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지기전에
가려했지~

너와 내가 함께 있던...

by 아이리스 H

요즘, 날씨가 쨍쨍하다가 급 비가 오고 다시 쨍쨍해지는 이상기후를 보인다. 하늘도 갱년기인가? 아니 사춘기인가? 이랬다 저랬다한다. 덕분에 구름이 솜사탕처럼 예쁘고, 팝콘처럼 뭉게뭉게 멋지다. 게다가 가끔 무지개도 보여주며 더운 여름날 환상적인 쇼를 하는 중이다. 며칠째 이어지는 찜통더위지만 하늘은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볼 만하다.


해가 지기 전에 가려했지~



어디를?? 혼밥을 먹고 마트에 가는 시간을 7시 10분~ 쯤으로 정했다. 산책과 소화를 위해 겸사겸사 집 근처 큰 마트를 걸어서 갔다가 걸어서 오면서 하늘에 핸드폰을 들이댄다. 그러다가 반원도 아니고 토막 난 무지개를 발견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7가지 색깔이 선명하다. "와~~~ 우, 좋은 일이 생기려나보다..." 혼자 보기 정말 아깝다.

저녁노을과 토막 난 무지개 ㅎㅎ


에어컨이 빵빵한 마트는 천국이다. 하지만, 야채도 아니고, 생선도 아니고, 고기도 아닌데 17도~18도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가? 나까지 냉장중? ㅎㅎ너무 춥다. 아마도 난 40도가 육박하는 베트남에서 살다와서 더위에 견디는 힘이 생긴듯하다. 추웠다 더웠다 하는 갱년기 증세일 수도... 그래서 꼭 카디건을 챙겨간다.


배달도 안 시키고 손수 에코가방을 들고 5분쯤 걸리는 마트까지 느릿느릿 걸으며 새로 돋아난 풀들과 꽃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노을을 보기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 산다. 사재기를 하거나 장바구니가 넘치게 샀던 과거는 잊은 지 오래다. 나는 변했다. 그날그날 혼밥을 먹기 위한 장보기에 나선다. 해가 지기 전에 다녀오려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한국에서 생활할 때 장보기는 엄청난 삶의 전투였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주말이면 사재기를 하는 편이었다. 일주일치 식량을 카트에 가득 실어 날랐다. 남편과 내가 함께 갔던 마트에 혼자 간다. 요즘엔 집 앞 배송에, 새벽 배송, 로켓 배송까지 너무 편해졌다. 물부터 우유(1+1), 과일(제철과일뿐 아니라 수입산까지) 야채, 쌀 등등.. 식료품뿐 아니라, 고기며, 생선도 게다가 욕실의 샴푸, 비누, 수건... 주방 쪽에 양념들까지 사 도사도 바닥을 보이는 날이 많았다.


두 아들 먹성도 좋은 편이었고, 학교 근처에서 살다 보니 (맹모삼천지교) 아들 친구들이 참새 방앗간처럼 우리 집에 자주 왔다. 우리 가족들은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저런 모임도 잦았고, 게다가 개인 과외를 집에서 하다 보니 나의 제자들에게 난 인심 좋은 선생님이었다.


많은 것을 가르쳤다기보다 달달한 간식에 음료에 과일을 꺼내 주었다. 냉장고는 쉴틈이 없이 열리고 닫히고 열일 하느라 급기야 5년 전 하노이행에서 빠졌다. 김치냉장고만 따라가고 아들 혼자 있으니 작은 새 냉장고로 교체했다. 189리터 혼자 살기에 딱 좋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한국에 오니 사실 살짝 불편하다.


나누고 베푸는 삶에 익숙했다. 바쁘고 힘들고 지쳐도 냉장고를 열면 먹거리가 반겨주었고 차곡차곡 받아놓은

시어머님의 김치와 친정엄마의 김치를 나란히 넣어놓고 실컷 먹으며 행복했던 때가 그리워진다. 어느새 세월이 이토록 빨리 흘러간 걸까? "그때가 좋을 때다" 말씀해주시던 엄마 말이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북적북적 아이들이 커갈 때 "엄마, 밥" "엄마, 간식" "엄마.. 엄마 물, "을 외치고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리던 힘든 시간들이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간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알았다.

아~~ 그때는 그랬다... 종종걸음으로 바쁘고 힘겨웠던 날들




그러나 지금 베트남 하노이에 남편과 작은아들이 있고 나는 한국에 큰아들과 잠시 동거 중이다. 평일은 대부분 혼밥이고 주말엔 아들과 먹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5개 묶어 파는 오이도 낱개로 사고, 과일도 야채도 먹을 만큼만 산다. 밀고 다니는 밀차 대신 바구니를 들고 장을 본다. 적당히 바구니의 무게가 무거워지면 장보기를 멈춘다. 미니멀하게 사는 걸 추구한다.


원 플러스 원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메뉴를 정하고 필요한것외에 충동구매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계산대 앞에 가면 언제 골라 담았는지?.. 간식도 먹거리도 20리터 봉투를 채운다. 들고 갈 수 있을 만큼만 사려 했는데... 또 오버다. 그러나 알뜰함 보다는 혼밥을 하는 빈도가 많다 보니 생활 방식도 패턴도 바뀌었다.


아들과 주말에 최소 두 세끼를 해결해야 하니 그때는 밀차를 이용하지만 평소에는 혼밥을 위한 나만의 레시피를 보며 장을 본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두 권의 책을 보며 메모를 시작한다. 화이트보드 위에 4주 식단을 꼼꼼히 쓰고 필요한 야채들과 먹거리를 사 온다. 마트에 가면 메모해온 것들 말고도 유혹하는 먹거리들이 천지다.

다이어트 안 하고 실컷 배불리 먹기엔 난 아직 여자이고 싶다.(살찐다)

매일 마트로 가고 오는 길


평일에는 그래도 나름 충동구매에서 잘 벗어난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영양보충에 보상심리 탓에 장바구니가 무겁다. 낑낑 사들고 들어와서는 땀나고 힘들어서 음식 만들기를 포기하고 아들과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이해 불가다. ㅎㅎ생뚱맞다. 마트는 왜? 간 걸까? 장보기는 했는데... 주말 길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뭐 시켜 먹을까? 아들이 갑자기 들이대면 3초도 고민하지 않고 홀딱 넘어간다. "그러자 날도 더운데..." 나만 그런가??


저녁, 드디어 요리를 하는 건가? 귀찮다. 아들도 외출 중이다. 또 혼밥이다. 라면을 끓여서 대충 총각무 서너 개 꺼내어 TV를 보며 호로록 냠냠 맛나게 먹는다. 설거지도 두 개뿐 참 쉽다. 그동안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장보기를 해준 남편이 새삼 고마웠다. 혼자 있으면 더 편하고 좋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바쁘고 힘겹게 장보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하하호호 웃고 때로는 밥 먹다 혼나서 울 때가 좋은 때였다. 지금 조용히 나 혼자 혼밥을 먹게 될 줄이야~




소나기후에 무지개가 뜨고, 여름날 강렬한 햇살만큼이나 저녁노을이 아름답다. 힘겨웠던 젊을 날이 있었다면 조금은 여유로운 중년의 삶도 있을 것이며 노을처럼 아름다운 노년의 삶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살면서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짐을 낑낑 들고 원더우먼이 된 듯 아니 슈퍼우먼이 되어 살았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을 했고 지금의 혼밥도 감사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베트남)도 혼밥을 하고 있다.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혼자 있어도 더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말해준다. 사실 편한 것도 있지만 혼밥을 위해 마트 가는 것을 즐기고 있다.


하늘은 나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아름답게 갱년기를 보내라고... 그리고 가볍게 살면서 하늘을 보라고...

몸도 마음도 삶도 즐기며 살아가야 한다고... 한때는 쇼핑퀸이었던 내가 지금은 자연을 보며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삶을 사랑하는 하늘땅 마님이 되어가고 있다.


밤하늘에 휘영청 달님도 혼자서 까만 밤을 환하게 지키고 있다. 혼밥도 즐기고 자연도 즐기며 모두 행복하길 달님에게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