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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Mar 28. 2022

오잉! 할머니 댁 냄새가?

자연주의 식단


여기는 충청도다.

서울에서 내려온지 10개월째다.

벳남 하노이에서 온 지 두 달째다.

전원주택쯤 살아야 어울릴듯한 곳에서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대문을 열자 어릴 적 할머니 댁 냄새가 난다.

킁킁 킁킁 이건 무슨 냄새지?

아침에 끓여둔 계피향 때문이다.


주전자 한가득 계피를 끓였다.

계피는 베트남산이다.

한국 고유의 자연주의

계피차 아니고 한베 계피차다.


호로록 호로록 목 넘김이 편안하다.


에휴~~

다듬으면 한 주먹밖에 되지 않는

냉이를 한 바구니 다듬어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였다.

콤콤 콤콤 이건 무슨 냄새지?

냉이 듬뿍 된장찌개 냄새다.


시골집 할머니 댁에 온듯한

구수하고 정겨운 냄새다.

배고프다. 밥 먹자! 서울남자는

시골 남자가 되어 밥상을 차린다.

잠시 쉬어 가는 중 주부가 되었다.


재래시장에서 방금 사온 자연산 시금치가

흑 덩이를 달고 졸졸 따라왔다.

흑흑 흑흑 한 봉지 가득 3천 원이다.

다듬고, 또 다듬고

씻고 , 또 씻고 할 일이 많다.


뜨거운 물에 데쳐 새파랗게

찬물에 샤워시켜 꼭 짰다.

소금 , 간장, 깨소금 , 참기름

마늘 콩콩 콩콩 찧어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달래야 달래야 너도 씻자꾸나!

살살 가느다란 줄기와 뿌리를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손질하여

싱거운 달래장도 만들었다.


남편의 혈당을 잡기 위해

민들레 뿌리를 난생처음 사 왔고

미역줄기인 줄 알았던 곰피도 사 왔다.

폭풍 검색 후 요리를 한다. 나도  모르고

남편도 모르는 식재료들...

우리는 둘이서 안 하던 짓을 매일 하며

웃는다. 조금 먹었는데 혈당이 잡혔다며

이것저것 자연식을 먹는다.


조만간 굼벵이도 먹을 듯하다. 아이고~


수술 후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김장김치 대신 상큼한 오이김치로

오동통한 낙지젓갈과

파릇파릇 파래무침까지...

엄마표 멸치볶음과 콩자반도

제주산 흙당근도 공수받아 날것으로

갈아서 익혀서 데쳐서 먹고 있다.


어쩌다 보니 식탁 가득

엄마 냄새나는 음식들과

할머니 댁에서 맛보았던 음식들로

채워졌다. 한우잡뼈 국물까지... 손수 끓였다.

소박하지만 둘이서 자연밥상을 마주했다.

우리집 밥상


자연주의 밥상으로 바뀌면서

우리 집에서는 자꾸만 할머니 댁

냄새가 난다. 킁킁 콤콤

자주 환기를 시켜도... 쉽지 않다.

보리밥까지 먹으니 가스 발생까지

꼬리꼬리 하다.ㅎㅎ

 

잡뼈 국물도 뽀얗게 우러났다.

모든 음식에

소금도 설탕도 절제된 맛이지만

건강을 위해 참아내야 한다.


"엄마처럼 안 살 거야!"


전업주부로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삼시세끼 집안일로 한평생을 살고 계신 엄마의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이제 50 중반의 딸은 바빴던 삶을

내려놓고 밥상을 차리며 살고 있다.

남편에게도 아들들에게도

바쁘다는 이유로 대충 쉽고 간단하게

먹이고 반찬집을 대놓고 사다 먹었다.


'엄마를 따라 보고 배워야지보다는

바쁜 세상에 사다 먹으면 되지

뭐가 이리도 어렵고 복잡한 거지...'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자기 계발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더 높은 꿈을 향해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라면을 먹으면 어때? 굶으면 어때?

아무거나 대충 한 끼 때우면 그만이지...

젊을 때의 나의 생각이었다.


그저 미안하고 고맙다. 가족들에게

이제 나에게 시간이 주어지고

건강식을 찾다 보니 내손으로

만들어 내입으로 들어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어릴 적 할머니 댁 냄새가 얼마나

소중한 냄새였는지?


바리바리 싸 보낸 엄마의 보자기가

진심 사랑임을... 해외 살이 하다 보니

한국음식이 모두 그리웠다.


많이 많이 잘 먹고 잘 살아가려면

자연주의 밥상이 최고란 걸 요즘

절실히 깨달아 가고 있다.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장을 받아 든 남편과 나는 비로소

가던 길을 잠시 멈추었다.


오늘도

비린내 나는 고등어가 무 깔고

냄비 속에서 자박자박 익어가고 있다.

킁킁 킁킁 냄새가 나지만 환풍기를 틀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보리쌀 70퍼센트 찹쌀 검정쌀 30프로

밥 통속에서 밥 냄새가 솔솔 김을 내며

익어가고 있다.

콩나물에 당근에 달래 쏭쏭 썰어 고추장과

참기름에 쓱쓱 비벼 낙지다리 한 개 올려

야무지게 한입 먹었다.


밥은 먹고 다니시나요?


꿈도, 사랑도, 부자도, 행복도

밥 잘 먹고 튼튼해야 이룰 수 있답니다.

우리 집에서 자꾸 할머니 댁 냄새가 난다.

할머니 댁 냄새 정도 나야 건강해진다.


나름 자연주의 밥상에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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