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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Nov 03. 2023

무작정 버틴 묵은지.

좋은 날이 올 거야~~~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베트남 하노이로 돌아오기 하루 전날

큰아들과 나는 현충사에 있었다.

묵혔던 감정들을 해소하며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가을을 마음껏 즐겼다.


금식과 죽으로 버티어낸 시간들...

아들과 엄마는 함께 했던 병원살이를

웃으며 말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3주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서로의 모습을 담아내는 순간이

참으로 귀한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였다.

"누이, 혹시 2년 묵은 김장김치 줄까?

매형 엄청 좋아하잖아~"


"오잉? 뭐라고?

 하노이까지... 묵은지를 가져가라고?"


"김치냉장고에서 잠자던 건데...

완전 미이라 수준이여 하하하"


" 고뢔? 일단 가서 볼게 기다려"


"진짜 뚜껑 열면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지만... 귀한거여 어여오셩~"


아들과 단풍놀이를 대충 마무리하고

묵은지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무작정 김치냉장고에서 2년을 버틴

묵은지와 1년을 버틴 묵은지가 궁금했다.


김치통이 짜잔~ 열렸다.

곰삭은 김치냄새가 진동했고

허옇게 유산균이 퍼져 있었다.

살짝 위를 걷어내고 아래쪽에

꼭꼭 숨어 있던 묵은지와 마주했다.


어머나! 세상에... 오 마이 갓!


여섯 포기를 구출하여 김장봉투에 담았다.

잎사귀 끝을 떼내어 한입 먹어 보더니...

" 형님, 김치맛이 살아있어요. 호호호"

싸고 또 싸고 압축팩을 동원하여

묵은지를 완전무장을 시켰다.


1년 된 것도 좀 괜찮아 보이는 것으로

다시 다섯 포기쯤 포장했다.

포기는 김치 셀 때나 필요한 거라지

인생에 포기는 없는 거라고 배웠다.

난 묵은지를 하노이로 공수하기 위해

가지고 가려던 옷가지를 포기했다.




맛을 위해 멋을 포기했다.


겉멋을 포기하고 묵은지처럼

곰삭은 맛을 옮기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묵은지가 되기까지...

배추는 봄부터 가을까지 어떤 시련에도

꿋꿋이 이겨내며 속을 채웠을 것이다.


연초록빛 겉옷과 노란 속옷을 입은 채로

거친 흙에서 뽑아지고 반으로 갈라져

천일염을 뒤집어쓰고 하루를 숨죽이며

절임배추로 변신을 하자마자... 찬물로

온몸을 씻고 누워있는 신세가 된다.


고춧가루, 마늘, 생강의 매운맛과

새우젓, 멸치액젓의 짠맛을 첨가하여

매실청과 설탕의 단맛을 느낄 즈음

무채, 갓, 쪽파의 아린맛과

황태육수와 찹쌀풀로 뒤범벅된 양념장에

온몸을 맡기고 인고의 시간을 버틴다.


알맞게 익어가는 김치냉장고에서

숙성의 시간이 지난 후 식탁에 올라

한껏 폼나게 김치맛을 알린다.

1년 후, 낙엽이 우수수지고 찬서리가

내리기 전 묵은지로 변신한 김치는

돼지고기나 고등어를 품고 김치찜으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김장김치로 2년을 무작정

버티기 한 묵은지가 맘에 쏙 든다.

온몸으로 버티어낸 시간들...

흐물흐물해진 몸뚱이로 속을 털어내고

쉰내를 풍기며 짠내 나는 인생을

마무리한다.



지금은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 중이다.

한국에서 맛있다는 그 어떤 것보다

난 묵은지로 등갈비찜을 해서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하다.


압력밥솥에 묵은지 등갈비찜을 해서

아들의 군대면회를 갔었다.

"엄마, 압력밥솥을 가져오다니 대단하셔"

넷이서 그날밤 맛나게 배부르게 실컷 먹었던

묵은지 등갈비찜을 잊을 수가 없다.


선물들과 옷으로 채워야 할 트렁크에

묵은지를 꽁꽁 싸서 채워 가져왔다.

원더우먼으로 잠시 괴력을 과시했다.

인천공항에 잘 도착했으나

이미 트렁크 무게가 초과되어

4킬로를 빼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묵은지를 공수하기 위해

무엇을 덜어 내야 할까? 막막했다.

이것저것 짐을 빼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보조가방에 짐을 나눠 담고서야

휴~~ 묵은지를 담은 가방이 겨우 패스!

하노이로 출발 했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과

작은 보조가방 그리고 노트북까지

이만저만 무거운 게 아니었지만

묵은지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이야...


남편과 둘째 아들의 환한 미소를 보니

어려움을 버티고 가져온 묵은지는  

나 보다 더 환영을 받았다.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손가락이야~

어깨야~

팔이야~

아이고 허리야~

동전파스를 10개 넘게

붙이고 공수해 온 묵은지는

먼 훗날 또 우리의 기억 속에서

행복함을 전해 줄 것이다.


오래된 가족의 정처럼 끈끈하고

아름다운 희생이었음을....

때로는 김치냉장고에서 무작정 버티기 한

묵은지가 최고의 밥상임을...


버틴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아내는 것이고

좀 더 나은 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을 버티기 하며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반드시 온다.


김장철이 다가오고 있다.

묵은지에게 배운다.

잘 버티어 내서 깊고 그윽한 맛을

선사하는 법을 말이다.

묵은지 갈비찜

묵은지 김밥

묵은지 감자탕

묵은지 쌈

묵은지 고등어조림

묵은지 볶음 등등

황금 레시피들이 나의 손을 기다린다.


그리움도 보고픔도 묵은지처럼

잘 버티어내며 살아갈 것이다.

2023년 10월 현충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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