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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Jan 27. 2022

몰래 휴대폰 바꿔주는 남자

 돈이 좋긴 좋더라!

새것이었던 휴대폰이 구형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업그레이드된 기능을 탑재한 새로운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_홈버튼이 사라지고, 화면이 커지고, 카메라 기능이 좋아질뿐더러 얼굴인식으로 휴대폰 잠금을 해제함_슬쩍 갈아타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1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휴대폰을 별다른 이유 없이 구입하는 것은 가격적인 면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익숙함을 꽤나 선호하는 편이다 보니 손에 익은 편안함을 새로운 낯섦에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도 새 휴대폰이 망설여지는 이유였다.


아이팟이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 땐 나도 얼리어답터인양 시류에 편승하기도 했으나 고3 때 처음 듀얼폴더를 구입한 이후로 이십 대까지는 계속 삼성의 휴대폰을 사용했다. 아이폰 4s가 출시되고서야 삼성에 온전한 이별을 고하고 애플의 세계로 이동했다. 4s와 6, 8까지 배터리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수리한계비용을 초과해야만 다음 모델로 갈아탔는데 가장 최근까지 사용한 아이폰 8은 고장 한 번 없이 4년 간 내 손 끝이 닿는 곳에 늘 있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 법인지, 평범한 일상 중특별한 하루의 나비효과 때문이었는지, 친구들과 길을 걷던 어느 밤에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손에서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졌다. 누구와 부딪힌 것도 아니고 작동 중에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부지불식간, 별안간에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움을 즈려밟고 나란히 걷는 밤공기가 퍽 달큰해서 쩍 하고 금이 간 휴대폰 액정이 생각보다 쓰리지 않았다. 1년도 넘게 못 만났던 30년 지기들을 보기 위해 비행기까지 타고 날아왔는데 아무리 휴대폰이 망가졌다고 한들 한껏 달뜬 마음이 쉬이 풀죽을 쏘냐. 다만 곰돌이 모자를 쓰고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깨져 보이는 건 조금 문제였다. 100일 기념으로 찍어 휴대폰 배경으로 설정한 뒤로 한 번도 바꿔본 적 없는 최애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동작에 이상이 없어 충분히 사용이 가능했기에 액정을 수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몰래 주문한 휴대폰이 떡하니 도착했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눈을 얇게 뜨고 타박하면서도 '그럼 반품할까?' 하는 물음에는 나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고 내 쪽으로 택배 상자를 슬며시 끌어당겼다. '견물생심'이라더니. 현실은 12개월 무이자 할부이나 마음은 진심으로 선물이었을 새 휴대폰을 못 이기는 척 손에 쥐어보았다. 몇 가지 간단한 터치만으로 이제는 완전히 구형이 된 휴대폰 속 정보들이 아이폰 13으로  완벽히 이동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대놓고 표현하기가 왠지 멋쩍어 휴대폰이 커서 한 손에 안 잡힌다며 은근히 단점을 이야기해 보았지만 좋은 건 좋은 거였다. 무엇보다 한층 커진 배경화면 속 아이의 웃음이 한결 환해 보였다. 새 휴대폰의 여러 기능 중 카메라 인물사진 기능은 정말 뛰어나고 배터리 또한 하루 종일 사용했는데도 아직 많이 남았다.(만족스럽군, 후훗!) 휴대폰을 바꾼 뒤 휴대폰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며 괜히 사줬다고 투덜대는 남편에게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썩히는 게 더 아깝지 않냐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봤자 돈이 좋긴 좋다는 뻔한 속내를 더 이상 감추기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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