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의 고층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거실 통창 아래로 왕복 8차선 대로가 내려다보인다. 여유로운 주말 아침이면 통창 앞에서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버스와 차들이 지나가는 걸 즐겨본다. 주중에는 출근 준비로 바빠서 그럴 여유가 없었는데, 퇴사를 한 지금은 시간이 넘쳐난다. 오늘 아침 일어나 통창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늘이 맑고 햇빛이 꽤 강했다. 더럽게 추운 날일 게 분명했다. 한국의 겨울은 정말 끔찍하다. 맑은 날에는 늘 춥고, 우중충한 날이 그나마 따뜻하다.
존 콜트레인 노래를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며 통창 밖을 한참 내려다봤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몰려왔다. 저 수많은 출근 인파에 내가 속하지 않는다는 것에. 이런 감정을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다. 교토에서 학교를 다닐 때 새벽 버스를 타고 도쿄 신주쿠에 갔었다. 시간이 남아 신주쿠역 앞 맥도널드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역에서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출근 인파를 보면서도 같은 안도감이 들었었다.
남들이 다 해서 나도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두려움이 몰려오곤 했다. 내 상황과 성향은 고려하지 않고 그 환경에 어쩔 수 없이 휩쓸리다 보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직감이 늘 나를 두렵게 했었다. 남들이 다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나도 원할 때면 항상 스스로 다시 생각해 본다. 남들이 원해서 나도 원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정말 원하는 건지. 가끔은 그 큰 흐름 속에 속하다 보면 시간을 들여 생각해 봐도 내가 정말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걱정이 되기까지 한다.
일을 하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인지하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돈을 벌고 성과를 낼 생각만 하다 보면 지쳐서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수십수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출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돈 없는 백수라서 오는 불안감보다 안도감이 더 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