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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Apr 29. 2022

국수 면발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어릴 적 엄마가 국수를 삶아

간장 양념에 설탕 한 스푼 넣어주면

국수 맛이 달콤 짭짤했던 기억이다.

하하하 지금은 그 맛이 안 난다.

그때는 그렇게 맛났는데...


선반 위에 올려둔 마른국수 더미가

손짓하며 나를 유혹한다.

촘촘히 여럿이 모여서

둥글게 종이 한 장에

온몸을 꽁꽁 빈틈없이 채우고

'나 좀 꺼내 줘' 애원하는 듯 보였다.

난 잠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한가닥만 조심스럽게 뽑았다.


 낑낑낑~끙끙끙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딱딱한 국수 뽑아먹기 신공이 되려 했지만

빠져나오다가 국수는 뚝 뚝 부러졌다.

속상하다. 이런이런...

부러진 생국수를 꺼내려는 집념은  

여러 개를 함께 뽑아야만 비로소

길쭉하고 날씬한 완전체가 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손가락만 한 굵기의 구멍이

휑~ 뚫리는 걸 보고 멈췄다.

그날 밤 엄마는

"밤새 쥐가 다녀갔나? 국수가 휑하네~

내일은 맛난 비빔국수 해 먹어야겠다."

범인은 나쁜 쥐다.

나는 들키지 않은 착한 어린이다.


더운 여름날

오이를 쏭쏭 썰어 넣고

신 김치를 쫑쫑 썰어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설탕과 식초 약간 넣고... 야무지게


커다란 양푼이에 삶은 국수를 쓱쓱 비비면

비빔국수가 완성된다. 얼음 두어 개 올려서

후루룩 짭짭 먹는 동안 입안이 시원해졌다.

4남매 입술 주위까지 빨갛게 물들었던

그 옛날 비빔국수의 맛이 그립다.



여기는 벳남 하노이다.

빨갛고 튼튼한 비닐봉지를 들고

남편이 갑자기 나갔다고 한다.

그 안에 빈 냄비가 하나 들어있다.

어디 가는 걸까요?

남편은 행복을 두배로 가져온단다.


아파트 1층 상가에

소고기 쌀국수(퍼보)와

닭고기 쌀국수 (퍼가) 식당이 나란히 있다.

오늘은 소고기 쌀국수 당첨! 이럴 땐 마음이

척척 잘도 맞는다.


일단 냄비에 육수 2인분을 담아왔고

면과 소고기 야채 마늘 절임을 봉지에 담아왔다.

빨갛고 튼튼한 봉투에 육수 냄비를 넣고

봉지 두 개를 올려 계산을 마친 남편은

육수가 식기 전에, 면발이 불기 전에 빠르게

집을 향해 걸어왔으리라...


바퀴 달린 책상 겸 작은 식탁에 그릇을 올려놓고

봉지 끝을 잡고 빙돌려 야채와 소고기가

위로 올라오게 쏟아냈다. 그리고

육수를 국자로 살며시 두세 번 올려

갓 삶은 쌀국수가 잠길 정도 부었다.


아직 아직 따로 담아준 동글 납작 마늘 절임을

국수 위에 올려 인증숏을 남긴다.ㅎㅎ 둘이서

호로록 호로록 냠냠 김치는 한국산

국수는 벳남정성과 수고는 남의 것

내배는 사랑스럽게 차올랐다.


얼마일까요? 단돈 2천 원

어머나? 리얼?


고기도 먹고, 국수에 고수까지

2천 원이라니 역시 벳남 쌀국수다.

4천 원에 두 그릇 (벳 남동 8만 동)의 행복을 먹었다.


건조하고 딱딱했던 면발이 뜨거운 육수를 만나

부드러워지고 감칠맛이 나듯 지금 나의 삶에

뜨거운 열정을 부어 퍽퍽하고 단단했던 마음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들고 싶다.

국수 면발처럼...




베트남에 온 지 4일 만에

한국 의사 선생님이 계신 병원에 들렀다.

 돌아왔다고 인사겸 상태를 체크하러

갔는데... 진료가 길어졌다.


꼬르륵꼬르륵

기다림이 1시간을 넘어섰다.

때를 놓치면 슬며시 짜증이 올라온다.

ㅎㅎ 나만 그런 건 아니쥬?


한인타운이 밀집되어있는 미딩 식당가에

17만 동 (한화 8천5백 원)의 잔치국수로

배를 채웠다. 밑반찬으로 양념게장에

계란찜에 7첩 반상이다. 잔치국수 한 그릇에

김치 하나면 족한데 말이다. 역시나 한국식당은

2천 원짜리 쌀국수와는 차이가 있다.


뻣뻣했던 면발이 펄펄 끓는 육수에 빠져

흐물흐물 허우적거릴 때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저어준다. 꼬였던 내 마음도

실타래처럼 슬슬 풀렸다.


소면은 나를 위해 오늘도 각 잡힌 몸매를

풀어헤치고 부드럽게 다가왔다.

온몸에 힘을 주고

머릿속에 스트레스를 가득 채우고

화를 내며 살아가기보다는

국수 면발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그리 살아야 되는 건데...



국수는 역시 잔치 국 수지~~~ 살다 보면

국물 없이 비빔국수가 되어가는

인생사 쫄깃하고 탱글한

비빔면처럼 야채랑도 어울리고 해산물

각종 양념에도 쓱쓱 비벼지는 면발처럼...


오늘도 국수는 온탕, 냉탕을 넘나들며

매끄러운 몸매를 뽐내며 살아가지 않는가?

오천 년의 역사를 품고 살아낸

국수 면발의 내공을 후루룩후루룩

내 입으로 접수시킨다.


4월을 보내는 금요일


국수 면발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엉키지 말고 살아가기로 해요~~  

골뱅이소면에 맥주한잔 캬~~좋다.

하하하 호호호 웃는 날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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