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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Aug 15. 2023

불편한 동거의 즐거움

너는 누구냐?

콩닥콩닥! 심쿵심쿵! 


남편이 하노이에 없는 틈을 비집고 동거를 원하는

롱다리 껑충이가 갑자기 나타났다.


예정 없이 막무가내로 쳐들어 와서는

능글능글 니글니글한 까만 눈빛으로 호소한다.


받아달라고? 고민할 틈도 없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 자기가 불청객인 줄 모르눈치다.


오잉? 무슨 일이야? 도대체...

속사정을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묵묵부답


조용히 베란다를 내어 주며 꿍시렁 꿍시렁

아~~ 정말 온몸이 오글오글 거린다.


베란다에 빨래도 널어야 하고

화초들 물도 주며 눈인사도 나눠야 하는데...


아~~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두리번두리번  톡톡!!


눈치채셨나요? 불청객


얌전한 줄 알았더니 널뛰기를 한다.

남의 집에 와서는 제집인 양

너는 누구냐? 어머나  깜짝이야 ~


아마도 태양을 피해 소나기를 피해

베란다 환기구로 들어왔을 확률 90프로다.

30층 높이까지 뛰어오른 정말 대단한 놈이다.


작은 개운죽 나무기둥에 갈색옷을 입고

붙어 있었다. 으아악 악~

깜짝 놀라 내쫓으려다 내가 도망쳐 나왔다.


눈치도 없이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난리 부르스를 친다. 뛰고 걷고 날고 정신이 없다.


메뚜기보다 크고 색은 갈색이고 롱다리도 두 개나

있고 말 로만 듣던 풀무치? 인 듯하다.

불청객 풀무치


폭풍 검색을 해보니 메뚜기 사촌이다.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얌전히 있기도 하고

밖을 내다보며 고독을 씹기도 하고 이 포즈, 저 포즈

취해가며 놀아달라고 찡찡 댄다.


내가 혼자 있으니 심심할까 봐 찾아왔다고?


베란다 공간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파인애플 잎사귀 사이사이에서 놀고 있.

놀이터

원치 않은 불편한 동거가 즐거움을 준다.


정체 모를 괴 생명체는 풀무치가 확실하다.

화분에 붙어있다가 슬리퍼 위에 멈췄다가  머그컵 안에

들어갔다가 베란다 이곳저곳을 탐색 중이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어려운 껑충이...


처음엔 징그럽고 못나서 소름이 돋았는데 자꾸 보니

나름 개성이 철철 넘치기도 하고 괜찮아 보인다.

그날 처음 왔던 그 자리에서 밖을 내다본다.

그리움

껑충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짠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어쨌든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아침 꿀모닝?


어머나! 아직 안 갔다. 살던 곳으로 가라고 부탁하며

바나나 껍질과 배춧잎을 슬쩍 베란다 안으로

들이밀어주고는 외출을 했다.


돌아와 보니 오호라~~ 아직도 안 갔다.

또 놀자 놀자 하는데  좀 피곤하고 신경 쓰였지만

나를 미소 짓게 해 주었다.



까꿍 까꿍 휘리릭~


못 찾겠다 껑충이 어디 숨었니? 까꿍

불청객 껑충이가 꼭꼭 숨어있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바람처럼 사라졌다. 휘리릭~~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까불 껑충이가

보인다. 진짜 어디로 갔을까?

불청객이 뜻밖에 나타나 즐거움을 주고

떠났는데 마음이 이상 하다.


시원섭섭하고 아쉽다.


살다 보면  우리  불청객이 나타난다.

싫다고 맘에 안 든다고 가라고 사라지라고

소리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적당히 머물다 때가 되면 바람처럼 스르르

사라지는 껑충이처럼 불청객으로 인해

내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갑자기 베란다를 장악했던 껑충이의 등장으로

불편했지만 잠시 세상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고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 즐거움이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사는 지혜와 식견은

자연에게서 터득하기도 한다.


웃을 일 없는 각박한 세상

가끔은 예기치 못한 일들로 웃게 된다.

눈치 없이 불청객으로 사는 것도 괜찮은 걸까?

내 옆에 불청객은 없는가?

혹시 내가 누군가의 불청객은 아닐까?


풀무치의 달콤 살벌했던 3일을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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