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4
울 엄마는 9남매의 첫째 며느리다.
'위대하다'란 표현이 과한 것 같지만 부족하다.
4남매 낳으시고 기르시고
모두 출가시켜 2명의 사위와 며느리,
손주 손녀 7명까지 그렇게 식구가 늘어나는 동안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충청도 남편을 만나 충청도에서 사신다.
무싹을 키워 샐러드를 해 먹고 그중 한 개를 페트병 작은 곳에 옮겨 심었다.
설마... 여린 줄기와 몸뚱이로 무싹은 조금씩 자라서 드. 디. 어 꽃을 피웠다.
연분홍빛 무꽃을 처음 보았다.
다른 새싹들은 내 입속으로 들어와 즐거움을 주고 소화되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베란다 구석에서 빛도 제대로 못 받고 물도 겨우 받아먹으며 어느새 쑥~쑥 자라 너무 작고 앙증맞고 예쁜 무 꽃을... 피워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기만의 색깔로 자신을 알렸다. 기특하고 예쁘고 신기하다.
해준 게 없는데... 이렇게 꽃을 피워 내다니
'넌 정말 이쁘다'
엄마가 생각난다. 문득...
이렇게 예쁜 꽃을 피어낸 줄도 모르고
난 7박 8일 여행을 갔다.
사실 말이 여행이지 잠시 코로나를 피해 청정지역 타이빈이란 곳에 다녀왔다. 코로나 환자 0명 기적!
그곳엔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와 공장이 있고 힐링이 필요할 때 가끔 가는데 조금씩 정이 들어가고 있다.
세컨드 하우스가 있어서 글쓰기도 좋고 골프 치기도 좋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도시다. (다음에 소개)
다시 하노이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을 비운 사이 우리 집 베란다는 봄이 봄이 봄이 와 있었다.
초록이들도 보드라운 연초록빛으로 인사하고 행복란도 하얗게 작은 꽃들을 많이도 피워 냈다.
사실 벳남 하노이는 북부라 1월부터 2월 짧은 가을 같은 겨울이 있다. 제법 춥다.
2월 22일 사다 놓은 카랑코에(꽃말은 평판, 인기, 인망:세상 사람이 우러러 믿고 따르는 덕성)도
꽃망울을 색색별로 터트려 주인을 맞이해 주었다. 온 세상이 환해진 듯 내 마음도 덩달아 춤을 춘다.
울 엄마는 꽃을 좋아한다. 단독주택에 살 때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마다 화분을 두었고 작은 옥상 한편에는 여러 가지 야채들을 심어 먹거리로 사용하셨다. 상추랑 고추랑 방울토마토 등...
초록 알이 동글동글 완두콩은 학창 시절 내 도시락 속에서 너무나 예뻤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아끼고 좋아하는 분재 소나무를 손으로 훑어 따셔서 송편 밑 찜기에 깔았다. 다음날 아버지의 버럭 큰소리에 나가보니 엄마는 밤에 몰래 솔잎을 따느라 한쪽만 휑하게 소나무를 반토막 남겨 놓았다.
모양새는 안 좋았지만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혼나는 울 엄마 우짤까나??
솔향이 진하게 베인 송편 맛은 일품이었지만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빨강, 주황 , 노랑, 진분홍색 눈에 띄는 색깔을 좋아하시고 꽃무늬 원피스도 즐겨 입으셨다.
그중에서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를 특별히 좋아했다. 야리야리한 가지에 뿜어 올린 코스모스 같은 여인으로
엄마는 모진 세월 코스모스처럼 환하게 웃으며 그 많던 제사를 다 기억하시고 챙기시며 시어머니와 5명 시누이의 시집살이를 다 이겨 내셨다. 엄마의 눈물과 땀방울을 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나는 중1, 언니는 중3, 교내 가족 노래자랑 대회가 있었다. 우리는 참가 신청서를 내고 며칠 동안 맹연습을 했다. 음을 맞추면 가사가 틀리고 가사는 쉬운데 헷갈렸다.
곡명: 즐거운 나의 집
나랑 엄마는 소프라노, 언니는 알토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로 시작하여 내 집 뿐이리~~ 로 끝나는 노래였다.
운동장 가득 관객들이 모였다.
그런데..
그런데..
아~~ 그런데..
아~~ 도망가고 싶다.
엄마가 걸어오신다.
깜짝이야!!
학교 행사라고 1등 해야 한 다시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복 차림이다. 오 마이 갓~~ 쥐구멍이라도 있음 숨고 싶었다.
웬 한복??
언니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꾸미고 오셨다. 난 엄마가 그럴 줄 몰랐다.
양장도 잘 어울리시고 시골 훈장님댁 첫째 딸이었던 나름 멋쟁이 엄마였기에
한복을 입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즐거운 곳에서 날 부르면 지금이라도 당장 도망가고 싶었지만...
행사를 그르칠 수 없어서 엄마를 가운데 세우고 언니와 나는 엄마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음도 틀리고 가사도 까먹고 이쁜 척만 하셨고
나는 무대에서 빨리 내려오고 싶은 마음에 대충 노래를 마무리했던 것 같다.
교장선생님의 심사평은 너무너무 감사하고 행사를 빛내주신 우리 가족을 칭찬하셨다.
하지만 상과 상품은 다른 가족에게 넘어갔고 나에겐 부끄러움만 남아 있었다.
엄마는 이 옷 저 옷 고르다가 마땅한 게 없어서 한복을 입었다고 했다.
"너네 엄마 이쁘다. 넌 참 좋겠다."
아파트로 이사 오고 좋아라 하시던 울 엄마.. 그런데 자꾸만 아파트 단지 내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 오신다. 그리고 아까운 걸 버렸다며... 새 아파트를 헌 아파트 만들려고 작정하셨다. 잔소리 대장 딸은?
"엄마, 친구랑 찜질방 가서 목욕하고 천천히 오시면 제가 싹 정리 해 놓을 께요..." 간식값까지 손에 쥐어준다. 못 이기는 척 엄마는 나가면서 나에게 부탁보다 아니 호소를 한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건 이래서 못 버려, 저건 저래서 안되고, 요건 진짜 소중 혀, 그건 꼭 필요한 건데... "이 핑계 저 핑계 사연도 구구절절 많다. "알았어요 알았어" 알긴 뭘 아는지??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이건 너무 낡았어~ 버려, 저건 분위기에 안 맞아 버려, 요건 소중하니 남길까?? 그래 그건 필요 없어 버려, '
난 혼잣말을 하며 분리수거를 하고 재빠르게 버릴 것을 버린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빨리빨리
버리고 비우고 나니 집안이 훨씬 넓어지고 깨끗 해졌다.
목욕탕에서 돌아온 엄마 "여기가 어디여? 우리 집 맞게 찾아온 거지?"
식탁보다 밥상을 좋아하시는 울 엄마
동그란 밥상 가득 빈틈없이 채워야 엄마표 밥상이 완성된다. 심플하고 단순한 나와는 많이 다르지만
울 엄마표 밥상은 나도 좋아한다. 굴은 기본, 새우, 멸치, 더덕구이, 장어구이, 두부부침, 브로커리, 동치미, 깍두기, 달래장 , 문어, 어... 간장게장이 빠지고 아귀찜이.. 어쨌든 빈틈없이 채우고 상밑으로 한두 개 내려놓거나 옆상을 이용해서라도 꾸역꾸역 올려놓으신다. 식혜, 수정과, 과일... 엄마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다.
깔끔쟁이 울 엄마는 음식찌꺼기를 버리다가 그만 넘어졌다.(2020년 9월 17일)
응급실행으로 병원에 가셨다. '불행 중 다행' 이란말 실감했다. 발목이 부러져 수술하셨다.
발목에 철심 6개를 심고도 엄마는 머리 안 다친 게 정말 다행이라며 웃으신다.
큰일 날 뻔하셨다. 멀리 있어 가보지도 못하고 병원비를 보내고 엉엉 울었다.
간호사 출신 언니가 엄마를 극진히 살피고 돌보느라 너무 애썼다. 며느리들도 돌아가며 간호하고
아들들도 휴가 내어 간호를 했다. 엄마의 사랑과 희생으로 살아온 60년쯤의 날들을 4남매는 조금 놀랐지만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코로나 상황 속이라 좀 불안했지만 병원에서 치료받으시고
엄마는 휠체어를 타고 퇴원하셨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설날 엄마표 밥상은 다시 빈틈없이 차려졌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을 구별 지으셨던 아버지는 요즘 주방에서 엄마밥상을 차리신다고 한다.
꽃처럼 곱던 울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닮아서 일복 많다며 나를 걱정하신다.
꽃을 보면 엄마의 환한 얼굴이 생각난다.
엄마는 아파트 베란다에도 피고 지고 사시사철 꽃을 심어 두고 본다.
난 엄마를 닮아서 베란다 가득 꽃을 심고 새순을 보며 엄마처럼 말을 건넨다.
지금은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혀있어 오고 가는 것이 힘들고 불편하다.
따뜻한 봄날 엄마랑 꽃구경하며 '즐거운 나의 집'을 오랜만에 불러주고 싶다.
엄마의 트로트 18번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내가 될 줄이야..
엄마! 꽃처럼 예쁘게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