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는데?
드디어 비가 그쳤다. (9월 2일)
오래간만에 햇님이 친구 하잔다. 그럴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도 친구 되어 따라온다. 산들산들 바람도 덩달아 신이 났다. 어디 가는데? 따라 가보면 알 수 있다. 나의 아지트.
예쁜 카페? 땡!
숨은 맛집? 땡!
서울행? 땡!
그럼 어디?
ㄷㅅㄱ 초성이다.
하늘도 푸르고, 바람도 좋고, 배도 부르고, 갱년기 아줌마 오래간만에 컨디션이 무척 좋아 보인다. 흥얼흥얼 핸드폰을 어깨에 메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어폰으로 듣는 세상보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에 미세하게 들리는 노래가 더 집중이 잘된다. ㅎㅎ 도로변을 따라 걸어간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인사한다.
뚜벅이로 살만하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처럼 삐쭉 빼죽 엉켜있는 잡초들이 우리네 삶처럼 엉켜서 자라고 있다. 아산은 길가나 도로가에서 무궁화 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역시 충무공 이순신의 고장답다. 흰색과 분홍색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은행나무도 올려다보니 알알이 작은 열매를 달고 있다. 노랗게 물들어갈 가을을 기다려 본다. 한걸음 한걸음
ㄷㅅㄱ 앞에 도착했다. 초성 맞추셨나요? 역시 브런치 작가님 , 독자님 훌륭하십니다. 갱년기 아줌마는 ㄷㅅㄱ 입구를 지나쳐 1층 북카페에 먼저 들렸다.
마음이 그러라고 시키니 나도 어쩔 수가 없다. 핫 라테 한잔을 시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4개 정도 테이블이 텅텅 비었다. ㅎㅎ 이런 고요함이라니...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흘러간다.
멍 때리기 딱 좋은 날이다. " 라테 한잔 하실래요?" "아뉴 됐슈~ 괜찮아유~~"이 대답은? yes 일까? NO 일까? 충정도 사람만 이해하는 속마음을 표현 한것으로 사주면 먹겠다는 yes이다. 그람 안 먹겠다는 말은? "걍 냅둬유~진즉이 다 마셨슈우~"이렇게 말하면 NO다. ㅎㅎ 영어 해석보다 어렵쥬~~(충청도 사투리)
개학하니... 아이들도 오고 가는 사람도 없으니 라테 한잔을 홀짝거려도 음~~ 구름이 솜사탕이 되어주고 바람이 머리칼을 쓰다듬어 준다. 자연과 친구 하기 참 잘했다. 따스한 라테 한 모금이 온몸에 퍼진다. 이제 ㄷㅅㄱ 입구에서 열 체크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내 아지트로... 아뿔싸, 미처 무소음 안 한 핸드폰이 울린다. 그것도 페이스톡으로 이 눈치 없는 사람은?
내 사랑 띵똥씨? 무슨 일이지? 급하게 받아본다. " 여보" 우아 ~세상 다정하다..."보고싶..."강제 종료를 누른다. 그리고 카톡으로 전환했다. ㄷㅅㄱ에서 이러시면 될까유? 안될까유? 당연 아니 된다. 왜? 갑자기 전화를? 무슨 일 있나요? 그래도 궁금하다.
달달한 라테 탓인가?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 싶다는 농담도 척척 받아주며 알콩달콩 대화를 이어간다. 난 ㄷㅅㄱ인증숏도 날려준다. 불시검문에 걸려 놀란 토끼처럼 말이다. 남편도 갑자기 대문짝만 한 사진을 보내왔다. 코 시국이라 자주 다니는 한국 미용실 대신 로컬 미용실에서 머리를 커트했다며... 머리는 너무 짧고 얼굴만 동동 뜬 사진...ㅋㅋ 웃음이 빵 터졌다.
'못생김 주의' 삐뽀삐뽀! ㅎㅎ 책 읽으러 간 아이리스는 5권의 책을 쌓아놓고 20분째 카톡 중이다. 안 잡아가네 ㅎㅎ이런저런 회사 이야기를 나누며 손가락이 즐겁다. 좋은 소식은 코로나 백신 주사를 베트남 회사 직원들과 함께 맞게 되었단다. 이미 독서는 물 건너가고 카톡으로 연애놀이만 실컷 했다.
입가에 미소도 장착했다. "여보 슈~ 정신차리슈 ㅎㅎ뽀송뽀쏭 사랑도 행복도 폴폴 ~이제 그만! 닭살이다.
ㄷㅅㄱ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딱 하루만 봐드립니다. 어깨 펴기, 마음열기, 책 펴기 모드로 겨우 돌아왔다. 아름다운 '캐논' 피아노곡이 내 귓가에 들려온다. 늦었지만 차분하게 책 읽기에 퐁당 빠졌다. 어느덧 2~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두 권은 대출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 ㄷㅅㄱ 갔던 길, 오는 길이 달라졌다.
덥수룩한 풀들을 싹~~ 정리하고 풀길을 만들어 놓았다. 내가 딴짓하고 책을 읽는 동안 누군가 길옆 풀들을 남편 머리처럼 깔끔하게 싹둑싹둑 싹~정리했다. ㅎㅎ 갈 때, 올 때 다른 느낌 풀길을 걸어오며 갱년기 아줌마는 행복한 미소를 날린다. 갱년기 그게 뭐여??
남편과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그리움도 보고픔도 깻잎 짱아찌처럼 쌓여가지만 사랑도 행복도 묵혀야 맛이 난다. 또 다른 삶이 주는 엔도르핀으로 9월을 꿈꿔본다.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갱년기인데 남편은 내가 보고 싶단다. '허허 참나 ~내 잔소리가 그리운 걸까?? 아니면 나의 갱년기는 매운맛 아니고 순한 맛인가??' 알 수가 없다.
ㄷㅅㄱ 간길 온길 같은 길인데 다른 길처럼 느껴졌다. 기분 탓인가?? 사랑도 매번 다른 느낌으로 한 번도 같은 날이 없어서 지금까지 쭈우욱 사랑하며 살 수 있었던 게 아니 었을까? 설렘은 줄었지만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연애기간 포함 30년을 함께 살았다. 장맛비로 우울할 뻔했던 날들이 지나고 햇살처럼 빛나는 하루가 내 마음에 저장되었다. 내 마음을 살피는 갱년기 내 안에 사랑을 채워 가보자.
자연에게서 배운 것
여기 전에 알지 못하던
어떤 분명하고 성스런 약이 있어
오직 감각뿐이던 내게 분별력이 생겨
신이 그러하듯 사려 깊고 신중해진다.
전에는 듣지 못하던 귀와
보지 못했던 눈에
이제는 들리고 보인다.
세월을 살던 내가 순간을 살고
배운 말만 알던 내가 이제는 진리를 안다.
소리 너머의 소리를 듣고
빛 너머의 빛을 본다.
태양이 그 빛을 잃을 만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