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기대하소!
아~~~ 그날이다. 2020년 보내주어야 하는 날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데 내 몸이 내 맘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알 수 없이 이유도 없이 몸살 기운이 감돌고 좋지 않다. 날씨까지 찌뿌둥하고 흐리다. 뿌연 안개가 가득하고 목도 따끔따끔 따뜻한 보리차를 연신 마셔도 목이 컬컬하다. 이불속에서 나오기도 싫은 날이다.
여자에게는 한 달에 한번 마법에 걸리는 날이 있는데 마술이라 불리는 날이다. 한해의 끝에서 마법은 비껴가지 않고 나에게 스트레스를 듬뿍 안고 찾아와 괴롭힌다. 마인드 컨트롤이 안될 정도이다. 두통도 친구 하자고 찾아왔다. 에구야 반갑지 않지만 맞이해야 하는 여자의 일생....
귀찮다, 힘들다, 버럭 화라도 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마땅한 이유가 없으니 어찌하지도 못한 채 그저 이곳저곳 쓸고 닦고 청소를 한다. 하지만 에휴~ 힘만 들고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어찌해야 할까? 카디건을 걸치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엘베를 탔다. 거울 속 못난이 아줌마가 서 있다.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달달한 웨하스 , 연양갱 , 슈팅스타(아이스크림)와 시원한 사이다를 사들고 왔다.
텅 빈 집안의 온도는 내 마음처럼 차갑다. 히터를 틀었다. 금세 따뜻해진 공기는 좋았지만 또 답답함을 준다. 가습 기형 향기 램프에 물을 붓고 페퍼민트 한 방울과 레몬 두 방울을 넣고 폴폴 향기를 맡으니 조금 편안 해졌다. 소파 위에 비스듬히 누워 사 온 것들을 마구 마구 먹었다. 역시 달달한 게 들어가니 조금 나아졌다. 워워~ 내 안에 불덩이를 살살 달래 본다.
여자란 동물은 참 복잡 미묘하다. 감정 기복도 널뛰기를 좋아한다. 세 남자와 살면서 나는 여자인데 남자처럼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이제 50을 넘어 중반을 향해 가지만 이제는 여자로서의 삶이 지친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힘 빼며 슬슬 살아가고 싶은데 주위의 많은 여자들이 나의 삶에 때로는 불을 붙인다. 그럼에도 그동안 잘 살아왔다. 충청도 아줌마의 특유의 입담과 유머로 웃어넘기거나 침묵으로 일관해 버리면 속이 편했었다.
사실, 나에게 스트레스 해소는 그나마 골프였는데... 요즘 골프 때문에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은근 소심해서 할 말을 꾸욱 참고 견디다가 스스로 무너졌다. 2년 차 초보 골퍼이니 잘 치고 싶은 마음에 골프채를 연신 휘둘러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다. 게다가 옆사람이 부드럽게 조언을 해주는 것도 싫었고 가르쳐 준다며 이렇게 저렇게 말해 주는 것도 신경이 쓰이고 좋지 않았다.
골프를 치다 보면 실수 샷이 많은 날도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그때 다른 걸 어쩌란 말인가? 경험이 부족하니 내 몸이 내 맘대로 안되고 내 팔이 어깨가 내 발까지 제각각 임을 핑계 대며 빠져나가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불쌍한 잔디만 힘껏 내려쳤다. 아야 아야!! 소리 지른다.
나의 짧은 집중력과 정신력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화가 난다. 뭐라 표현하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고 한숨만 내쉬며 참게 되고 스트레스 풀러 나갔다가 풀 수 없는 수학 문제를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쩔쩔매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정신을 못 차린다. 분명 화가 났는데 방법을 찾지 못한다.
늦게 배운 골프는 나의 유일한 기쁨이었고 뭔가 새롭고 신기했다. 18홀까지 잔디를 누비며 공을 치다 보면 어느새 바람과 함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잘 치고 못 치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잔디를 보면 힐링이 되고 기분이 좋았다. 공이 잘 안 맞아도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면 잘하는 거야' 나를 다독였는데... 며칠 전 처음 가본 골프장 힘든 코스에서 나는 많은 실수 샷으로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그 후,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올해 마지막 마술은 심란한 마음과 겹쳐져 내 마음속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분전환을 위해 화장을 하고 아침을 거른 채 도서관에 갔다. 책꽂이 가득 책들이 나를 반긴다. 역시 위로를 받고 싶고 내 안에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 그곳에 가면 인쇄된 책 냄새가 너무 좋다. 빙빙 책들 속을 활보하며 탐색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위로할 책을 고른다. 어느새 몸과 맘의 우울모드는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2020년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코로나로 힘들었던 시간들 이제 보내주련다. 어쨌든 수고 많았다.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여전히 아파하고 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21년 새해가 문 두드리고 있다. 격하게 환영하지 못하더라도 문 활짝 열고 새롭게 받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에 날개를 달고 차분하게 말이다.
더 멋지게 창공을 나는 골프공처럼 내 생각에도 내 마음에도 날개를 달아 주고 싶다. "그래, 내년엔 더 멋진 나이스 샷을 하리라 " 새로운 희망과 꿈을 꾸며 내 인생에 마법의 주문을 걸어본다. 골프공에도 날개가 있길 바라며...
빌려온 세 권의 책을 폭풍 독서 한날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마술에 걸려 우울함이 많았지만 아들이 사 온 케이크는 내 마음을 알아챈 듯 천사표 날개가 금방이라도 날개 쳐 올라갈 듯 멋지게 꽂혀 있다.
수고했쥐 2020~ 기대하소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