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골 마을에...

동행

by 아이리스 H

지금 이곳은 우르르 쾅쾅 번쩍번쩍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 비가 내리고 있다.

옴마야~~

여름 방학 납량특집도 아니고

으스스하고 오싹거리는 여름날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세상에...


2022년 8월

폭우가 휩쓸고 간 한국

하늘은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비를

퍼부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인간은 자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잠잠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긴 세월을 살아온 선인들도 장대비에

숨죽이고 조용히 기도를 하였으리라




25년 차 의류회사를 퇴사 후 남편은

베트남에서 의류사업을 시작했다.

어느새 6년 차

인생 속 폭우 같았던 날들이 지나가고

코로나 라는 복병도 만났고, 힘겨웠던

날들을 보낸후, 다시 일어났다.

우린 30년 차 삶의 동반자로 동행중이다.


베트남엔 귀신이 많다고 한다.

베트남인들은 민간신앙을 많이 믿는다.

처음 통역사를 만났을 때 우리는 늘

귀신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

제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귀신이 오는 날 금기사항도 말해주면서

우린 그냥 흘려 들었고,

제단도 만들지 않았다.


베트남에는 집집마다

공장이나 사무실, 식당, 모든 사업장에

반토 또띠엔(조상을 모시는 제단)이 있다.

향과 불빛으로 예쁘게 장식하고,

꽃과 음식으로 상을 차려 제를 지낸다.


재물신 , 온신, 지신, 토신 등등...

오랜 세월 토착화된 미신들...

논이나 밭 중앙에도 위험한 이곳저곳에

반토나 조상의 묘를 만들어 두고 제를 지내며

안녕과 부귀영화의 복을 기원하는듯하다.

불교, 유교, 기독교, 카톨릭, 도교,

이슬람교가 뒤섞여 샤머니즘적인 반토문화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어제 하이즈엉에 있는 공장에 갔을 때였다.

와우~ 초코파이가 제를 지내는 상위에

보란 듯이 올려져 있었다. 조상신도

나 만큼 초코파이를 좋아했나 보다...


그 밑에는 잘 익은 고구마가 껍질을 벗고

토막이 난 채 누워있었고 삶은닭은

빨간 밥 위에 고개를 위로 한껏 쳐

들고 날개를 접고 폼을 잡고 있다.(소름)

갖가지 음료수와 물과... 과자들이 있었다.


조상신들은 이 많은걸 배부르게 먹고

살아있는 자들에게 진정 복을 주려나?

그렇게 믿고 있는 순수한 정성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ㆍ2022년 8월 10일
작은 반토




어릴 적 비가 오는 여름밤이면 휘휘휘~

바람소리에도 무서웠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쓰고 눈만 겨우 내놓은채

'전설의 고향' 속 귀신을 기다렸다. 티브이를

틀어 놓고 언니를 불러 함께 보았다.


어찌나 무섭던지?

온몸이 굳은 듯 화장실을 가고 싶지만

엉덩이가 붙었는지 바닥에서 안 떨어졌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에서 복수를 하려고 살아있는 자들에게

나타나 해꼬지를 하는 장면들이 생각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가에 핏자국을

눈가에 검은 흙칠을 하고 얼굴은 하얗고

'옴마야~ 무서라'

분장을 하고 나타난 귀신의 모습은 오싹했고

등줄기에서 땀이 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십자가를 지니고 다녔다.

귀신을 만날까봐...

충청도 작은 마을 교회에 가면

내 마음은 어찌나 평화로운지?

그때부터 나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해결하고자 교회에 다닌 것 같다.


어린시절 몸도 마음도 엄청 약했다.

귀신이 너무 무서웠다.

어른이 되어보니 귀신보다

나쁜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알았다.


반백년을 한국에서 살아냈고,

남편 따라 베트남으로 오게 되었다.

귀신 ㅎㅎ 잊고 살았는데...

베트남 직원들이 늘어갈수록

인형의 갯수가 늘어났다.


벳남 직원들은 인형을 책상 옆에 두었다.

이 작은 인형이 귀신을 물리친다고?

나의 안녕을 책임진다고?

믿고 있는 현실 앞에 웃음이 났다.



벳남 직원들의 책상 위

신은 존재하는가? 귀신은 과연 있는가?

베트남 타이빈 조용한 마을에 도착했다. 음산한 기운보다는 따스한 햇살이 포근했다. 그곳은 공동묘지 즉 무덤가 마을이었다. 소규모 공장에 답사를 가는 중이었다. 소름이 돋는 대신에 차에서 내려 핸드폰을 들이댔다.


어머나! 작은 집 그러니까 개집보다 크다. 평수도 있다. 울타리도 있고, 뾰족하게 집 모양을 하고 여러 개가 모두 다르게 모여서 작은 마을을 이루었다.

(동화 속에서나 볼법한 난쟁이 나라?)

지나가며 찍은 무덤가 마을
베트남 북부 타이빈 무덤 앞


이게 무덤이라고?

반달을 엎어 놓은 듯한 무덤 과는

전혀 다른 사후의 세계다.

이곳은 죽은 조상을 집 가까이에 모신다

날마다 제를 지내며 조상의 은덕을 감사한다.


한국의 유교문화처럼 이곳도

제사를 귀히 여기는 풍습이 남아있다.

그저 집 모양 틀을 갖춘 무덤들이 아주 많았다.


3년 전에 바뀐 통역사도 말한다.


" 여기는 너무나... 말이 없는 마을이죠"

"너무 조용해서 무섭기도 한 곳에요..."


" ㅎㅎ 죽은 자는 나를 해치지 않아요"

"난 무섭지 않아요."


차에서 내려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뜰에 닭들이 돌아다니고 과일나무와 꽃들이

보이고 고즈넉하게 구름이 흘러가는 곳이었다.

한 적하다 못해 적막한 마을이었다.


지독한 가난으로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자연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

그런데 가져갈 것이 많은가 보다

담장에 병을 깨쳐 꽂아 두었다.


귀신을 막기 위해서?

도둑을 막기 위해서?

자기자신을 지키기위해서?

담장위 깨진 병조각들

어린 시절 우리 집 담장 위가 떠올랐다.

뭐 그리 귀한 것도 없었는데 아버지는 병을 깨쳐

담 위에 데코를 했을까?

삶을 지켜내기 위한 그 옛날의 충청도 마을과

베트남 타이빈 무덤가 마을은 뭔가 닮은듯 했다.




조용한 무덤가 마을엔 옷을 만드는 여인들의 재봉 소리만 들릴뿐이다. 남편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난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한 채 가르치는 일을 하며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행복이라 우기며 살았을 것이다.


남편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지만 난 그와 동행하고 있다. 함께 살아오는 동안 인생속 폭우도 만났고, 폭염도 만났고 , 폭소(웃음)도 만났으니 우리의 동행은 값진 것이라고 ...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호수공원 산책길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왔다.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자연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고 있었다.

그저 내가 알지 못할 뿐이지...

신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먼 타국 땅에서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비폭탄을 맞아 힘겨운 시간들...

빠른 복구로 마음이 슬프지 않길...

곧 맑은 햇살과 바람을 보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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