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잠 & 단잠

잠자는 집안의 엄마?

by 아이리스 H

1996년 과거로 가본다.


둘째를 낳고 백일이 지났다. 지역신문을 훑어보는데 '학원 인수' 보증금에 월세로 나온 45평대 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교실 공간이 3개 있고 살림할 수 있는 방 한 개와 주방이 겸비되어 있다고 써있었다.그곳은 경기도 안양이었다. 큰아이를 잠시 맡기고 어린 둘째를 업고 그곳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1층에 주차장이 있고, 작은 슈퍼가 있었고, 학원 건물은 2층에 있었다. 40명 정도의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수리를 좀 해야겠는데... 하며 좀더 고민 해보기로 하고 남편과 의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집으로 그냥 돌아왔다.


내 꿈은 학원을 운영 하는거였다. 하지만 둘째가 생기면서 포기했었다. 하지만 단잠에 빠져있는 둘째를 보며 난 일이 하고 싶어 졌다.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잠을 설치며 학원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학원인수금이 부족 했다. 수리를 하려면 최소 몇백은 더 들 텐데... 여유가 많지 않았다.


난 집 장만을 위한 주택부금과 예.적금을 탈탈 털어 내 꿈을 이루었다. 두 아들은 어린이집에 맡기고, 난 내 꿈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도배를 하고, 가벽을 제거하고, 간단한 살림살이를 들이고, 새 간판을 달고, 해가 잘 드는 2층 신발장 쪽 들어오는 입구를 예쁘게 꾸미고, 신발을 벗고 들어올 수 있도록 장판을 깔아 공사를 대충 끝냈다.


나름 교실도 복도도 넓히고, 창틀에는 시트지로 그림을 꾸며 장식했다. 책상도 더 들이고 고장 난 물건들과 낡은 것들은 버리고 교체했다. "애나 키우지... 뭐 이렇게 일 하고 싶어 안달이 났냐고"남편은 반대를 하더니 막상 시작을 하고 쪽잠을 자면서도 열정을 보이는 나를 도와주었다.

큰아들 4살이고, 작은아들 2살이었다.


학원생들이 늘었다. 선생님을 두 명 뽑고 친구를 불러 알바를 시켰다. 주위의 만류에도 당차게 시작을 하고 잠잘 시간도 없이 밤엔 아기돌보랴, 낮엔 학원일 하랴, 월세 내고 생활비로 충당하기에도 급급했다. 차운행을 돕던 기사까지 속을 태우고 있을 때 남편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를 도우며 학원을 키워 보겠다고 야심 차게 덤벼들었다.참 고마웠다.


다행스럽게 남편은 차운행과 수업의 전반적인 일들과 뒷일들을 돌봐 주었고 입소문이 나면서 학원은 점차 나아졌고 1년쯤 지나자 자리를 잡아갔다. 그곳에서 단잠을 자던 둘째 아들은 돌잔치를 했다. 나의 꿈은 이루었지만 손이 많이 가는 두 아들에게 조금은 미안했다.


크리스마스 행사를 거하게 치르고, 난 실신 직전 병원에 실려갔다. 배가 너무 아파갔는데 맹장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난 그날 링거를 맞고 돌아와 엉엉 울었다. "살려달라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그렇게 울어본 게 결혼후 처음이었다. 울다 지쳐 단잠을 잤다. 다음날 기적처럼 수술을 하지 않았다. 의사의 오진이었다.


남편은 "학원 그만하자! 사람 잡겠다. 잘될 때 인수하는 거야"라며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 돈을 벌터이니 우리 아이들 교육에 더 집중하자고 말했다. 나와 아들 둘을 택하든지? 일을 택하든지? 쓴소리를 했다. 선택의 귀로에 섰다. 나는 조금만 더... 6개월을 버티었다. 그 후, 나는 꿈을 접고 가정의 행복을 택했다.


나의 꿈을 그렇게 잠시 이뤄 보았고, 그 후 5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면서 두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많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보다 내 아들 두 명을 돌보는 일은 쉬웠다. 그제야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두 아들들도 단잠을 잤고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쑥쑥 커갔다.

단잠자는 가족 ㅎㅎ



2021년 현재 세월이 흘러 흘러갔고 두 아들은 대학을 졸업했다.


사회인이 되어 쪽잠을 자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단잠을 자려면 얼마의 시간이 또 흘러가야 하는 걸까? 난 늘 단잠을 강조하며 자신이 할 만큼만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었다. 힘든 세상 속에서 단잠을 자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들의 교실 칠판 위에 쓰여있던 글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쪽잠을 자면서 꿈을 향해 공부를 해야 하고, 온몸을 불사르며 일을 해야만 성공하고 행복을 부여잡는 줄 알았다. 늘 잠이 부족한 상태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커다란 꿈을 수정했다. 아니 소박하고 작은 꿈들로 바꿨다. 난 드디어 단잠 , 꿀잠, 잠자는 숲속의 공주 모드가 되었다.


학창 시절 두 아들은 나보다 먼저 일어났고, 엄마가 잠들어 있으면 스스로 콘프레이크에 우유를 부어 아침을 해결할 정도로 의젓해졌다. 원더우먼 같은 엄마가 아닌 약한 모습이 때로는 아들을 강하고 멋지게 홀로서기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나의 단잠을 깨우지 않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미안하지 않았다.


"내가 너를 어찌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이렇게 서운하게 하냐고" 죽도록 희생하고 한풀이하는 엄마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엄마도 괜찮지 않을까? 바쁘고 정신없어 쪽잠을 자고도 엄마의 역할에 충실했던 나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난 여유 있게 단잠을 자고도 엄마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아들과 딸의 밥상을 위해 단잠을 포기하고 쪽잠을 자는 엄마들이여!! 가끔은 단잠을 위해 아들딸의 홀로서기를 방해하지 않기를 부탁하련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여전히 작은 꿈이 있다고 말해주며 열심히 살아가는 부모의 그림자를 따라 자녀들도 단잠을 자야 미래를 꿈꿀수 있다.나의 단잠 키포인트다.

**위에 그림 두장과 강아지사진은 pinterest 캡춰했습니다.**

KakaoTalk_20210824_234043314.jpg 장마 속 한줌의 햇살이 예쁘다.(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