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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Sep 12. 2023

11살 인생 미로 찾기

다양한 생각

 

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며칠 전,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커다란 나무중앙에 봄, 여름, 가을이 공존하는 잎사귀를 발견했다.


작은 가지에 연초록빛 잎사귀 아래로 진초록의 잎사귀와 갈색으로 변한 가을을 닮은 잎사귀가 떡하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세상에 신기한 자연의 이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쌩쌩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처럼 학창 시절엔 삶이 온통 직선처럼 보였다. 앞만 보며 달리면 누구보다 빨리 도착하여 꿈을 이루고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인생 수직 상승곡선을 탈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추락하여 하강곡선을 그릴만큼 멘털이 강하지도 못했다 그럭저럭 보통 사람으로 살아남았다.


어느 순간 해답지를 잃어버린 문제집을 풀어가듯 정답 없는 인생에 높은 점수를 내려고 애썼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고, 인생은 오르락내리락 곡선을 그리며 파도타기를 했다.


훅~뜨거운 바람이 나를 맞이했고, 낯선 나라 베트남에서 살아남기 7년 차를 보내며 나는 네모진 세상을 동그랗게 만들어 가는 부드럽고도 우아한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행복한 삶을 찾아 직진을  반듯하고 곧은길만이 최고라 믿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의 한복판에서 울고 울었던 과거를 회상해 보니 무엇이 그리도 힘들게 했는지.... 미로 속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욕심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돈을 벌고 집을 사고 자식을 키우는 일이 그저 버거웠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 나무가 계절을 비껴 나뭇잎 색깔을 바꾸듯 그리 살아가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내 인생의 비타민


"선생님, 선생님" 다정하게 부르며 다가오는 아이들을 안아준다. "누구게? "아이들의 두 눈을 뒤에서 두 손으로 가리며 장난을 쳐도 헤헤헤 밝게 웃어주는 개구쟁이들이 나의 비타민이다.


11살 ~한국나이 만 10살쯤의 4학년 아이들을 만나러 일요일 아침 교회로 가는 나의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의 주제는 특공대이야기를 담은 성경말씀과 미로 찾기를 통해 말씀을 찾아내는 이다.


어젯밤 집에서 미리 미로 찾기를 연습 삼아 해 보았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갈팡질팡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고 멈추고 반복하다가 돌아 나오기를 여러 번 미로 찾기 게임은 쉽지 않았다.


'포기할까? '내일 아이들에게 물어보거나 슬쩍 커닝해야 할 듯했지만 오기가 발동했다. 그럴 순 없지... 혼자서 끙끙 미로 찾기를 하는데 두통이 생겼다. '이 나이에 뭘 하겠다고.. 어쩌면 좋을까?'


밤은 깊어가고 나의 근심도 깊어졌다. 끝내 미로 찾기 숙제를 미룬 채 다음날 무거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모르는 척 아이들 옆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준다며 "집중해 집중 알았지..."

11살에 만나는 미로 찾기 완전 수험생 모드다. 머리를 쥐어짜 내느라 세상 조용하다. '너희들 참 이쁘구나

미로 찾기에 진심인 아이들... 너희들이 내 인생의 비타민이라니까...' 속마음을 전한다.






역시나 에이스 우리 반 아이들은 기상천외하게 도착을 했다. 숨어있던 말씀도 금방 찾아냈다. 첫 번째 미로 찾기 성공한 아이는 중간에서 그냥 벽을 뚫고 진을 해버렸다. 볼펜의 능력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또 다른 아이는 포기를 선언했고 딴 길로 가려했다. 조금만 더 보자고 했더니 미로에서 빠져나와 출발선에서 뒤로 나와 밖으로 크게 바퀴를 도는 게 아닌가? 길이 아니면 길을 만들겠다며... 이런 이런...


미로 찾기 그림 따위를 뛰어넘어 공중으로 날아서 가겠다며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서는 볼펜을 내려놨다. 우긴다. 그리고는 중요한 단어와 낱말만 찾아내고는 뒷장에 그림을 신나게 그리고 있었다. 예배시간이 끝났음에도 그림에 도취되어 펜을 놓지 않았다.


장난꾸러기들이 사뭇 진지하고 조용했다. 미로 찾기에 진심인 세 친구를 빼고, 창의력이 높은 세 아이들을 보며 "얘들아, 사실 나도 어젯밤 미로 찾기 실패했거든... 아이큐 두 자리인 듯해 너희들은 정말 똑똑하고 지혜롭구나!" "선생님  헐~진짜요? 정말요? 반문한다.


흐트러짐 없이 미로 찾기에 성공한 아이들 중 한 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그림으로 그려 왔다며 빙그레 웃었다. 어머낫 이쁘기도 하지... 미로 찾기도 성공하고 그림까지 그려온 깜찍이를 칭찬하고 싶다.


"너희들은 역시 나의 비타민 맞다. "전원 출석반에게 선물로 주어진 과자를 먹어보라며 나에게 내민다.

 6명의 특공대들이 가끔은 힘겹지만 그래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두통이 사라졌다. 하하하  내 안에 즐거움이 채워졌다. 인생의 미로 찾기는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다양하고 특별한 생각들이 엔도르핀이 되어 힘든 세상 가운데 웃음이 되고 빛이 되기도 한다.


돌고 도는 인생 한바탕 미로 찾기를 하며 벽을 뚫을 용기도... 벽을 뛰어넘을 능력도... 벽을 무시하는 유머와 해학도 필요함을 나는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참 무지했다. 곧이곧대로 미로 찾기를 하내려 했던 마음을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처럼 뭐든 만들 수 있는 상태로 난 돌아가고 있었다. 미로의 벽을 리모델링하면 되는 거였다. 발상의 전환? 가끔 세상이 힘들어지면 생각을 바꿀 필요도 있다.


11살 인생에서 미로의 벽을 만나면  미로 속에서

해메지 말고 멋지게 탈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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