 튀는 행동을 하는 걸 표현하는 제주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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