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오랫동안 헤어졌다가 우연히만나는 것
"이것은 무엇일까요?"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선물 받았다. 돈으로는 살 수도 없으며 가치로는 그 사랑과 진심을 측정할 길이 없다. 여름철 별미다. 몸매는 날씬하나 몸이 쭈글쭈글하다. 입맛 없을 때 요거 하나면 밥 한 공기 뚝딱이다. 김치 냉장고를 열고 김치통을 꺼내어 뚜껑을 여는 순간 돌덩어리 세 개가 나란히 누워있다.
돌 사이사이로 빛이 반사되는 듯 상큼한 라임색의 이것은 바로바로 짜잔 공개한다.
오이지오? (거꾸로 읽어도)
송송 동글동글 썰어서 오이지 냉국이나 꼭 짜서 새콤 달콤 오이무침을 하면 된다. 이 정도는 눌러줘야 명품 오이지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보이시나요?
잠시만요~~ 아재 퀴즈 하나 풀고 가실게요~주황 당근과 초록 오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당근 당근 당근이 이긴답니다. 왜일까요? 오이가 묻히니까요 오이무침(땅에 묻힌다) ㅎㅎ
"여보세요, 아우님 나야~" 낭랑하고 고운 목소리는 오이지를 담근 자가 분명하다.
"누구세요? "하지만 넌지시 확인을 한다.
" 나를 잊으셨나요? 나야 나" 한번 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후
"잠시만요... 아~아 "그제야 아는 척을 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2019년 7월, 그리고 2021년 7월
정확히 2년 만의 만남인지라 너무너무 오랜만... 해후(邂逅)였다.
코 시국인데... 얼굴을 보여달라고 전화가 왔다. 주말인데... 아들이 집에 왔는데... 난 한걸음에 달려갔다. 충청도 당진이다. 기막힌 우연이 인연이 되어 내 글 16화 '하늘이 맺어준 인연 ' 박 시인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토요일 오후, 급 번개팅을 위해 나는 오래간만에 고속버스를 탔다.
주말 37도의 뜨거운 햇살을 가르고 달려가는 동안 삽교천의 바다와 시골 풍경이 좋았다. 참치캔 하나 따서 묵은지 김치찌개를 냄비에 끓여두고 나오느라 늦어졌다. 아들의 혼밥은 김치찌개다. 점심을 함께 먹으려고 부지런을 떨었지만 버스시간표를 보니 그래도 20분이나 여유가 있었다. 부부 수저세트를 작은 선물로 준비했다. 거창한 포장을 풀고 가볍게 비닐포장만 해서 가방에 쏘옥 챙겨갔다.
당진 터미널에 미리 마중 나와 계셨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채 끌어안고 반가움을 생중계했다. "어머나, 그대로네" " 어머나,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듣기 좋은 식상한 멘트를 날렸지만 진심이다. 여전히 언니임에도 친구 같은 느낌의 동안 외모를 폴폴 풍기며 시원한 원피스를 입고 오셨다. 차를 타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아미산 쪽 언니의 아지트로 출발했다.
'아미뫼'라는 음식점 및 카페였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2시가 넘었다. 손님은 단 둘뿐이다. 아담하고 예쁜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묵혀놓은 이야기로 웃었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그러는 사이 메밀소바와 메밀전병이 가지런하게 준비되어 나왔다. 푸짐했다. 우리는 냠냠 쩝쩝 시원하게 배를 채웠다. 2년 동안의 많은 일들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다 ~~ 아는 듯 서로를 보듬고 토닥토닥 애씀을 끄덕여 주었다. 카페의 이곳저곳을 사진 찍었다.
자전거는 페달을 돌리지 않으면 멈춘다. 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려면 발은 열심히 페달을 돌려야 하고 두 손은 방향을 잡아 오른쪽, 왼쪽을 선택해야 한다. 삶도 자전거를 타듯 그렇게 부지런히 페달을 밟으며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니던가? 이제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어 온몸에 빨간 분칠을 하고, 분홍꽃을 가득 싣고 카페 언저리를 지키고 있는 자전거를 보았다.
주인장의 센스도 좋았지만 '쓰지 않을 거야 인생도 커피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언니와 나는
코 시국을 버티며 열심히 살아온 날들을 커피 한잔에 녹여 마셨다. 정말 쓰지 않았다.
언니가 사는 전원주택으로 출발했다.
집 앞 보랏빛 들국화와 수국 이런저런 풀꽃들이 반겨 주었다. 주렁주렁 탐스러운 자두와 감 그리고 사과까지 눈인사를 나누고, 진 보라 가지며 연둣빛 애호박도 누워 있다. 방울토마토가 빈틈없이 알알이 열려있다.
한 개 쓱쓱 문질러 한입이 꽉 차게 따먹고 집안으로 들어가 참외랑 복숭아를 먹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첫 시집을 낸 이야기, 써놓았던 58편의 시를 저장하지 않고 한순간에 날려버린 아쉬움을... 이런저런 삶의 애틋함을 실타래 풀듯 줄줄이 풀어냈다.
한 끼는 대접하고 싶다며 기어코 저녁을 먹고 가란다. 고기반찬과 오이무침 ㅎㅎ 정 많고 따스한 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미래의 구체적인 계획도 들을 수 있었는데... 지치지 않는 학구열과 열정을 본받고 싶어 졌다.
알맞게 익은 명품 오이지처럼 나의 삶도 맛난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 졌다. 그럭저럭 세월이 갔다며 후회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목표도 세워보고 50대, 60대, 70대... 미래의 내 모습도 상상해 보려 한다. 내손에 언니의 시집 한 권과 오이지 10개가 들려있다. 부자가 되었다.
달님이 친구 되어 버스를 따라온다.
코 시국에 고속버스 막차는 8시 35분이다. 꾹꾹 눌러놓은 돌덩이의 무게를 견디어낸 오이지처럼 우리도 버티어보자. 비록 쪼글쪼글 오그라 들어 볼품없다지만 진정한 맛을 낼 수 있는 명품 오이지가 되려면 이 정도쯤 거뜬히 이겨내야 하는 거란 걸... 이제서 알아간다.
그리고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열매 맺기까지의 삶을 자연에게서 오늘도 배운다. 시원한 물에 퐁당 빠진 오이지를 한입 물으니 여름이 도망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