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에서
찬바람이 불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
스쳐가는 바람 뒤로
그리움만 남긴 채
낙엽이 지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
떨어지는 낙엽 위로
추억만이 남아 있겠죠...
찬바람이 불면(1990년 김지연)이란 가요곡이 내입 속에서 맴돈다. 따스한 커피 한잔에 에이스를 찍어 먹는다.
오래된 나의 루틴이다. 편의점에 갔더니 뉴욕 치즈케이크 맛과 스페셜 모카 블랜드 맛이 있다. 2+1 두 개 사면 덤으로 한 개 서비스를 받는다.
세 가지 맛을 즐겨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가을이니까... 천고마비 ㅎㅎ
하늘이 높고 말도 살이 찐다. 이것도 덤인가?
10월의 마지막 주다.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독서는 나의 생활이고, 가을 풍경 감상은 덤이다
.
천안과 아산의 경계선상에 도서관이 하나 있다. 그곳에 가면 종이 냄새를 덤으로 맡을 수 있다.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은 가을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온몸을 꽃꽂이 세우고 있었다. 따스한 손길로 온기를 전하며 뽑아 들었다.
두 손으로 살며시 눕혔다. 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가을 햇살에 온몸을 맡기고 책도 나처럼 쉬어 가는 중...이다.
마음에 구멍이 뚫릴 때...
책 제목이 스산한 가을 탓인지 마음에 든다. 내 품에 들어왔다. 벌써 집에 가자고 보챈다. 하지만 두 권 더 빌린 후에 도서관 밖으로 나오니 청명한 하늘에 저 멀리 갈대가 덤으로 흐느적흐느적 손짓하고 있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트로트 한 소절이 떠올랐다. 가을은 역시 갈대지~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주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이 유혹하는데 안 넘어가면 진짜 바보다. 못 이기는 척 작은 들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세상에나 어쩔 거야? 감탄사가 절로 난다.
바람에 온몸을 맡긴 채 흔들리는 갈대는 10월부터 11월까지 스르륵 쏴아 쏴아 소리를 내며 절정을 이룬다. 날 위해 한들한들 춤을 춘다. 이건 덤이다. 여기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숨은 명소다. ㅎㅎ
갈대가 하얗게 눈이 부시다. 선글라스를 썼다. 엊그제 새로 샀다. 보안경을 사러 갔다가 아직 돋보기 안 써도 된다는 말에 기분 좋게 질렀다. 태양을 마주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좋고, 눈부심도 방지되고, 인상 쓰지 않아도 된다. 인생 자체가 덤이다.
게다가 오늘은 태양이 오색빛을 띤 채 내 머리 위에 아름답게 태양 스팩트럼(햇빛이나 전등 빛을 분광기로 보면 빛의 색이 무지개처럼 연속적인 띠를 보이는데 이러한 띠를 연속 스펙트럼이라 한다)이 찍혔다. 갈대 보러 왔는데 스펙트럼이 덤이다. 이런 횡재가 어디 있을까?
가을이 너무 아름답다.
갱년기 아줌마 감성 자극했다.
나 혼자만 누리는 게 미안할 정도다.
베트남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과 작은아들이 급 보고 싶다.
잠시 울컥
멋진 가을날 울컥 이 덤이라니...
덤 하나 더
시어머님이 떠올랐다.
가을이면 우리 아들들에게
잠자리를 잡아주시고,
놀게 해 주었다.
"잠자리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날아다니고 싶다"
던 시어머님은
당뇨합병증으로 노후에
고생을 하셨다.
갈대 사진을 찍고 있는데
고추잠자리가
내 옆에 앉아서
한참 동안 날아가지 않는다.
얘도 덤인가?
시어머님은
부족함 많은 허당 막내며느리를
이뻐해 주시고 덤으로
사랑해 주셨다.
결혼 전, 처음으로 시어머님을 만나기로 한날. 연애기간 1년쯤이 지나서였다.
서울 용산 국제빌딩 앞에서 찬바람이 쌩쌩 불던 가을과 겨울 사이로 기억된다.
갑자기 날씨가 너무 추워져 퇴근시간 차가 많이 막혔다. 약속시간보다 30분쯤 늦게 남편과 시어머님은 나타났다. 첫 만남이라 춥지만 멋 부리느라 투피스 정장을 입었는데 너무 추워 얼음이 될뻔했다.
꽁꽁 얼어붙은 손을 파리처럼 싹싹 비볐다. 기다림의 시간은 왜 이리도 긴지... 드디어 차가 도착했고,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어설픈 인사를 나누었다. "아안 녀엉 하아 세에 요 오? " 입이 얼어붙었다.
초면에 어머님은 "어머나 어쩌냐? 늦어서 미안하다"두 손을 잡아주시더니 "세상에 손이 꽁꽁 얼었네"
장갑을 벗어 주신다."아니에요... 괜~찮아요" "어디든 몸 좀 녹여야겠다" 나를 골목 안으로 끌고 가셨다.
예약한 식당을 취소하고, 가장 가까운 콩나물 국밥집으로 나를 품에 안으시고 들어 가셨다. 사랑+덤이다. 어렵게 생각했던 시어머니는 나의 예상을 깨고, 너무나 따스했다. 멋좀 부리려다 얼어 죽을 뻔했던 기억이다.
뜨끈한 콩나물국밥과 따스한 장갑으로 내 몸은 녹았고, 마음은 무장해제되었다. 시어머님과 첫 만남 이후 난 남편보다 따스했던 어머님이 맘에 들어 결혼을 결정했다. 덤으로 남편을 얻었다. 덤덤하다.ㅎㅎ
마음이 잘 통했다. 그냥 좋았다. 언제나 아들 편 안 들어주고 내편이 되어 주셨고, 늘 좋은 말씀만 해주셨다.
감정은 때때로 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한다. 맞벌이한다고 늘 김치를 담아주셨다.
텃밭에서 배추랑 알타리, 부추, 파, 이것저것을 공수해 주셨다. 덤으로 따라오는 기쁨을 맛보았다.
고마움을 모르고 살짝 귀찮아했던 나였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함께 했던 20여 년 동안 난 한 번도 싫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넘치게 받은 사랑에 감사할 뿐이다.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과 이별하는 날까지 곱고 예뻤던 시어머님은 85세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 어멈아, 없는 집안에 시집와서 고생 많았다. 고맙고 사랑한다.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유언을 남기시고 홀연히 내 곁을 떠나가셨다.
남편보다 내가 더 많이 울었다. 그날 이후 눈물이 말랐는지? 웃는 날이 많아졌다. 바람이 되어 고추잠자리가 되어 슬퍼할 때마다 나타나 나를 미소를 짓게 한다. 덤으로 행복한 마음을 선물 받았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 라지만 내 마음은 한결같다."걱정 마세요. 씩씩하게 잘 살고 있어요" 내 마음도 토닥토닥 갈대숲에게 덤으로 말해주고 왔다.
갈대숲에서 아름다운 스펙트럼을 우연히 덤으로 만난 것처럼 삶은 가끔 덤을 행운처럼 주고 있다. 살면서 더더더 달라고 욕심부리지 않으면 덤으로 받는 행복도 누리게 될 것이다.
죽음의 문턱을 지나온 투병인 들은 덤으로 인생을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게 산다. 큰 욕심이 없다. 계절을 모르고 피어난 빨간 장미도 한송이 외롭게 가을빛에 고개를 내밀었다. 예쁘다.
짧은 가을이 아니 시월이 가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을 마음껏 즐기기를 바란다.
10월의 마지막 주말도 행복+행복 덤으로... 식어버린 커피와 덤으로 받아온 에이스가 달달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