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날씨가 좋아요
나의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중 하나는 날씨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1년은 꽤나 힘든 공부였지만, 좋은 날씨 덕분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우중충하고 추운 날씨를 정말 싫어한다. 즐기는 겨울 스포츠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매년 겨울이면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나면 그저 암울한 나날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늘 퇴사를 하면 따뜻한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가장 추운 1월만큼은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하지만 그 설렘도 잠시, 곧 무언가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지금 따뜻한 나라를 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뾰족한 계획을 세우고 퇴사한 것이 아니기에 시간을 두고 고민이 필요했다. 근데 웃기게도 그런 상황이 오히려 좋다고 느껴졌다. 그런 고민이야말로 내 전공이다. 혼자 상상하며 미래를 그리는 일. 내 미래를 내가 주도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이 걱정 가운데에서도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기왕이면 따뜻한 나라에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 속에서 고민하고 싶었다. 관광도 아니고, 일이나 공부 때문도 아니고, 그저 고민하기 위해 따뜻한 나라로 가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참으로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예전에 봤던 론리 플래닛이라는 영화에서 해외로 여행 가서 책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실상은 사랑 이야기지만, 그때 여행 가서 글을 쓴다는 게 참 낭만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런 걸 내가 할 수 있다니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 가본 적 없으면서 한국보다는 따뜻한 곳을 가고 싶었다. 내가 지금까지 3주 이상 여행하거나 살았던 나라만 해도 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호주, 미국, 프랑스까지 꽤 많았다. 그 나라들을 제외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따뜻한 곳을 찾아봤다.
그러다 문득 테마를 생각해 봤다. Eat Pray Love라는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나도 똑같은 테마로 여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홍콩이라는 곳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비행기표를 알아보니 당장 출발할 수 있는 나라들 중에서 저렴한 축에 속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글을 쓰면서 미래를 고민한다—얼마나 많은 현대인이 누릴 수 없는 낭만인가? 모아둔 돈이 없어서 저렴한 에어비앤비에서 머물러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슬슬 진짜로 티켓도 구매하고 숙소도 알아봐야겠다.
1일 차라 그런지 몰라도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