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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Jan 05. 2022

파송송 계란볶음밥 만드는 남자

파송송 계란볶음밥은 사랑입니다.

내가 반조리 식품에 일가견이 있다면 남편은 라면과 냉동식품의 전문가이다. 주말 아침 라면은 놓칠 수 없는 세 식구의 작은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9시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먹는 라면은 일종의 비타민과 같다, 마음에는 생기를 불어넣어 준달까? 몸에 좋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맛있으니 되었다. 남편과 나는 신라면+빨계면(김치) 조합에 청양고추 3개는 넣어서 알싸하게 매운 라면을, 아이는 뽀얗고 구수한 사리곰탕면을 끓여서 식탁에 머리를 맞대고 먹다 보면 공기 중에는 '후루룩후루룩' 하는 소리만 남고 그릇에는 국물까지 남는 게 없다. 밥까지 말아먹어야 라면을 잘 먹었다고 할 수 있다. 엄마 아빠가 라면이나 국수처럼 면을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하다 보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면을 좋아하게 되었다. 벌써부터 라면을 먹이냐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지인들도 있으나 아무거나 잘 먹는 게 우선이고 야채나 채소는 어린이집에서(만) 무척 잘 먹는다고 하니 영양소의 불균형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이 대에 따라서 시간을 체감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말이 있다. 10대에는 10km, 20대에는 20km... 나는 얼마 전에야 40대에 접어들었는데도 시간이 무슨 시속 100km 마냥 빨리도 달려간다. 한 남자와 함께 보낸 시간이 연애기간을 합치면 10년이 넘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나름 이십 대였는데(서른을 코앞에 둔 스물 아홉이었기 때문에 나름,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보았다) 올해 마흔 하나가 되었다. 물론 그도 눈부신 청춘이 한창이던 이십 대 중반에 나를 만나 지금은 서른일곱 아저씨가 다 되었다. 눈을 떴다 감으니 알콩달콩 연애를 하고 있었고, 또 눈을 떴다 감으니 우당탕탕 결혼이라는 걸 했고, 한 번 더 눈을 떴다 감으니 여섯 살 된 토끼 같은 아들이 곁에 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시간여행이 또 있을까! 다만 미래로만 진행 가능하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여행이라서 아쉬운 순간, 후회되는 말들을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다. 인생은 원래부터 그런 거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 할 걸, 미워하는 감정은 아껴두었을 걸 하는 마음이 든다.

다행히 아직 만회할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믿는다.)


남편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고, 아니 버티고 있는지 궁금하다. 남편은 서른 하나의 나이에 결혼을 했고 이듬 해인 서른둘에 아빠가 되었다. 요즘 늦은 결혼이 추세인 데 비해 빨리도 어른이 된 셈이다. 일찌감치 가장의 무게를 느끼며 이를 악물고 살다가 몸이 한 번 휘청이고 나서 퇴사라는 힘든 결정을 했던 그이다. 사람들은 외벌이 중인 내가 고생이 많다고,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며 대단하다고 추켜세우지만 사실은 서른 중반의 나이에, 아내와 아이도 있는 상황에서 수험생활을 다시 시작한 그의 용기가 더 대단하고, 결심이 더 단단한 것임을 알고 있다. 내가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조용히 응원하고 믿어주는 것뿐일 텐데 솔직히는 공부는 잘 되고 있는지, 합격은 할 자신은 있는지, 궁금하고 자꾸 묻고 싶다. 노래 가사처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또 내가 걷는 게 걷는 게 아니야.' 하는 심정이고 그야말로  '쿨하지 못해 미안' 할 지경이다. 얼마 전 부모님 일손을 도우러 귤밭에 다녀온 남편이 허리를 어떻게 다쳤는지 계속 고생이다. 남편 퇴사의 결정적 이유였던 목 통증이 잠잠한 가 싶더니 이제는 허리가 문제이다. 아내가 걱정할 것을 헤아리는 남편이 내색도 없이 아침마다 꿋꿋이 일어나 출근하듯 공부하러 나서는 모습이 짠하고 안쓰럽고 고맙기 그지없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 준비하며 머리를 감고 나왔더니 파송송 계란볶음밥에 노릇하게 구워진 떡갈비가 한 상이다. 볶음밥은 원래부터 그릇에 덜지 말고 웍 채로 먹는 것이 제 맛인 법이다. 라면만 잘 끓이는 줄 알았는데 파기름을 충분히 내고 계란으로 밥을 달달 볶아내니 노르스름한 것이 색도 이쁘고 맛도 꿀맛이다. 소금 대신 사랑을 한 꼬집 넣었나 싶다.(살아생전 내가 이런 표현을 쓰게 될 줄이야! 필명이 '달콤달달'인 데에는 다 계획이 있었던 거다.)

- 여보, 전업 남편도 문제없겠어!

농담 반에 진심 반을 섞어 남편에게 마음을 표현했다. 


모두 열심히 준비하는 시험이다 보니 남편의 노력에 운이 따라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가장 가까이서 남편의 수험 생활을 함께 겪는 중이라 그의 중압감이 내게도 전해진다. 그가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나는 지금처럼 회사를 잘 다니면 되고 남편은 전업 남편이 되는 것도 여전히 괜찮은 선택지이다. 남편이 회사일로 한창 바빴을 때보다 백수가 된 지금 부부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도 전업 남편에 힘을 실어준다. 남편은 공부를, 나는 일을 마치고 함께 먹는 저녁밥상이 즐겁다.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이 곁들여질 때는 서로에게 쉽게 하지 못했던 속내를 꺼내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음식을 앞에 두었을 때 가장 진솔하다.


남편이 아침과 저녁을 차려주고, 아이와 놀아주고, 틈틈이 나는 책을 보고 글쓰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편안하고, 다정하다. 남편과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연애를 시작했고, 엄마인 내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었지만 엄마 5년 차가 되었다. 남편이 멀지 않은 미래에 공무원으로 두 번째 직업을 가지게 될지, 전업남편으로 멋지게 살림을 꾸려나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두렵지는 않다. 그에게는 아이와 친구처럼 놀아줄 천진난만함과 친정엄마 못지않은 숨겨진 손맛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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