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꽃
A cold head and a warm heart.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
아들의 첫 인턴 3개월 전력질주가 이마를 타고 콧잔등으로 내려오는 핏자국(스트레스와 과로로 모세혈관이 터져서)을 내고 마무리되었다. 회사에서 사진 한 장 달랑 보내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며... 연락이 왔다. 놀란 가슴을 쓸어안고 주말을 함께 보냈다.
청년 일자리가 줄고 코 시국에 인턴마저도 쉽지 않았던 상황 아들은 탈출구를 찾기 위해 불면의 밤을 새웠다.
미션 임파서블을 방불케 하는 프로젝트와 힘겨운 아이디어 전쟁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남았다. 정규직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과부하(일을 너무 많이 맡은 상태)에 걸린 듯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붙어 가는 놈 여러 가지 미션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세상 속에서 인생의 쓴맛을 맛보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뚝이 같은 삶을 응원했지만 아들의 심기는 불편해 보였다. 연이틀 밤잠을 자지 못했고, 낮잠으로 충당하고는 겨우 일어나 밥을 먹었다.
역전의 전사들에게 정규직이 넘어가고 계약직으로 겨우 살아남았다며 애써 말을 잇는다. 살짝 먹구름이 드리워져 어두운 표정의 아들 모습이 마음을 울렸다. 아들의 마음이 그런 줄도 모르고 난 아들의 생활방식이 맘에 안 든다며 혼내곤 했었다. 미안하고 아쉬움이 밀려왔다.
토요일, 어스름한 저녁 아들은 잠시 외출을 했고 난 혼밥을 먹었다.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쓰레기도 버리고, 재활용품도 버리고, 빨래도 널며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베란다에 작은 책상을 하나 두었다. 그곳에 작은 화분이 달랑 4개뿐이다.
두 개는 피클용 피망 씨를 심어 싹을 틔웠고 두 개는 홍콩야자 작은 것 두 개를 나눠 심었었다. 그 속에 사랑이 숨바꼭질 중이었다. 누렁 잎을 따내고 새순이 올라왔지만 제 모양을 갖춘 잎이 아니라 변이였다. 어허 그런데
하트 모양 연초록 잎사귀가 나를 반긴다.
사랑해 ~~ 어머나!! 혼자서 사진을 찍어대며 신기해하고 있는데 아들이 들어왔다. 호들갑스럽게 베란다로 아들을 끌고 가서는 "이것 봐 하트 모양 잎사귀 ㅎㅎ" 아들은 신기하다며 피식 웃고 만다.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과 뭉게구름 반반이다. 희한한 날씨네.
베란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까? 눅눅하니까 기분도 그렇고 6시 30분쯤... 베란다 창을 닫으려는 순간
하늘에 오색 무지개가 엄청 크게 원을 그렸다. 소파에 누워있던 아들을 불러대며 "지금이야 무지개는 타이밍이 중요해" 아들과 나는 베란다 방충망까지 열어 재켰다.무지개가 선명하게 반원을 그렸다.
"오 홀~ 진짜 멋있다. "아들은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소나기후에 무지개는 아들과 엄마를 위해 위로 한방 가볍게 날리고 5분도 채 안되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무지개는 사라졌지만 흐렸던 마음이 조금씩 개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잠 못 이루는 아들의 방엔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일요일, 길게 늦잠을 자고 어색한 굿모닝을 하기엔 해가 중천이다. 뭐 먹을까? 시켜먹을까? 아들은 엄마 국수가 먹고 싶단다. 국수를 삶고 동치미 육수에 담가 오이채만 올리고 참외깍두기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아들의 이마를 타고 내려왔던 선명한 핏자국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거리두기 4단계 속에서 오고 가는 길 힘겨웠을 거고 무더운 여름, 휴가도 없이 살아남기 하느라 애썼다. 칭찬하고 싶다. 토닥토닥, 쓰담쓰담 이미 기적 같은 일을 해낸 아들인데... "괜찮다. 아프지 마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은 유리 멘털을 관리하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거란다."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듯 우리의 삶은 그런 거였다. 맑고 화창한 날만 계속되면 가뭄이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이 반겨주듯 이런 날, 저런 날이 모여서 인생의 참맛을 알아가는 거다. 잠시 마트에 다녀오니 아들이 나가고 없지만 어느새 길게 자란 고구마순이 하트 잎을 남발한다. 천정 위까지 올라갔다.
맛난 호박고구마 먹기를 포기하고 싹을 틔웠다. 가끔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또 다른 삶의 맛을 아는 거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때마침 감동적인 장면에 눈물이 난다. 그때 , 아들이 돌아왔다. 꽃을 든 남자다. "뭐야 뭐야 이 꽃은 길가에 심어 놓은 꽃 아냐?" 알록달록 엄마를 닮았다며 길가 꽃을 꺾어왔다. 감동!!
투명한 소주잔에 딱이다. ㅎㅎ 꽃처럼 활짝 피어나지 못했다며 웃는다. 아들은 인턴 하는 동안 꽃처럼 활짝 웃었고, 어떤 날엔 속상해하며 술을 먹었다. 그리고 아빠랑 긴 국제전화를 했다. 쩝쩝.. 남자들의 세계란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속내를 털어놓은 듯하다. 어젯밤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의 땀내 나는 옷을 빨아주고, 알록달록 야채 피클로 입맛을 살려주고, 곁에서 함께 으쌰 으쌰 응원했다.
2021년 치열했던 여름, 젊음의 소중한 시간들을 추억하길 바란다. 어딘가에서 인턴이든,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힘들게 젊음을 불사르는 딸과 아들들에게 박수를 보내련다.
아들은 비몽사몽 회사에 출근했다.
여름이 그렇게 가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비를 피해 아들 손에 잡혀온 꽃들이 활짝 피어나 웃고 있다. 내 마음도 덩달아 꽃을 보며 웃고 있다. 아들아 고맙고 많이 많이 사랑한다. 아프지 말자!!
***쭈니 쭈니 쭌*** 큰아들 이름의 끝자를 리듬감 있게 불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