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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Dec 23. 2021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만날 수 있는 이웃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에 대하여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된다. 카톡 알림이 떠서 휴대폰을 봤더니 위층 사는 언니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늘 아침에는 이런 곡이 좋아서요.

그야말로 심쿵, 이다. 사무실이라서 플레이는 하지 못하고 아껴두었다가 집에 와서 남편에게 자랑하며 음악을 들었다. 하루를 열기에도,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가사와 음악과 목소리였다.

나 떨리는 입술로
나 서툰 고백을 하오
참 멋쩍은 표정과 설레는 내 마음
내 숨겨왔던 용기로
나 서툰 고백을 하오
참 촌스러운 말투로 그대만을 위해
우리 함께할 그 시간이
우리 함께할 그날들이
이제 영원히 이제 영원히 내 곁에

​나 행복이란 선물로
나 서툰 고백을 하오
참 두근대는 마음과 설레는 내 마음
내 참아왔던 눈물로
나 당신 앞에 서 있소
참 어색한 그 말투로 그대만을 위해
우리 함께할 그 시간이
우리 함께할 그 날들이
이제 영원히 이제 영원히 내 곁에

오 나의 사랑, 함께할 그 시간이
내 사랑, 함께할 그 날들이
이제 영원히 이제 영원히
내 곁에 이제 영원히 내 곁에

- 최진 시, 곡


어떤 이웃과 정 나누며 살고 계신가요?

위층이 이사오던 날은 겨울이었다. 유아휴직 중이라서 낮인데도 집에 있었다. 벨이 울려서 아이를 안고 나가보니 내 또래 부부가 서 있었다. 첫 만남이라 어색한 미소를 띠고 있었던 중에도 선한 인품이 가려지지 않는 얼굴이 서로 닮아있었다. 육지에서 이사 오는 가족이라고 간단히 인사를 하고 나서 여자분이 말을 했다.

저희 집에 아이가 셋이에요.

아침부터 배를 타고 이동하느라 피곤하고 정신없는 와중에 아래층에 먼저 인사를 오다니, 요즘 보기 드물게 인정이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아이가 셋이라고 사전 공지를 하기 위함이었나 보다.(그 때 당시의 느낌일 뿐, 겪어본 바, 인정이 넘치는 게 맞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어지간히 민원을 들어봤던 눈치였다.

- 네, 아이들 크는 거 다 똑같죠. 신경 쓰시지 말고 마음 편히 지내세요.

팔에 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려고 하는 아기지만 곧 자라서 뛰어다닐 때가 되면 나도 이 아이에게 뛰지 마! 하고 소리치고, 아래층 눈치를 보며 인사를 가겠구나 생각하니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지내시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커야 하는데 아파트라는 공간이 주는 편리함을 위해 아이들의 천진함을 저당 잡힌 것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위층 부부는 시끄러우면 언제든 바로 연락 달라며 전화번호를 남겨주었다. 그게 위층 언니와의 첫 만남이었고, 인연의 시작이었다.


아이가 셋이라는 말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서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소란하지 않았다. 어쩌다 '투다다다' 잰 발소리가 들릴라치면 곧 잠잠해졌다. 아마도 언니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모양이다. 전화번호는 가지고 있었지만 층간소음으로는 연락할 일이 없었다. 우리가 연락을 하는 일은 이런 경우였다.

저 5층 사는 oo이에요. 떡 드셔 보세요.

위층 막내의 삐뚤빼둘한 손글씨에 한없이 커다란 감동이 몰려왔다. 꿀떡보다도 달달한 마음씨에 배가 부르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불렀다. 우리 집에 찾아올 손님은 거의 없는데 벨이 울리는 날에 나가보면 99%는 위층 손님들이다. 어떤 날엔 초등학교 3학년 큰 아들이 초당옥수수를 들고, 또 어떤 날에는 7살 둘째 딸이 체험 가서 따온 오디를, 떡을 가져온 날에는 5살 막내아들이었다. 언니한테 한사코 안 보내줘도 괜찮다고 말해도 언니보다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일이라고 하니 말릴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한쪽으로만 흐르면 곧 마르게 되어있다. 우리 집이 아래층이고, 위층이 아이가 셋이라고 해서 받아야 할 당연한 선의는 없다. 우리 사이에는 '호감'이 있다.

<위층 언니는 사랑입니다 :>
<위층언니와의 메시지는 주로, 또 서로  '감사합니다' 이다>


나에게는 아직 아래층 이웃이 있다.

위층 언니네가 내년 1월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큰아이가 내년이면 벌써 중학생이란다. 둘째와 막내도 다 초등학생이 되었다보니 아무래도 학원 픽업이 용이하고 학교도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의 이동을 선택한 모양이다. 그래도 육지로 다시 가지 않고 제주도 내에 머문다는 게 위로라면 위로이다. 아이들에게 방을 각각 내어줄 수 있으면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단독주택(타운하우스)으로 가게 되었다고 얼마 전 아쉬운 소식을 전해왔다. 언니와 오래 이웃하며 지내고 싶었는데 서운한 것은 내 마음의 문제이고 더 좋은 곳으로 이사간다고 하니 축하해주고 기뻐해 주는 것이 참된 이웃의 자세일 것이다.


아래층 이웃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아래층은 원래 건설사 소유의 아파트로 오랫동안 비어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아장아장 걸을 때에는 걷기에 쉽도록 바닥에 깔았던 매트들을 치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엄마가 아이를 봐주러 오셨던 때였는데 일하던 중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 딸, 어떡하지. 아래층 이사 왔어.

좋은 날 다 갔네.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아직 아기라서 가끔씩 물건을 놓쳐 쿵 소리가 나기도 하고 자기 흥에 취해서 후다닥 뛰기도 하는데 아래층이 예민한 분들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퇴근길에 빵 집에 들러 아래층에 인사 가기 위한 롤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서는 것이 아닌가? 본능적으로 3층에 새로 이사 온 분이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그런데

- 원장님!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이 왜 3층에서?

- 서율이 어머님! 이 라인 사시는 구나. 저 여기 이사 왔어요.

- 어머, 혹시 3층? 저 4층이에요. 아이쿠, 빵 받으세요. 안 그래도 지금 엄마 와계시는데 아래층 이사 왔다고 해서 인사 가려던 참이에요.

서율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원장님이 바로 아래층으로 이사를 와 새로 맞이하게 될 이웃이었던 것이다. 2년째 아이를 믿고 맡길 만큼 성품이 좋으신 데다 서율이의 활동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터였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 집에 도착하자마 엄마한테 원장님 만난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원장님 걱정에 심난해하셨다.

- 아이고, 그 양반. 시끄러워도 더 말도 못 하겄네.

위층 언니한테 배운  있어 아래층에 어떻게 할지는 이미 마스터해두었으니 걱정 마시라고 엄마를 안심시켰다. 아이에게도 이제 아래층에도 이웃이 생겨서 예전처럼 뛰면  된다고 계속해서 알려주지만 에너지 넘치고 화이팅으로 무장한 5 남아가 같이 앉아서만   만무하다. 아니야! 되도록 굵고 짧고 간결하게 주의를 준다. 그래도 여태껏 인터폰   울리지 않았다. 원장님, 아니 아래층 이웃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 뿐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고마운 마음은 속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겉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은 쓰라고 있는 것이다. 엉뚱한  말고, 사람이 머무는 곳에, 인연이 닿는 곳에, 아낌없이 펑펑. 내가  마음은 닳지 않고   사랑으로 되돌아온다.

<아래층 사는 요정님이 보내준 마음>

전생에 나라를 구하는 덕을 세웠다고 해도 만나기 어려웠을 좋은 이웃이 위아래로 있어 매년 추운 겨울도 또똣하게* 지낼 수 있나보다. 위층에 새로 이사 오는 이웃들도 마음결이 고우신 분들이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좋은 날은 현재 진행중이다.


*또똣하다: '따뜻하다'의 제주 방언


아침에 받은 '서툰 고백' 같이 들으실래요?

https://youtu.be/hQq6UQ9P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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