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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Jul 19. 2024

슬로우 슬로우~ 뜨뜨

베트남 하노이~하이즈엉 ~타이빈


오래간만에 하늘도 맑고 햇님도 쨍쨍하다.

40도가 넘어가니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고

고속도로를 따라 출장을 가는 중이다.

답답했던 도시를  벗어나  잠시 하늘도 보고

연초록 나무들도 보면서...


마치 교실을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러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사장님(남편)은

베베 꼬인 일의 실타래를 풀러 가는 중인데...

1박 2일 예정된 출장길에 동행했다.

어쨌든 이런저런 상황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체크하러 현지 의류 공장에 가는 중이다.


오늘은 하이즈엉 쪽에 들러 타이빈 쪽으로

가는 일정인데 쌀국수로 아침을 대신하고

늦어진 점심은 두 번째 휴게소에서 해결하기로

했으나 찜통더위에 헥헥 입맛을 잃었다.


베트남에는 휴게소마다 번호가 있다.

예전보다 휴게소도 많이 좋아졌고

먹거리와 선물코너로 볼거리도 생겼다.

진짜얼음 위에 생과일 음료를 올려두었고

한국 아이스크림통에 좋아하는 론바도 .

과일쥬스와 아이스크림

여긴 어디? 베트남 23 흥엔 휴게소~


월드콘 두 개와 수박주스를 사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임에도 휴게소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밥을 든든히  먹어야 힘이 난다고

어릴 적 엄마는 늘  밥상 중요성을 강조했건만

더위에 지쳐 밥 먹기도 귀찮다.


월드콘을  대신 맛있게  냠냠  먹었다.

수박주스는 디저트로 마시고 젓가락으로

감자볶음 두어 개를 집어 먹고  말았다.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여름 나기는 한 끼 식사도

 챙겨 먹어야 기운이 나는데 말입니다.

남편은 국이랑 밥 생선까지 푸짐하게

혼자서 식사를 잘하니 다행이다.


하노이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우리는

시골길에 접어들었고 공장에 도착하여

샘플을 건네받고  다시 하이즈엉에서

타이빈으로 출발했다.

휴게소 지나 시골길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길은

곳곳이  정겹기만 하다.

슬로우 슬로우 (천천히)

뜨뜨(베트남어로 천천히)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밖 풍경을 찍어본다.

40도가 육박하는 이곳은 한창 모내기를

하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곳을 지나가며

물 반 모반 두 세 사람이 직접 모를 심고 있었고

하늘과 논의 뷰가 풍경화 .

모심기에 한창인 베트남

남편도 천천히 운전을 하며 사진을 찍으라고

배려를... 기계가 아닌 인간 모심기?

이 더위에 논라를 쓰고 모를 심고 있는 광경에

오 마이 갓!! 대단해  정말....

덥다고 찡찡대며 밥맛없다고 귀찮아했는데

이런이런 반성문이라도 써야 할 정도다.


밥이 되기까지....


논에 물을 채우고 흙을 부드럽게 하여

풀처럼 생긴 모를 심고 시간이 지나고

벼이삭이 될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쌀이 되고 뜸이들고 밥이 된다는

힘겨운 과정을 새삼  참 교육으로 보게 되었다.


이모작을 하는 벳남에서는 지금이 모심기 철

학창 시추억을 소환해 수다를 떨어보련다.

배부른 남편이 졸음운전 할까 봐서...

쫑알쫑알 참새모드 다.

그니까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말이야

체육복을 갈아입고 모심기 봉사활동을

단체로 나간 적이 있었어요


골에서 태어났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부모님 덕분에  모심기가  처음이었어요

장화는 비 오는 날만 신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지  장화를 준비하라는 선생님

말씀에 왜? 장화를 준비하는지 몰랐으니까요


농사엔 전혀 관심 없던  사춘기 소녀는

논으로 들어가기 전  준비체조를 따라 했어요

핫둘 셋넷 , 핫둘셋넷....

논길을 따라  논으로 슝슝  한 발 한 발  빠졌고

움푹움푹 장화가 벗겨 질정도로 발이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애써 입장을 끝냈거든요


한 손에 모를 들고 한 손은 모를 잡고 깊숙이 푹푹

물반인 흙속에 손끝으로 모를 꼽았지요.

줄을 맞춰서...

처음엔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엉덩이는 하늘을 향해 있고

 몸은 90도 직각을 유지하니

엄청 힘들더라고 에고에고... 허리야 다리야


두발은 자유롭지 못했으며 줄 맞춰 모를 심어야

하는데 가벼웠던 내 몸은 그만 중심을 잃고  

꽈당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어요 어떡해 ㅠ

친구들은 하하 호호 웃고 난리였고 나는 창피함에

일어나려 했지만 이미 똥 싼 바지를 입은 것처럼

흙투성이가 되어 겨우 논길로 기어 올라왔지요


웃긴데 안쓰러움이 남는 에피소드!!


거머리는 장화 위로 올라와 나를 한번 더 꺄악!!

놀라게 했으니 내 기억의 창고에서 지위지지

않고 모심기 철이면 떠오르는 추억 하나가

되었다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뜨거운 태양아래 논라를 쓰고

모심는 벳남인들의 삶을 바라보며 옛 추억에

배시시 웃음이 났다.

낡은 오토바이가 주인을 기다리며

논길에 서 있고  저 넓은 논을 언제 다

채우고 돌아갈지? 괜스레 걱정을 하며

시골길을 가는데 지루함이 없을 정도다.


저 푸른 초원이 되어 모심기를

끝낸 논들은 바람결에 모가 춤을 춘다.

바라만 보는 걸로 마음이 흐뭇 해진다.

벳남여인은 자전거 뒷자리에 짐을 싣고

유유히 페달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슬로우 슬로우 뜨뜨 (천천히...)

속도를 줄여서 천천히 따라가고 있다.

쌩쌩 빨리 바쁘게 달리던 30대 40대가 지나

50대가 되니 조금 느리게 세상구경 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전거인지? 리어카인지?

수 없는 모습의 장애물이 우리 앞을 천천히

가로막았다.

슬로우 슬로우 뜨뜨


해야 할 일은 많고 급했던 마음이 느긋해졌다.

샘플작업이 지시한 데로 안되어 빨리빨리

가야 하는데 길가에 벳남인들은  어찌나

느긋 한지 베트남에 오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가는 출장길에

우리는 빨리빨리 대신 여유로움을 갖게 되었고

천천히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기계화되고 첨단화된 스마트한 세상에서

옛스럽고 오래된 방법을 고수하며 벳남의

시골길에서 잠시  구름이 되어 보았다.


구름처럼 가볍게 슬로우슬로우 뜨뜨


의류공장에 무사히 잘 도착하여

꼬였던 일을 겨우 풀고 나니 뉘엿뉘엿

노을이 지고 하루해가 숨어버렸다.


다가오는 주말

슬로우 슬로우 뜨뜨의 삶은 어떨까요?

한국도 하노이도 비가 오고 있지만

마음속에 좋은 추억 하나 꺼내어

미소 짓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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