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건 풀고, 매듭은 짓고...

실타래에게서 배운다.

by 아이리스 H


"우리 딸, 심심하지 않니?"

"아니요, 괜찮아요"

"너 심심할까 봐 내가 왔다."

"헐~~"


80세를 한 달 앞둔 울 엄마와

50대 둘째 딸의 대화다.


"무슨 일이야? 엄마, "

"그냥 왔다"

"내가, 집에 없었으면 어쩌려고?"

"그냥 돌아가지 뭐 그까짓 거"


똑똑한 울 엄마와

야무진 딸의 물음과 답이다.


"야야, 너 베트남 언제 간다 했더라?"

"한 달 미루어졌다고 말했는데..."

"그랬었나? 내일 모래 간다한 것 같은데..."

"이게 다 뭐예요? 아이고 세상에..."


아무런 소식도 없이 엄마는 딸을 만나러 고속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오셨다. 반가움보다는 놀람에 가까웠다. 왜? 갑자기 오신 걸까? 그냥 얼굴 보러 왔다며 밀차에 짐을 잔뜩 싣고 나타나셨다.



"점심은 드셨나요?"

"그냥~ 이것저것 먹고 와서 밥 생각이 읍따"

"그래도 식사하셔야 쥬?"

"맨날 먹는 밥... 내가 떡 싸왔다."


짐 속에 떡이 들어있다. 새것도 아니고 먹다 남은걸 가져오셨다. 물 한잔을 드리고 식탁에 앉았다. 얼굴빛이 그리 좋지 않다. 뭔가 이야기를 하시려고 온듯하다. 일단 한숨 돌리고 떡을 잡수셨다.


멋쟁이 울 엄마는 화장도 하는 둥 마는 둥 옷도 때깔이 안 좋은걸 입고 오셨다. 뭔가에 홀린 듯하신 이상한 모습으로... 난 고구마를 쪄서 믹서에 마요네즈와 파인애플즙을 넣고 바나나 한 개를 잘라 넣고 곱게 갈았다. 예쁜 컵에 담아 작은 티스푼을 드렸다.


"아이고 맛나다!

고구마를 요래 하니 먹기도 좋구나!"


요즘, 난 심심할 때 뜨개질을 하며 허드레 시간을 보낸다. 목도리를 한 개 완성했고, 두 개째 뜨고 있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목도리를 뜨기도 했고, 조끼를 떠서 주셨다. 실이 꼬이면 뜨개질을 잠시 멈추고 실을 풀어 다시 감는다. 행여 실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매듭을 단단히 지었다.


한코, 한코 소중하게 한 땀, 한 땀 빠지지 않게 야무지게 손놀림을 해야 한다.


눈썰미 좋은 울 엄마는 뜨개질을 잊지도 않고 받아 들더니 뜨고 계신다. ㅎㅎ 아버지에게 둘째 딸네 간다고 말도 안 하시고 오셨다며 네 얼굴 봤으니 저녁 차로 가신다고 하신다. 인생 속 뭔가가 분명 꼬인 것 같은데...


"엄마, 이왕 오셨으니 하룻밤 주무시고 가세요" 난 엄마를 붙잡았다.




티브이를 켜 드라마를 틀어놓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울 엄마는 드라마 볼 때 가끔 욕을 하신다. 티브이 속 주인공이나 배우들을 보며 화를 내시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신다. ㅎㅎ 심성이 본디 맑고 착한 성품이지만 불의를 보거나 격에 맞지 않거나 예의에 벗어나면


"저*이, 저*이 나쁜 *, 나쁜 *이여~"


ㅎㅎ 울 엄마를 화나게 한 드라마는 늘 인기 방송 중 악역을 맡은 배우에게 속사포로 욕을 하시는 편이다. 본방사수를 하시며 드라마를 꿰뚫고 계시다. 잘못하면 조용히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에게도 화살 욕이 발사된다. 재방송을 보며 또 욕을 바가지로 해야 속이 시원하다고 하신다.

"그렇게 나쁜 짓만 하고 잘 사나 보자!

물벼락을 맞아야 정신 차리지..."


예외 없는 엄마의 욕들과 말, 말, 말은 함께 드라마를 보던 우리들에게 늘 웃음보따리를 한가득 선사한다. 오늘도 갑자기 나타나 주말 드라마를 보시며 욕을 하신다. 귀엽고 정겨운 욕 한 바가지를 들으니 배가 고팠다.


늦은 저녁을 먹고 씻었다. 그리고 만 원짜리 잠옷 원피스를 나란히 입고 누웠다. 오랜만이다. 사진을 찍는다.

ㅎㅎ 엄마도 나도 호호호 하하하 웃는다. 남편에게 톡으로 엄마와 딸의 모습을 전송했다.


"오 홀, 내 사랑 장모님 맛난 거 해 드려~"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비밀인데..."

엄마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비밀 이야기는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다. 엄마는 비밀 이야기를 해주려고 갑자기 나에게 달려오셨다. 들어보니 비밀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한 이름 모를 점쟁이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속상하고 애가 탔던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생일에 5자가 들어가서 운세가 안 좋아 자식에게 해가 되니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황당한 비밀을 말씀하셨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절대 그곳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난 밤새 엄마의 괴변을 들으며 속상했다.


가난했지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4남매 잘 키워 출가시키고 아버지랑 잘 살고 계시는데 미래가 불안하고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떨고 계셨다. 죽은 조상이 어쩌고 저쩌고...


코 시국에 시골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오지도 않은 미래를 운운하며 판단력이 흐려진 노인들의 쌈짓돈을 빼앗으려는 자들의 비밀을 폭로하는 밤이었다.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이어진 비밀을 엄마에게 후련하게 설명해주었고, 답답하고 속상했던 마음을 안심시켜주었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돈도, 목숨도 아깝지 않은 노인들에게 어찌 이런 일들이...




다음날 아침 , 남동생이 나타났다. 밤새 기, 승, 전, 결. 비밀은 동생에게는 쉿! 비밀로 하기로 했다. 긁어 부스럼이 될까 봐 함구했다. 쇼핑을 제안하고 기분을 풀고 맛난 걸 먹기로 했다. 울 엄마는 어제보다 한껏 표정이 밝아졌다.


"엄마, 뭐 드시고 싶으세요?"


" 젊은이들 좋아하는 피자를 먹고 싶다!!

분위기 좋은데로 가자"고 하신다.


울 엄마도 드라마 보시고 광고도 보시 더니 식성이 바뀌셨나? 아니면 몸은 나이가 들어가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이고 싶은 걸까? 일단 밤을 지새워서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홀가분 해졌다.


아산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쇼핑 겸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피자와 스파게티 샐러드로 배를 채웠다.

네모난 콰트로 포르마지오 피자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그리고 올리브 그린 샐러드로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다~잊었다.



그리고 추운 겨울,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라고 오리털 롱 패딩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간절기 점퍼도 사드렸다.

거짓과 사기가 판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할 만큼 험한 세상 속 자신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믿을 것이라고는 딸밖에 없었나 보다... 비밀이라고 속삭이던 엄마의 눈동자가 마음에 남아있다.

착하고 선한 사람들

뿔나지 않는 세상,

비밀보다는 믿고 사는 세상이

되어가길 바란다.


갑자기 나타난 엄마의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 잘 감아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