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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Apr 12. 2022

튤립 꽃 50송이를 심었다고?

어디에?

"엄마, 뭐하세요?"

서산에 산불이 났던데 괜찮으세요?


"응, 별일 없다. 산불 난 곳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는 괜찮다. 사위는 좀 어떠냐?


"많이 좋아졌어요. 밥도 잘 먹고요.

약도 두 개 줄었어요. 괜찮아요~"


"아이고 다행이다. 그만하길..."


" 제가 꽃구경시켜드릴 테니 나갈

준비하고 계세요. 아버지도 함께 ~~"


충남 서산 쪽 산불 소식에 마음이 쓰였다.

애써 괜찮다고 했지만 꽃구경도 갈 겸

일요일 아침 길을 나섰다.

집 밖을 나서면 온통 꽃잔치다.

며칠 전 공원에서 빨강 튤립 꽃을 만난 후로

아버지 생각이 났었다.

 

꽃길 따라 봄바람과 함께 내 마음은

친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가는 동안 이곳저곳 팡팡 터져 오른

꽃망울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해외살이로 한국의 봄 오랜만...)


아버지와 엄마는 나란히 약국 앞에 서 계셨다.

80대 두 분은 봄나들이를 갈 생각에 신이 났다.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 알람 배꼽시계가 꼬르륵

설렁탕 한 그릇에 흐뭇하다. 깍두기도 맛있다.

꽃구경을 하려면 일단 뱃속을 채워야 한다.

(걷기도 하고, 꽃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해미읍성 벚꽃구경을 갔다.

아버지 손가락 &남편 손가락


"여길 봐 우아~~~"

"저기도 와우~~"

"여기도 완전~~"

"저기도 그래~~~"


이곳, 저곳, 그곳 아하! 

벚꽃잔치가 벌어졌다.

어릴 적 아버지, 엄마 손잡고 나들이 갔던

딸은 하하하, 호호호 기분이 좋다.

남편도 덩달아 좋아한다.

역시 딸이 좋으시단다.

내가 어릴 적엔 아들만 좋아하시더니...

꽃은 마음을 바꿔주기도 하나보다...




양쪽 가로수를 꽉 채운 해미의 벚꽃구경




튤립 50송이를 심었다고? 어디에?


꽃피는 봄날(춘분) 3월 21일

아버지는 충청도 가야산 선산에

다녀오셨다.

그곳에 무슨 일로 가신 걸까?

튤립 꽃 50송이를 심고 오셨다고 하신다.

가야산 높은 곳에는 조상님 선산이 있는데

난, 결혼 후 신고식을 하느라 딱 한번 갔었다.

그 후, 남동생들은 오랜 세월 명절에

그곳 가야산으로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꽃샘추위로 쌀쌀했던 봄날  

한 시간 넘게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고

길도 좁고 가파른 지역이지만

85세 호랑이띠 나의 아버지는 올해도

어김없이 가야산에 다녀오셨다.

늘 아버지의 발자취에 동행하시는

막내 외삼촌과 함께 말이다.

 

아 ~~ 그런데 올해는

아무도 모르게 튤립 꽃 50송이를 박스에 담아

삽을 등에 메고 산에 올라가 그곳에 튤립 꽃을...

심어놓고 기도를 하셨단다.

세상에 어찌 이런 생각을 하신 걸까?

조상묘가 멧돼지의 습격으로

허물어져 빨간 꽃으로 동그랗게 심어두면

방지할 수도 있다는 말에 아버지는

그리 하셨다고 하신다.


언 땅이 겨우 녹은 봄날에 (춘분)

아버지의 정성과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조상님은 과연 감동했을까?

아버지는 종교가 없으시다. 그저

아버지의 생각과 방법대로

무탈하게 가족들을 위해

온몸으로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삶에서 실천하며 보여 주신다.


아버지는  본인의 생애보다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셨고 ,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이제는 자식들의 손주, 손녀까지

챙기며 80대 중반 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꽃 피우고 계신다.

흐드러진 벚꽃처럼...

2022년 4월10일 해미에서




나의 아버지 


9남매의 첫째 아들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배움의 끈이 짧았던 아버지는 9남매의

첫째 아들로 목수였던 아버지(할아버지)의

야무진 손을 닮아 이발기술을 배우셨고

충청도 작은 마을에서 이발소를 운영하셨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단발머리를 자르고, 앞머리도 잘랐다.

미장원보다 이발소가 좋았던 아이는 

두발 자유화가 되면서  긴 생머리를

양갈래로 따고 다녔기에 그 후로 아버지의

이발소에 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버지는 술도 담배도 전혀 하지 않으시고

늘 좋은 냄새가 났다. 샴푸와 향기로운

이발소 냄새가 났다. 4남매의 학교교육에

치맛바람이 아닌 바지바람을... 일으켰다.

언제나 학교 행사에 멋쟁이 아버지로

나타났다. 일보다 우선이 되었던 교육열이

남다르게 있었던 분이시다.


손에서 책(독서)을 놓지 않으셨다.

늘 신문을 읽으시고 일기를 쓰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버지의

습관은 자식들에게 늘 모범답안처럼

학습되어 갔다.


이발소를 운영하기엔 아까운 양반이라며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한자와 영어를 할 수 있는 능력자셨다.

영어(미군부대 하사 출신 ㅎㅎ)

한자(천자문, 명심보감, 공자, 맹자 독학)


휴일을 반납하시고 고아원과 양로원 등...

가난한 이웃을 위해 무료 이발 봉사활동을

수십 년 하셨고, 나라에서 주는 큰상도 많이 받았다.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시며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꽃을 피워 내는 일에

앞장섰다. 


부자여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 것임을 알았다.



지난날 눈물겹도록 치열하게 살았던 삶을

4남매는 모두 추억하면 눈물을 훔친다.

충청도에서 서울 입성까지 힘겨운 날들을

서로 이겨내며 공부했다.

끝까지 해내는 근성과 체력, 정신력으로 

무장한 4남매는 아버지를 닮아 있다.


그렇게 아버지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다.

이제는 쉬어가라 해도 여전히 일을 하신다.

사람을 만나 흐트러지고 덥수룩한 머리를

깎아주며 말끔히 정리해주는 사랑의 이발사

 85세의 나이에 터미널 앞 이발소를 지키신다.


해외 살이 6년 차, 이발소집 작은딸은

튤립 꽃 50송이를 심고 기도하는

아버지가 있어서 행복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존경한다.

어릴 적 아버지는 엄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꽃처럼 여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강하고 매섭게 회초리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부장적이던 나의 아버지는 이제

엄마의 집안일을 도우며 음식찌꺼기 통을

비워주시는 멋쟁이 아버지가 되어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튤립 꽃처럼

빨간색을 좋아하시는 열정적인 아버지

빨간 음식통을 버리러 나가시는 아버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날에...

 

함께 꽃을 보며 웃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서재에 여전히 가지런히 놓여있는

책들로 자기 관리하시며 일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사시는 아버지를 응원합니다.

85년을 살아내신 아버지의 내공을

오늘도 배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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