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 있게 뚝배기에
게국지를 끓인다.

by 아이리스 H


뚝심 :굳세게 버티어 내는 힘


앞전 글 "게국지 담느라 게 고생?"

잠깐 조회수를 올리고 내려왔다.


게국지는 서산에서 엄마와

내가 고생해서 담근 김치이다.

힘들었던 만큼 밥맛을 살려주었다.

서울 간 게국지는 언니와 따봉이 엄마의

소박한 백일 선물과 함께 배송되었다.


작고 예쁜 뚝배기에 인증숏을 보내주었다.

손가락 하나 올리고 ㅎㅎ기다림

누군가는 뚝배기보다 장맛이라 하지만

게국지 맛은 뚝배기에 끓여야 제맛이다.


아산으로 돌아와 내 뚝배기에서도

게국지는 익어가고 있고,

남동생네 집에서도

보글보글 게국지가 맛있게 끓고 있다.


밥도둑이라 할 만큼 밥 두 공기쯤

거뜬하게 먹을 수 있다.

반찬도 필요 없다.

김과 계란 프라이 정도

겨울 별미김치는

엄마의 사랑과 정성으로

자식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져

폴폴 냄새를 풍기며

입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어릴 적 게국지는 겨울방학 이면

더욱 빛을 발했다.

볼과 귀, 콧잔등이 빨개지도록

뛰어놀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든든한 밥 한 끼였다.


돌아서면 왜 그렇게 배가 고팠는지?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던 그 시절

게국지 국물에 쓱쓱 밥을 비벼 먹기도 했다.

마법 같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젓가락으로 배추를 죽죽 갈라 먹는 재미가

솔솔 했다. 모든 야채가 숨을 죽이고

바다를 품은 김치가 부들부들

부드러워지는 매력이 있는 게국지가 신기했다.

뚝배기 속에 게국지가 익어가는 냄새는

군침을 흘리게 했다.


게국지는 김치를 건져먹고 남은 국물에

다시 게국지와 물을 좀 더 붓고

재탕하면 게국지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무슨 보약이라고? 재탕까지...

뚝배기 가득 넘치던 게국지는

어느새 바닥을 보인다.

재탕 게국지는 물개 박수 감이다.ㅎㅎ

KakaoTalk_20211202_121100606.jpg 게국지가 알맞게 익었다.


넉넉지 않은 시골살이에

김장과 동치미, 게국지를 담가놓으면

부자가 된듯했다.


까만 연탄이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쌓여가면 월동준비 끝.

바람막이 비닐이 대청마루 긴 창을 감싸고

까만 연탄이 하얗게 재로 변해서

눈 오는 길목에 여기저기 부서져

흩어져 있는 풍경이

내 기억 속 겨울 풍경이다.


친정엄마의 손맛과 내 손맛이 합쳐진

올해의 게국지 맛은 감동이 되었다.

울 엄마는 시어머니로부터

딸은 엄마에게

게국지 맛을 전수받아

뚝심 있게 뚝배기에

게국지를 끓인다.




"엄마, 엄마 아들왔슈우"


한 손에 햄버거를 사 들고 바쁘다더니

주중에 나타난 아들 ㅎㅎ

햄버거야? 반갑다!

게국지 맛을 보기 위해

추운 바람을 뚫고 온 것이다.

2주 전 고민하던 일을 해결했나 보다.

특급 비밀이 있었다. 철통 보완을 뚫고

새어 나온 이야기를 풀려한다.


아들은 전역 후,

혼자서 자유를 만끽하며

하고 싶었던 아르바이트와

대학 공부를 병행하며

홀로서기와 독립을 원했다.

난 남편을 따라 하노이로 갔다.

아들은 혼자서 코 시국에

대학 졸업과 취업까지 척척 대견했다.


내가 귀국해보니 특별히 해줄 게 없었다.

구글 인턴을 마치고 계약직으로 살아남았다.


엄마가 베짱이가 되어 노는 동안

아들은 힘겹고 치열하게 회사 생활을 했다.

2주 전, 미국 본사 계열사에서 콜을 받았다.

중국어가 전공인데 미국이라니 의아했다.

중국어로 코딩을 할만한

적임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미국 갈 뻔했는데...

미국 가는 건 싫다고 했다.


나 같으면 당장이라도 OK를 했을 텐데...

난 유학을 가본 적도 없고,

가보고 싶었지만 여건과 환경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자꾸만 강요하며

남과 다른 삶, 차별화된 삶을 살길 원했다.


좀 더 빠르게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려다 늘 아들과 의견이 충돌되어

적당히 거리두기를 했었다.


이미 대학 때부터 아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장학금을 형편이 힘든 친구들을 위해

써달라 반납했고,

어학연수와 교환학생을 갈 때도

특별 장학생이라 공짜로 갈 수 있었음에도

3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

나는 고스란히 어학 연수비를 지불했다.


사실 맞벌이를 했을 뿐

여유롭지 않은 살림이었다.

서울살이는 그랬다. 동생도 대학생이었고

겨우겨우 학비를 마련하던 터였는데

아들의 과감하고 대책 없는 장학금 반납으로

힘겨웠던 때가 있었다.

그 후 학자금 대출도 한번 받을 정도였다.




2008년 3월 14일 중2.


아들이 중국으로 유학하고 3개월이 지났을 무렵이다. 아들은 시험 노트에 백점을 받았다며 전화가 왔다.

KakaoTalk_20211202_123625281.jpg 노트 가득 빼곡하게 적힌 중국어 단어들...
KakaoTalk_20211202_123634191.jpg 유학시절 홈스테이에서 본 중 단어 쪽지시험 결과를 써놓으셨다.

중국어 단어시험을 빼꼭하게 적힌 노트다.

백개의 단어를 외워 일주일에

한 번씩 시험을 보는 건데

받아쓰기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외운

백개의 중단어를 외워서 빈 공책에 적고

채점만 선생님이 하는 식의 쪽지 시험이었다.

홈스테이에 처음 입성하여 치른

중국어 단어시험 공책을 보는 순간

아들의 마음이 읽어졌다.


틀린 개수대로 엎드려 엉덩이를 맞아야 했고

게임과 전화통화가 금지되는 지독한 유학생활

매주 금요일에 보던 쪽지시험을 통과하면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주곤 했다.


"엄마, 보고 싶어~ 그런데 나 돌아가고 싶어"


아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울컥 눈물이 났지만 난 단호했다.

" 넌 거기서 성공해야 해"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약도 없이

유학생활을 해야 하는 건지?

사춘기 아들은 우울감이 찾아왔다.

4차선 도로에 쌩쌩 달리는 차선으로

뛰어들고 싶은 적도 있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그렇게 아들의 삶은 퍽퍽했다.


난 백점에 99점에 감탄하며

"역시, 내 아들이야~" 하며

아들 속도 모르고 좋아했었다.

아들은 왼손잡이였다.

OMR 카드에 마킹을 하려면

왼손을 위로 들고 해야 했고,

다른 친구들보다 두배는 힘들었다고 한다.

공책에 왼손으로 빽빽하게 적어놓은

중국어 쪽지시험 노트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왼손으로 꾹꾹 눌러 적은 공책을 보며

난 지금 반성문을 써내려 가는 중이다.

어릴 적 유학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미국을 포기한 게 아닐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등 떠밀어도 아들은 꼼짝도 안 하고

한국살이를 택했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난 아들을 내 맘대로 또 조정하려고 했다.


"아들아,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

너의 어떤 선택이든 존중한다."


마음을 쓸어내린다. 비우고 또 비우며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날이 오겠지. 아들이 선택한 삶에도 봄날이 오길... 게국지 맛이 봄이 되면 변한다. 추운 겨울 반짝 먹는 별미 김치라서... 살면서 우리는 오래된 미래를 간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아들이 매섭게 사춘기를 보내고 온 중국 유학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당당한 모습이 있는 거란 걸... 미국을 가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하더라도 적당한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현명한 엄마로 살고 싶다 이제...


뚝배기 속에 게국지가 익어가는 것처럼 뚝심 있는 아들을 응원하련다.

보글보글

엄마의 사랑이

아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면서

게국지가

뚝배기 안에서

알맞게 익을 때까지

뚜껑을 열지 않고

기다려 주듯이...


내 엄마가 딸을 위해

그저 평안하길...

바랬던 것처럼

나도

뚝심 있는 아들을

믿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