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를 사면 두 개를 버린다?
오늘은 또 무엇을 버릴까? 어렵게 사서 쉽게 버리는 편? 물건을 사거나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기 전 난 비교분석을 치밀하게 하는 편이다. 다른 건 허술한 편인데 집안에 물건을 들이거나 필요한 컵 하나를 사더라도 열심히 고민한다.
돈의 가치보다는 소장의 가치를...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로 내 눈을 사로잡으면 가격이 비싸도 좀 지르는 편이다. 그렇다고 명품에 집착하거나 그러지도 않는다. 저렴한 것들도 꼭 필요한가? 한 번쯤 나에게 스스로 질문하는 편이다. 그래서 쇼핑을 하거나 물건을 살 때면 설렌다.
그리고 내손에 새로운 물건이 생기면 입가엔 미소, 마음속엔 행복이 피어난다.
물건 하나를 신중하게 고르다가 몇 시간을 쇼핑만 하고 돌아온 날도 많았다. 그래서 쇼핑을 할 때 또는 물건이나 무언가를 살 때는 절대 누군가와 동행하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 발품을 팔거나 인터넷을 샅샅이 검색한 후 나간다. 간혹 마음이 바뀌거나 충동구매를 할 때도 있지만 일단 내 눈에 당첨되어 들어오는 물건들은 나의 애장품이 되거나 오랫동안 나와 동고동락을 하게 된다.
쓸 수 있을 때 드림하거나 버린다. 쓸 수 없는 건 쓰레기에 불가하니까... 그래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날보고 또 바꿨어? 하고 말하지만 그게 아니고 리폼(새롭게 꾸미기, 단장하기)을 하여 분위기를 바꾸거나 위치를 바꿔서 새로운 느낌이 들게 한다.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해외생활을 하며 나의 지름신은 멈췄다. 그리고 물욕도 멈췄다. 그리고 사실 대충 사는 게 편해졌다.
물건도 살만큼 사고, 버릴 만큼 버린 탓도 있고, 국제이사를 하고 한국 집에 두고 온 물건들과 외국에 가져간 짐들이 서로 섞여서 소파며 식탁을 드림하고 베트남에 가보니 내 눈에 드는 물건들이 많지 않았다.
내가 무슨 귀족도 아니고, 인테리어 마니아도 아닌데...
나름 센스 있고 세련되게 집을 꾸미고 살고 싶다는 욕구에 비해 사고 싶은 물건이 많았지만 베트남에도 이태리 가구나 수입산은 터무니없이 비싸서 살 수 없었다. 베트남에 내노라 하는 부자 사모님 들의 포스는? 이랬다. 한국 아줌마는 기죽었다.ㅠㅠ
어느 날 베트남에서 고급진 가구점(애슐리)에 갔다. 그곳은 정말 세팅된 그대로 집으로 옮겨 오고 싶을 만큼
내 눈에 드는 가구들도 많았고 예뻤다. 그러나 너무 비싸서 도저히 살 수 없었다. 눈요기만 하고 돌아다니는데...
벳남 부자 사모님은 일하는 엠 어이(파출부)를 거닐고 와서 직원을 시켜 리스트를 체크하고 있었다."어머나 , 세상에 가구 하나도 비싼데 가구며 커튼이며 풀셋팅을 전부 산다? 몇천만 원이 나올듯한 스케일이었다.
외국에서 월세를 살다 보니 더더욱 내 맘대로 페인트칠도 도배도 할 수 없었다. 벳남 집주인의 취향에 맞게 인테리어 된 집을 겨우 골라야 하고, 미신을 많이 믿는 베트남 주인들은 막무가내식으로 집을 빼라고 우길 때가 있어서 타국살이는 1년 아니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집안을 꾸미는 일이 별 의미가 없었다.
하여튼 지금은 잠시 한국에 왔다. 격리 중에 짐을 챙기며 뭐가 이리도 많았는지? 반성을 하고 있다. 색색별 그릇들과 예쁜 컵들... 그리고 있는데 또 사서 들이고 해서 많아진 집안 살림들... 버리려니 아깝고 누구를 주자니 쓰던 물건이고... 모르겠다 과감하게 정리를 하다가도 또다시 챙겨둔다. 우짤까나?? 그래 버리자. 마음먹고도 다음날 마음이 바뀐다.
짐이 주인인가? 내가 주인인가? 책장 가득 꼽혀있는 책들과 전공서적 , 소설책 , 명작 등... 박스에 담아 버렸다. 그래도 소중한 책들은 다시 책꽂이에 꼽다가 아들의 낡은 일기장이 발견되었다. 정리를 하다 말고 추억 속으로 퐁당 빠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일기 7권의 공책을 하나로 책처럼 묶어둔 것이다. 어른이 되어있는 아들을 타임머쉰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읽으며 웃고 있었다. '어허! 눈물도 나네 으흐 그땐 그랬었어! 아하! 울 아들이 이런 생각을 적어두었구나! '만감이 교차하는 동안 나는 엄마였고, 아내였고 , 소중한 딸이었고, 며느리였고, 선생님이었다.
추억은 고이고이 간직하고자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추억들이 쌓여 짐이 되고 있었다. 짐 때문에 힘들다면 그것은 과감하게 비워내야 하는 게 맞다. 더 이상 사지 말고 멈추어야 한다. 여유로움은 비워야 비로소 생기는 것임을 알았다. 김장을 하지도 않으면서 넓은 대야와 큰 소쿠리는 필요한 걸까? 플라스틱 통들도 이제 안녕~ 오래되고 비싼 옷가지들도 설렘이 떨어졌으니 버리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나는 너무 많이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스티브 잡스(미국의 기업인이었으며 애플의 전 CEO)는 블랙티에 청바지를 즐겨 입으며 자신의 성공적인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았다. 그가 입고 신고 걸친 것의 가격은 그가 남기고 간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한대 값도 안 되는 가격이라고 한다.
그는 단순했고 옷 입기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았음을... 그런데 평범한 나는 왜 그토록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 등.. 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을까? 그리고 장롱 가득 챙겨두고 간 옷들을 꺼내어 보며 덧없이 세월만 흘렀음에.. 옷정리를 하며 또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이사 정리란? 테트리스 게임이다.
새로운 곳으로의 탐험이었고, 과거의 짐들과 이별이었고, 새로운 짐들과의 만남이며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움을 준비하는 설렘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났고 이런 상황 속에서 7일 만의 이사를 감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 단정하며 10일의 여유를 더 받아내었고 격리 중 짐 정리와 집 계약을 일사 철리로 진행했고, 난 지금 이사한 곳에서 글을 쓰고 있는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
5분 만에 집계약도 어쩔 수 없는 나의 선택이었다. 네이버 부동산, 호갱 노노, 부동산 114를 통해 대충 금액을 정하고 평수도 정하고 지역도 정했다. 이곳저곳을 쇼핑하듯 본 후,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서 상담한 후 페이스톡을 이용하여 부동산 사장님이 보내준 집안 동영상과 사진을 5장 보고 가계약을 체결한 후
집주인의 이름과 등기부등본상의 이름이 일치하는지? 확인한 후 계약금을 주인 계좌로 겁 없이 바로 송금했다.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형편이 안되고 (자가격리 중) 이곳은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누군가의 도움도 없이 그저 내 숙제를 처리하느라 잠을 못 이루었었다.
언니도, 동생들도, 친구들도 놀란다. '여러 집을 보고 골라야지~ 싱크대 물도 틀어보고, 집 상태도 정확히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가격도 조율해야 하는 거고, 전망도 집 상태도 꼼꼼하게 체크해야지... 서류도... 난 지금 격리 중 그리고 5일 만에 이사 가야 하는데 월세는 싫고, 전세는 없고, 매매만이 살길이었다.
그래서 난 내 여건과 형편에 맞게 이사를 준비했는데... 나도 가끔 내가 놀랍다.
서울 경기까지 투기지역을 빼고 내가 지금 대출 1원도 안 받고 갈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게다가 빈집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사 날짜를 서로 조율해야 하니 그 또한 복잡했지만 잘 풀었다.
치솟는 집값을 따라잡기보다는 편하게 안주할 수 있는 곳 이사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거주목적이라기보다는 짐을 맡길 창고형 집이라도 5일 만에 해결되길... 그러나 행운의 신은 또 나의 가는 길을 힘들지 않게 지켜주었다. 부동산에 전화를 했더니 월세를 받으려고 비워 놓은 집이 있었고 코로나로 들어올 사람이 없어서 비워놓은지 두 달이 지나자 주인은 그 집을 매매로 내놓은 것이다.
그 타이밍에 나와 연락이 되었고 부담되는 대출을 탈출하고 싶었던 주인에게도 나에게 좋은 조건의 매매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5분 동영상으로 보고 고른 집을 격리가 끝난 후 보았고 5일 만에 난 이사를 감행했다.
여기는 내 고향이 가까운 아산이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낯선 곳이지만 아는 지인이 가까이 살고 있으며 아들은 서울에 나는 아산에 삶의 터전을 옮기고 서울을 벗어나게 되었다. 아직은 베트남에서 사업을 해야 하니 큰집도 필요 없고, 학군도 필요 없고, 역세권이 아니어도 되니 그나마 집 찾기는 좀 수월했다.
그리고 아들이 서울살이를 하다가 힐링이 필요할 때 ktx 타고 쉬어 갈 만한 곳 서울역에서 40분 걸리는 곳 아산온천이 있어서 휴향 할 수 있는 곳 , 남편과 연애할 때 왔던 곳 현충사가 있던 곳 , 우리는 베트남에서 몇 년 후 귀국할지? 확실하지 않지만 충청도 이곳을 노후 생활지로 슬쩍 의논했었다.
남편과 연애시절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독립기념관에 왔었다. 낯설지만 추억이 어렴풋이 있는 곳이다. 서울 친구들이 한사코 말렸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의 빠른 선택은 나를 살렸다.
긴박하고 아찔했던 5일이 지났다. 5분 만에 얻은 집은 그나마 괜찮다. 작지만 아늑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충청도 말씨와 구수함이 전해지고 있다. 부랴부랴 인터넷과 도시가스 설치를 겨우 마치고 이사는 잘했고, 정리는 내 몫이다. 게임을 시작해 볼까? 정리는 그런 거다. 장롱을 좌로 우로?? 책상을 벽 쪽으로 창가 쪽으로?? 침대 머리를 벽 쪽으로 장롱? 아니 방문과의 대각선? 이리저리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게임하듯 움직인다.
책장정리는 일당 키를 맞추거나 분류한다. 소설과 시 그리고 에세이를 모아서 꽂는다. 크기가 큰 것들은 아래쪽에 꽂고 크기나 부피에 따라 또는 색상별로 구분한다. 서랍장은 종류별로 구분한다. 겉옷, 속옷 , 반팔, 긴팔, 그리고 반바지, 긴바지... 그리고 자주 쓰는 것은 가까이에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치하고 정리는 테트리스 게임(퍼즐게임으로 1984년 6월 6일 소련의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트노프가 처음 디자인하고 개발)처럼 블록을 맞추고 끼여 넣기 한다. 차곡차곡 인생의 짐들을 정리했다.
버린다고 버린 것 같은데.. 에휴~ 또 남겨둔 물건들이 버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 개를 사면 두 개를 버린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이삿짐을 이리저리 옮기며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중이다. 잠시 머물다 벳남으로 가려했는데... 코로나가 나의 발을 이곳에 묶어 두었다. 30년 된 보물 1호도 거실에 자리 잡았다. 살아남기 한 거북이 똘똘이도 나름 럭셔리한 나비 장위로 옮겨 주었다. ㅎㅎ 잘 버리던 내가 못 버리고 짐을 다 들고 충청도 아산으로 이사를 왔다. 당분간 아산댁으로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