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5형제와 여전사.

Happy Tree

by 아이리스 H

제목: 낯선 방문자

정민이의 공책


똑똑 누구지?

뿡~ 누구야

방귀 뀐 놈


쿵쿵! 잘못 왔나 봐?

야옹야옹 웬 고양이?

딸랑딸랑

나 고양이 알레르기 있는데...


똑딱똑딱

새벽 2시에 사람이?

우당탕

뭐를 부수는 거지?


뻥!

내 집 밖에 축구공이 있었나?

삐그덕

문을 잠겄는데...


번쩍! 으악!


2021년 3월 20일 토요일 오후 2시 수업 정민이의 시를 소개합니다.


#1. 정민

매주 창의력 논술 수업을 받으러 우리 집으로 오는 정민이는 하노이에서 먼지역 롱비엔에서 살고 있다. 처음엔 하노이에서 살다가 학교 근처 단독 빌라형 저택으로 이사를 하였고 2시간 이상의 거리를 힘들지만 벌써 2년째 나를 만나러 오고 가고 있다.


부지런한 정민이 엄마는 작은 체구에 야리야리한 몸매로 오로지 아들을 향한 교육열과 남다른 열정으로 완전 원더우먼 급이다. 그래서 나는 그 엄마와 아들을 언제나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그리고 마음 깊이... 응원한다.


사실, 정민이는 9살이었고 국제 학교를 다니다 보니 국어가 부족하다고 처음 소개를 받았지만 테스트를 해보니 책 읽기도 수월하고 글쓰기도 괜찮았다. 다만 조금 다듬고 가르쳐보면 좋을듯하여 1:1 맞춤형 논술 수업을 해주었다. 하노이에서 나의 첫 번째 제자는 한국으로 돌아가며 두 번째 제자 정민이를 소개해 주었고 나는 2년의 공백기를 보내고 다시 가르치는 일을 이어가게 되었다.


결혼 후, 13년 만에 어렵게 정민이를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애정과 정성으로 아들을 키웠을 것이며 살폈을게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아이의 뒷바라지하느라 애쓰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90분 나의 수업은 언제나 1:1 열강 일 수밖에 없었다. 외동이로 자란티가 안 날정도로 사회성도 친밀감도 우수했다.


어느 날, 정민이는 자기 용돈을 나에게 주었다." 왜? 이걸?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와서 나를 가르쳐 주시니 너무 감사하다"며 욕실 청소하고 받은 용돈을 덥석 나에게..." 아니야, 너네 엄마가 이미 선생님에게 교육비를 지불했으니 괜찮아, 마음만 받을게 "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내주머니애 돈을 넣어 주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큰돈은 아니었다. 코 묻은 아이의 돈을 받고 나는 '선생님 다시 하길 정말 잘했다.' 이런 보람과 감동은 누구나 아무나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정민이는 첼로를 배우고 , 축구와 골프도 배운다. 영어도 잘하며 학교에서도 인기가 좋은 편이다. 코로나가 오기 전 베트남에서 브라질로 아빠가 발령이 나서 가야 했지만 1년 넘게 가족은 떨어져서 생활하고 있다. 올해 6월이면 정민이 아빠가 있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 나는 너무 아쉽지만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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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명만 수업을 하려 했는데... 정민이 엄마는 한 명만 더 받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세 번째 제자를 받게 되었고, 네 번째 제자,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제자까지 받아서 남자아이들만 어느새 독수리 5형제를 만들었다. 1. 정민, 2. 의찬, 3. 지서, 4. 재서, 5. 민규 이렇게 같은 학년 다른 학교 띠동갑 토끼띠들을 만나게 되었다.


2014년 슈퍼 슈퍼 슈퍼 슈퍼 우렁찬 엔진 소리 독수리 오 형제 쳐부수자 알렉터 우주의 악마를 불새가 되어 싸우는 우리 형제 ~~ 태양 위 빛나는 지구를 지켜라.
독수리 오 형제 추억의 만화 속 캐릭터를 하노이에서 내가 부활시켜 보았다.


그 틈에 한국으로 가거나 아쉽게 수업을 많이 못한 제자들도 있었지만 꾸준하게 성장한 독수리 5형제는 나를 살렸다. 나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와 힘을 주었고 기쁨과 웃음을 되찾아 주었다.


그 후 , 더 이상 제자를 안 받겠다는 내 의지는 약해졌다. 이곳은 타국이라 국어수업이 절실하게 필요한 아이들이 많았고 일단 대기를 시켰다. 다섯 명의 독수리 5형제는 각자 집에서 1:1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여름방학 특강과 겨울방학 특강을 잡아 서로 얼굴을 보며 그룹수업을 진행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독수리 5형제를 위해 이곳에서 나름 나의 인지도를 굳혀갔다. 독수리 5형제를 우리 집으로 초대하여 글쓰기 대회를 하였고 모두 상과 상품을 주기도 했다. 서로 성장하는데 자극제 역할을 하며 한 선생님 같은 제자로 빛을 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친구를 통해 비교가 아닌 스스로 나아지려는 생각들.. 글씨도 더 잘 쓰고, 책 읽기도 더 잘하며 , 선의경쟁 선상에 나란히 세워두어도 혼자가 아닌 함께 멋지게 날아가는 독수리 5형제가 되어가길 바랬다. 외동이 들은 많아지고 혼자 크다 보니 이기주의적인 생각들과 외로움을 바꿔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2. 현수

대기자로 있었던 여학생 현수는 독수리 5형제를 아우르는 여전사였다. 참 착하고 예쁘게 자랐다. 어려운 원서도 척척 소화해 내고 글밥이 많은 인쇄된 종이책을 즐겨 읽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시시하다고 말하는 하노이에서 보물 같은 천재소녀를 만났다. 해맑게 웃던 긴 머리 여전사 현수는 드디어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방문했다. 낯선 방문자였지만 한아름 꽃다발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KakaoTalk_20210325_005639434.jpg 여전사 현수가 들고 왔던 꽃다발 처음 만나는 날


대기했다가 처음 나를 만나러 오는 날 아직 수업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왜, 이걸??" 진작 받을걸 하는 후회를 살짝 했다. 그리고 그날 우리 집 베란다를 환하게 바꿔 놓았다. 감동이었다. 그 후, 수업을 하는 동안 현수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아보카도 씨앗을 나눠주었더니 멋지게 키워냈고 숙제도 일기 쓰기도 책 읽기도 너무 훌륭한 아이였다. 내가 여전사에게 배울 것이 더더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4월 귀국을 앞두고 있다. 어디서든 빛나는 보석 같은 삶을 살아주길 바란다. 여전사 현수야~~ 꽃다발을 들고 왔던 너를 기억할게


#3. 의찬

"선생님, 울 엄마 좀 수업해 주세요. 제가 더 빨리 책도 읽고 글도 쓸 테니... 30분만 울 엄마 수업해 주세요"

"왜?? 그런 생각을 한 거니?"

"엄마가 잔소리 덜하고 착해졌으면 좋겠어요."

의찬이는 외동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의자에 10분도 앉아 있지 못했다. 1년 후, 폭풍 성장하여 일기도 독후감도 잘 써내며 논술 수업 성실맨 일인자로 등극했다. 그리고 의찬이 엄마는 정말 착하고 예쁘다. ㅎㅎ


늘 꾸준하게 학습할 수 있도록 약속을 지켜 숙제도 잘 챙기고 늘 밝은 웃음과 상냥함으로 대했다. 가끔 상담 중

속상한 마음을 털어내며 눈물짓기도 했지만 씩씩하게 아들을 잘 케어했다.


졸라맨으로 여러 가지 표현을 잘 해냈으며, 100명 넘게 공책 가득 그려진 졸라맨들은 다 달랐다. 말수가 없어서 고민하는 엄마의 한을 풀어줄 정도로 말이 많아졌다. 착하고 귀여운 의찬이는 가끔 어려운 문제를 맞혀보라며 퀴즈 책을 들이댄다. 호호 깔깔 답을 틀리면 더 좋아한다. "우아, 선생님도 모르시는 게 많네요 ㅎㅎ" 6월쯤 한국 귀국을 준비하고 있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골고루 편식하지 말고 알았지? 귀요미 의찬아~~ 그래야 아이디어가 팡팡 쏟아진단다.


#4. 민규

"민규야, 너는 가격이 얼마일까? 선생님이 너를 살 수 있을까? 얼마면 엄마가 너를 팔 수 있을까?"

" ㅎㅎ 저요, 공짜예요."

"헐~~ 왜? 그렇게 생각하니?"

" 울 엄마가 저를 너무 힘들어해서요, 아마 그냥 드릴 수도 있어요"

민규는 사춘기 초입에 서있다. 생각이 많고 판단도 빠른 제자였다.


일기장 가득 수영대회 이야기가 많았던 똘똘이 민규는 더더 똘똘한 동생이 있어 늘 피해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 수업을 통하여 많이 해소되었고, 나에게 어느 날 피아노곡을 쳐주던 감성이 풍부하고, 섬세하며, 마음결 고운 제자였다.


분명 훌륭하고 멋진 모습으로 짠~ 나타나 줄 거지... 기대한다 민규야!!

이번 주, 일요일 한국으로 떠난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던 날, "내제자 훌륭하게 키워주세요~"한마디에

민규 엄마는 코끝이 빨개지도록 나를 안고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났다. 만감이 교차했던 순간

아무 말 없이 그냥 몇 분이 지나갔다. 민규도 동생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선생님 고마웠어요. 덕분에 민규의 마음을 많이 읽을 수 있었어요. 한국에 가서도 종종 소식 전할게요"

톡으로 장문의 문자가 왔다. 또다시 눈물이 났다. 나도 두 아들을 키우며 내가 느꼈던 감정이 오버랩되면서 나는 오랜만에 눈물샘이 고장 나지 않음을 발견했다. 행복해서 울었다.



5년 전, 한국에서 처음 베트남 하노이로 왔을 때 난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무기력해졌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모든 일이 귀찮고 하기 싫었다. 무작정 쉬어가기로 하고 피신처를 찾던 중 여행처럼 왔다가 이곳 베트남 하노이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학교 수업도 , 개인수업도, 돈도, 명예도, 다 내려놓고, 쉬어가기 위해 남편을 따라나섰다. 죽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수업을 거부했고 수업을 더 해달라 하는 곳도 가지 않았다.


초등 고학년부터 고3 수험생까지 국어 영역을 개인 과외해 주었고, 국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국어 시험을 족집게처럼 집어서 정리하고 수업해주며 국어 정답을 찾기 위한 스킬과 백점을 향한 나의 학교 밖 사교육은 줄 서서 기다리는 학부모와 학생들로 넘쳐났다.


밥도 제때 먹지 못했고 개인수업을 하다 보니 이동시간을 이용하여 패스트푸드나 길거리 노점상에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아프고 몸살이 와도 약을 먹고 수업을 했으며 시험 후에는 학생들의 점수에 따라 내 기분도 오르락 내리락을 함께했다.


"선생님, 엄마가 영어 , 수학, 과외선생님 다 잘랐어요. 선생님만 살아남은 거예요" 씁쓸했다.

"어떻게 나는 살아남았을까?"

"제가 국어 92점 받았는데 국어만 1등 했거든요 ㅎㅎ"

"음, 다행이네. 하마터면 너를 못 만날 뻔했구나"


그래도 나름 보람 있었던 건 국어 점수 100점으로 전교 1등을 해준 제자도 있었고, 70점대 국어 점수를 받던 제자가 90점대로 성적이 향상되었으며, 전국 글쓰기 대회에서 장원을 하거나, 우수한 성적으로 상을 타 오던 제자들에게서 힘과 에너지를 얻고 난 오뚝이처럼 또 일어났다.


자랑이 아니라 정말 정신없이 밤늦도록 수업을 했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주말까지 꽉 찬 스케줄을 소화 해 내느라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무작정 수업을 했다.


나름 나의 성실함과 노력은 제자들의 실력 향상과 맞물려 국어 내신 대비와 글쓰기 수업을 알차게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인정받아서 대기자가 있을 정도였다. 쓰러질듯하고 어지럽고 이유 없이 세상이 까매지는 현상까지 가끔은 쓰러지기도 했었다.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해도 뭔가 병명이 없는... 그래서 쉴 수도 없었다.


여하튼 15여 년 넘게 나는 학교 밖 선생님으로 불타는 열정과 땀방울은 쏟아부었다.

친구들이 석사, 박사를 공부하는 동안 난 현장에서 아이들과 성적을 운운하며 많은 경험과 지혜를 터득했다.


뒤늦게 대학원 합격을 했지만 시간도 여유도 없어 포기했다. 소개받아서 들어오는 수업을 무조건 하다 보니 천차만별의 학생과 학부형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고 나름 나의 교육에 한계를 느끼며 스트레스 상황에 빠졌었다. 그래서 쉬려고 왔던 도피처에서 2년을 쉬었다.




하지만 지금 하노이에서 여전히 제자들을 받으며 책 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마음 읽기를 통한 창의력 수업을 하고 있다. 2년의 공백기는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충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초등학생과 중학생까지 수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나의 엔도르핀 독수리 5형제와 여전사들이 내 곁을 지켜주어 너무 행복했노라고... 행복한 나무는 나의 희망이었다. 한 명, 한 명 소중한 마음밭에 씨앗을 심고 커다란 나무로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과 이니셜 Hwang Teacher (황쌤) Happy Tree(행복한 나무) 즉 황쌤과 함께하는 행복한 나무 되기는 나의 교육 철학이 되었다.


올해는 코로나로 수업을 많이 하지 못했고 갑자기 한국으로 발령이 나서 주재원으로 나와있던 제자들이 하나둘씩 귀국 준비를 한다. 마지막 수업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제자들과 엄마들과의 정해진 이별이 아쉽고 눈물이 난다. 길게는 3년 짧게는 3개월쯤 나의 제자로 머물렀던 자리는 또다시 새로운 아이들로 채워지겠지만 함께 웃으며 지냈던 소중한 아이들의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전사 현수와 독수리 오 형제 중 멋쟁이 민규와 일기를 잘 쓰던 의찬이. 독수리 5형제는 각자의 다른 길로 흩어지지만 하노이에서 그들에게 행복한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준 황금박쥐 선생님이 있었음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한국을 지키고 빛낼 제자들을 하노이에서 배출하여 보내는 중이다.


그동안 나를 믿어주고 맡겨준 학부모님들께 깊은 감사와 고마움을 전해 본다. 브런치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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