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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Dec 03. 2022

오호라~ 공 눈이
새하얗게 내렸다.

오호라~~

저녁 8시

저녁을 먹은 후, 티브이를 보다가 갑자기 

산책을 가자며 나를 꼬셨다.그런데 남편은

산책코스를 지나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데? 이 시간에?

일단 차에 타보라며 문을 열었다.

여름나라엔 눈이 오지 않는다.

엄청 추운 날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하노이엔 추운 날씨만 한 달쯤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야심한 저녁에 눈을 보여 준다고?

익숙한 곳으로 차를 몰고 간다. 

설마? 설마? 설마?

그곳에 눈이 온다고? 그랬다. 정말 눈밭이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다. 하하하

눈 공? 공 눈? 초록 잔디 위에 새하얗게

눈송이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1층, 2층, 3층으로 된 이곳은 

푸 엉덩 골프 연습장이다.

눈처럼 하얗게 불태운 연습공들이 

눈밭이 되었다.

한국엔 첫눈이 왔다는데... 정말로


골프를 치며 연습을 하러 수없이 많이 오고

갔지만 저녁시간에 남편과 나란히 연습장에

가게 되었고, 눈처럼 하얀 공들이 보였다.

골프 연습은 뒷전이고, 와와~ 소리를 지르며

사진 찍기에 또 빠져버렸다.


여자는 2층에 두 명뿐 다 남자들이다.

내 눈엔 하얀 눈덩어리로 보이는데...

남자들에겐 그저 연습공으로 보이겠지...

아이리스 감성 부자 ㅎㅎ 인정?

남편은 저녁 먹고 한껏 땀을 빼며 연습하고

난 연습공을 날리며 눈밭을 만들고 있다.

보이십니까? 공 눈? 눈밭이다.

골퍼들의 땀방울이 모이는 곳

멋진 불빛 사이로 날아간 공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눈밭을 만들어 놓았다.

운동이라곤 해본 적 없던 내가 골프 입문

4년 차 골프에 푹 빠져 살 줄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고, 나도 몰랐다.


본업은 선생인데 부업은 마치 골프선수가

된 듯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연습장에 온다.

지금 이 시간 공을 날리며 행복감이 충만하다.

저녁밥 든든하게 먹고 왔건만 공을 날리는 사이

소화가 다 되었는지? 살짝 배가 고프다.


꽉 채워졌던 공 눈도 밥그릇이 비었다.

깨끗하게 공을 다 치고 난 후 느끼는 뿌듯함

골퍼라면  바로바로 이런 맛을 알 것이다.

검정 밥그릇이 텅텅 비어갈 즈음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등짝이 흠뻑 젖는다.

바닥은 이미 눈밭이고, 공이 담겼던 밥그릇은

설거지 해둔 밥그릇처럼 깨끗하다.

남편 따라 연습 나오길 정말 잘했다.

눈밭에서 공 눈과 함께 파이팅! 했다.


나의 땀과 노력을 고스란히 내려놓고

돌아와 단잠을 잤다.


어느 일요일 오후

이것저것 사들고 골프 연습장에 갔다.

요즘 베트남엔 날씨가 참 좋은 편이다.

필드가 기도 좋고, 나들이하기도 좋다.

새로운 곳으로 길을 찾아 네비를 따라갔다.


이미 많은 골퍼들로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1층 말고 2층 여성전용은 자리가 있어

바로 칠 수 있다고 한다.

남편은 남자지만 드라이버 빼고 연습이

가능하다고 하니 잠시 여성 모드로 ㅎㅎ

.

2층으로 올라갔다. 1층보다 탁 트인 시야

남편이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난 간식을

차렸다. 골프 연습에 진심이지만 일단 배를

채우고 채를 휘둘러야 한다는 나만의 생각

공을 채에 맞추기 위해 컨디션을 잡는 일은

먹어야 한다. 100개의 공을 날리기 위해

하노이 로열 시티 부근 골프 연습장 2층



골프채도 정리해 두고, 호박찰떡에 빵 우유

깎아온 단감으로 배를 채운다 음~이맛이다.

살랑살랑 바람도 불어오고

열심히 공치는 남녀노소 이곳 벳남 인들도

제법 골프를 친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

그 안에 우리는 시간 부자가 되어 끼어있다.


두 아들 키워놓고 끼니 걱정할 아이가 없으니

우리는 이제 둘만 잘 챙겨 먹으면 된다.

세월이 흘러감은 아쉽지만 이런 날도 오다니

정말 좋다. 골프는 연습만이 살길이다.

즐기려면 잘 쳐야 한다는 진리를 믿는다.

조금씩 실력이 좋아지고 있음에 더더

게으름 부리지 않고 열심이다.


맛난 간식도 먹었으니 스트레칭 후

연습공을 뻥뻥 하늘 높이 날려본다.

행복은 이렇게 스트레스를 날리는 거다.

돌아오지 않는 연습공을 오늘도 열심히

누가 알아주지 않는 아마추어 지만 

프로 선수가 된 듯 땀을 흘리고 있다.



누군가는 공을 열심히 치고

누군가는 공을 열심히 수거한다.

공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철망으로 덮은 공 눈 수거 차가

지나다니며 공 눈을 수거한다.


이곳엔 365일 공 눈이 내린다.

공수거 차량


연습공을 날리며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이리스는 행복한 겨울을 맞고 있다.

필드 백순이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갱년기 깊은잠을

잘 수 있었던 묘책은 골프연습이었다.


나 스스로에게 파이팅!! 을 외쳐본다.


주말 

월드컵 16강을 축하하며 얼마나 애썼는지?

그들의 수고와 땀방울을 짐작할 수 있다.

작은 골프공 날리기도 힘든데 축구공을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슛을 날린 선수들에게

짝짝짝 힘차게 박수를 보내본다.


오늘도 슬슬 연습장에 공눈 보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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