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첫날 , 빗속에서 웃어보자~.*
간판스타??
나에게는 숨은 재주가 하나 있다.
세상만사 못하는 게 더더 많지만 곰에게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이 나도 그렇다.
길을 가다 내 눈에 꽂힌 간판들을 외우는 능력이다. 4남매 중 둘째였던 나는 위로 언니와 아래로 남동생이 두 명 있다. 내가 행여 동생과 싸우거나 우기고 공부를 등한시하는 날이면 엄마는 우스개 소리로 말했다.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면 다리 밑에 다시 데려다 놓을 거야~." "오잉, 그럼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어린 마음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난 무서웠다. 엄마손을 잡고 어디를 가도 행여 길을 잃을까? 혹시 다리 밑에 버려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엄마 말도 잘 듣고 말썽 피우는 일없이 그저 내가 간 길과 간판을 외우며 생각하는 아이가 되었다. 걸어가며 간판 읽고 간판으로 한글 공부를 했다.
"똑똑하네 우리 딸" 칭찬을 받으며 좁은 길부터 큰길까지 이어지는 가게들의 간판을 다 외웠다. 밤이 되면 공부 대신 간판 이름을 공책에 메모해두거나 그림으로 남겨두었다. 웃기지만 슬픈 어린아이의 힘겨운 삶이 기억의 창고 속에서 나왔다. 그 덕분에 한 눈 파는 일도 없었고, 학교와 집을 오가며 외운 간판들을 손가락을 꼽아 세어 보았다. 매일 조금씩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성적이 떨어지거나, 친구와 다투거나, 맘이 상하면 진짜 다리 밑에 가보았다. 혹시 내 엄마가 나를 찾지는 않을까? ㅎㅎ그러나 시냇물만 졸졸 흐르고 징검다리가 있어 사람들이 오고 가며 나를 힐끗힐끗 쳐다볼 뿐... 한참을 서 있어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내 엄마는 우리 집에 있음을...ㅎㅎ
간판을 외우는 작은 습관은 눈빛과 뇌로 풀가동되어 잠시 스타가 된다. ㅎㅎ
그 복잡하다는 서울 종로와 인사동길, 명동과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시장통 길 간판을 줄줄 외울 정도였다. 서울 사는 친구들이 깜짝 놀랐다. 분명 충청도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나는 시내버스 노선표와 번호를 외우며 길을 익혔다. 전철이 생기면서 역 이름을 다 외웠다. 길을 잃지 않으려는 촌년의 자존심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에게는 중요했다. 공부를 잘하는 일보다 길을 잃지 않고 헤매지 않는 일이 더 소중했다. 어디서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척척 알고 있었다. 20대 나의 청춘은 간판들을 외우는데 쓰이고 남은 에너지로 공부를 했다.ㅎㅎ 나는 이제 엄마가 나의 손을 놓아도 괜찮았다. 그리고 나보다 길을 더 잘 알고 차로 어디든 데려다주는 내비게이션 남편을 만났다.
이제는 더 이상 간판을 외우지 않아도 길을 잃어버릴 일이 없고 다리 밑에 가서 울상을 짓지 않아도 되었다.
큰 빌딩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간판은 색깔과 모양 그리고 이름에 따라 직종도 천차만별이다. 나의 능력은 조금씩 쇠퇴해 가고 있긴 했지만... 운전을 하며 눈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간판도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업그레이드되었는지 길 찾기 앱보다 나이 뇌가 손가락이 "저기다" 하며 앞설 때도 있었다.
운전면허증이 없을 때에도 남편보다 내가 길을 더 잘 찾았다. 간판 이름을 잘 기억했기 때문이다. 골목골목 있다가 없어진 간판들이 기억나고 없다가 새로 생기는 간판까지 난 잘 기억해내는 편이다.
베트남 하노이 까지... 간판 접수! 완료했다.
한인들이 밀집해서 사는 곳 미딩으로 갔다. 작은 한국이 있는 듯 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돌고 나니 간판들이 쭈르륵 외워졌다. 30년을 살고도 남편은 여전히 놀랍다는 반응이다. ㅎㅎ 그 후, 먼저 하노이에 정착한 한국분들은 나에게 전화로 어디로 나오라고 상세하게 설명해준다.(하노이 간지 한 달)
"아하, 거기 그 가게 옆이죠? " 말문을 막을 정도로 자세한 간판 외우기는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ㅎㅎ 특허라도 내야 하려나... "어쩌면 이리도 길을 잘 찾고 아시는지? 간판스타 네요 ㅎㅎㅎ " 요즘은 검색만 하면 핸드폰 앱이 어찌나 상세하게 나오는지? 핸드폰 없이 길을 나서도 될 정도의 인간 내비게이션은 별 쓸모가 없다.
하노이 시내뿐 아니라 호안끼엠의 복잡한 시장도 잘 찾아다닌다. 눈썰미가 좋은 걸까? 두뇌가 풀가동되어 길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일까? 하여튼 길 찾기 도사였다. 남편은 영어나 벳남어로 되어있는 간판을 어찌 외우냐고 물었다. 나에게는 아마도 색깔과 집의 모양새가 기억 속에 저장되는 듯했다.
베트남어를 배우기 전에는 까막눈이었고, 베트남어를 간판으로 배웠다. 실용적인 벳남어가 더 쉬웠어요 ㅎㅎ 가게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동선을 하얀 백지에 그려가며 베트남에서도 간판을 외웠다. 하노이에서 세 번 이사를 했고 가는 곳마다 간판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다 기억 속에서 찾아올 정도이니 이쯤이면 멘사 회원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ㅎㅎ 아마도 어릴 적 두려움 때문에 생긴 나의 작은 습관이 먼 타국까지 접수했다.
이제 다시 충청도 아산 간판 접수 중...
요즘은 간판도 이색적이다. 예전엔 쉽고 간단했던 간판들이 세련되게 영어나 외국어(국가별)를 많이 쓰고 있다. 한국말 중에서도 예쁘고 우아한 말들을 축약하거나 길게 늘여서 말이다. 회사 이름을 짓거나 가게 이름의 간판을 짓거나 새로운 요리 이름을 구상하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그 이름으로 대박 나는 가게가 있고 사라져 가는 가게가 있듯이 간판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 중요하다.
간판 이름만 보고도 뭘 하는 곳인지? 알 수 있어야 좋은 이름이고 기억에 남는 색깔로 한 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간판들은 내 마음속에 저장된다. 검색하여 찾을 수도 있지만 내 머릿속에 살아있는 간판은 때로 나를 편안한 길로 인도해 준다. 헤매지 않고 살아가는 나만의 숨은 재능이다. 난 자칭 간판스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어릴 적 엄마의 말 한마디는 내 마음에 매듭처럼 남아 있었고, 매듭으로 인해 간판을 외우고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나를 칭찬했던 엄마의 한마디는 어느덧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서야 그 매듭을 풀었다. 그리고 지금도 난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간판을 외우며 살아가고 있다. ㅎㅎ인생길 헤매지 않으려고...
입큰 아귀찜, 자르지오, 하얀 빨래센터, 만수무강 한복집, 한아름 마트, 꽃 네일, 이글 골프, 어린 음악대, 어린 화가들... 솔 약국 아산에 가면 어느 길가 간판 이름들이 보일 것이다. 그 근처에 아이리스가 살고 있다.
***사진은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