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달달 Dec 29. 2021

아내를 잃어버린 남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입술이 또 터졌다. 20대에는 입 안은 헐었어도 입술이 터지진 않았고 30대엔 '지인짜' 피곤할 때 어쩌다 한번 터지더니 40대가 된 올 해는 입술이 멀쩡한 날이 없다. 비싸고 좋다는 보습제도 이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조금의 피로에도 금세 볼록하게 입술이 부르튼다. 어깨도 결리다.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사십견인가?' 혼잣말하는 걸 들었는지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 속았어. 속았어.

<각 방 쓰는 부부입니다만>에서 남편의 철없는 모습이 큰 아들처럼 느껴진다 쓴 적이 있는데 문득, 네 살 많은 아내와 사는 남편의 속마음이 사뭇 궁금해진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29살, 남편이 25살이었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퍽 쑥스럽지만 나는 그때까지는(그렇다, 그때가 좋았다) 다소 동안이었고 남편은 다소 노안이라서 사귀기 시작했을 때부터 신혼 초까지는 우리가 연상연하라고 일부러 말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동갑내기로 봤다. 우리의 연애엔 '오빠'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호칭이 야, 너, 혹은 자기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나이에 비해 어려 보였던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싶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5년이라는 시간이 영화를 빨리 감기 한 것처럼 휘리릭 하고 지나고 나니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 위기다. 남편의 얼굴은 이제 제 나이를 찾았고 나 또한 곧이 곧대로 마흔의 얼굴이 되었다. 누가 봐도 내가 남편보다 나이 든 여자라는 게 티가 나는 모양이다.


조금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시내 출장왔다가 복귀하는 길에 직장에 잠깐 들른 남편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직장 동료는 남편에게 대학생인 줄 알았다고 해서 나에겐 적지 않은 굴욕감을, 남편에겐 묘한 쾌감을 안겨 주기도 했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그는 서른여섯이고, 나는 마흔 살이다. 머릿결은 푸석푸석해졌고, 피부는 탄력을 잃었다. 나잇살까지 더해져 몸무게 앞자리가 바뀐 뒤로 결혼반지는 손가락에 자리하지 못하고 케이스에 고이 담겼다. 수줍음은 희미해지고 억척스러움은 짙어졌다. 나이는 죄가 없다. 세월을 핑계 삼아 내가 변했다. 1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한 남자의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에서 아내가 되었다가 이제는 엄마가 되었다. 맡은 역할에 따라 주변의 공기가 바뀌고 내뿜는 감정의 색깔도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스물아홉의 내가 아니다. 남편도 변한 내가 낯설지 않을까.


사실 나는 결혼이 하고 싶지가 않았다. '엄마'는 더욱 되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사랑 표현이 넘치는 분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짧게 풍요롭고 오랫동안 팍팍한 살림을 살았다. 무뚝뚝하고 매몰찬 남편은 엄마를 여자로 충분히 사랑해주지 않았고 자녀인 우리에게도 자상한 아빠는 아니었다.(아빠도 나이가 드셔서 할아버지가 되고 나니 많이 변하셨다. 지금은 전에 내가 알던 아빠가 아니다. 아이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같은 육지할아버지가 되셨다.)


경제적 곤란과 애정이 결여된 결혼 생활이 주는 고통과 비참함 따위의 감정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내 곁을 떠날까 종종 불안했고 엄마를 붙잡을 유일한 방법일 거라 생각해 착한 딸이 되기로 했다. 일찍 철이 들었고 포기를 먼저 배웠다. 아이가 원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은 순전히 부모의 욕심이라는 생각을 줄곧 해왔던 것 같다. 겉으로는 밝고 유쾌한 아이로 완벽하게 위장하는 데 성공했지만 행복한 아이는 아니었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은 싹조차 틔우지 못할 만큼 척박한 마음을 가진 채로 어른이 되었다.


남편은 구김이 없고 유하다.(가끔 철이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첫 손주가 태어나자 너무도 예뻐서 만지면 닳을세라 보면 녹을세라 애지중지 돌봐주셨다고 들었다. 아버님은 8남매 중 장남이신데 남편이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 댁에는 결혼 안 한 고모가 여섯이었고 작은 아빠도 있었다. 막내 고모는 중학생 때 조카를 보기 위해 집까지 뛰어올 정도였다고 한다, 양손에 각각 기저귀와 분유를 사 들고서. 남편이 어떤 사랑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가히 짐작되는 바이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애정 표현이 넘치시는 분들은 아니지만 속사랑이 깊은 분들이다. 결혼하고 몇 개월 간 떨어져 있을 때 한 달에 한 번 제주에 내려와 시댁에 가면 아버님께서 오느라 고생했다며 내 손을 붙잡고, 등을 도닥여주셨는데 따스한 온기가 서울에 돌아가서도 오래도록 떠오르곤 했다.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도 아버님께서 고기를 구워 주신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직업의 유무와 관계가 없다)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면모와는 별개로 다정히 뚝뚝 묻어난다. 남편의 다감함은 아버님 마음의 결을 닮았다. 결핍 없는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꿈을 키웠을 남편은 우리가 처음 사귀기 시작할 즈음부터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고작 스물다섯의 나이였는데도 결혼에 대해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그가 나는 신기했다. 6년의 시간 동안 남편은 나의 메마른 마음에 사랑으로 씨앗을 심고, 스스로가 양분이 되어 싹을 틔웠다.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어쩌면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모성애가 폭발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것도 어색했고, 까만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조그만 입으로 내 젖꼭지를 힘차게 빠는 모습도 낯설었다. 목욕시킬 때는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했고, 잠을 잘 때는 아이가 숨을 잘 쉬는지 가슴에 귀를 대보기도 했다. 이 하나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사명인 것처럼 엄마 노릇을 해내기 위해 애썼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치르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엄마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지금도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육아 관련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 엄마 뭐해?

아이가 다가와 물은 적이 있다.

- 엄마? 공부중이야, 좋은 엄마 되려고.

- 엄마는 지금도 충분히 좋은 엄마야!

아이의 말에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엄마로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남편은 자기만을 사랑해주고 바라봐주던 아내라는 존재를 잃었다. 아이에게 사랑을 다 쏟다 보니 남편에게 줄 사랑이 늘 부족하다.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날마다 새로 충전이 되는데 남편에게 주는 사랑은 총량이 정해져 있는가 보다. 지금은 거의 방전 상태에 가깝다. 아마도 아이가 부지런히 자라서 독립을 한 후에야 온전히 남편의 아내로 다시 곁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남편은 여전히 나를 1등으로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 오늘은 아이를 일찍 재우고 남편한테 슬쩍 고백해야겠다.

사랑한다고.




이전 01화 ‘레기’라고 불리는 남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