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과 홍콩 1일 차

by HK

첫 백수로서 떠나는 홍콩 여행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있었다. 때마침 2주 전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가 등기우편으로 날아왔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내용을 읽었다. 큰 병은 없었지만 콜레스테롤 수치가 동년배에 비해 상당히 높게 나왔다. 마른 비만 체질 때문인 것 같았다. 숫자로 확인하니 정상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수치에 놀랐다. 시험에서 떨어진 느낌과 죽을병에 걸린 듯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홍콩에 갈 생각에 설레었는데, 지금은 건강 걱정에 홍콩행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아침이었다.


홍콩 가는 비행기에서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잘 관리하면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


홍콩의 날씨는 가을 날씨쯤 되었다. 비가 조금 오긴 했지만 한국보다 훨씬 좋았다. 사람이 추위에 위축되지 않아서 좋았다. 인구밀도가 높아서 숙소로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예전에는 잠깐 있다 떠나는 여행이라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는데, 지금은 백수로 꽤 오랜 시간 홍콩에 머무를 생각을 하니 인파 사이에서 길을 헤매는 일조차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내 환경만 바뀌었는데 여행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신기했다.


최근에 최강록 셰프님의 "요리를 한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개인적으로 요리에 관심이 없어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책이 재미있게 읽혔다. 최강록 셰프님의 음식에 대한 사랑과 경험들이 너무나도 섬세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최강록 셰프님은 음식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 같았다. 음식을 찾아가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그리고 먹으면서도 단순히 맛있다가 아니라 그 음식이 준비되는 모든 과정을 상상하고 가끔은 그걸 만든 셰프들에게 물어보는 것까지.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더 많은 것을 상상하고 그 시간을 더 귀하게 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방송에서 나오는 최강록 셰프님의 이미지가 다소 느리고 어눌해 보이지만, 그것이 다 천천히 삶을 누리는 태도에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뭐든 빠르게 결과를 내려는 태도보다, 과정을 즐기고 누리는 것이 정말 삶의 경험들을 켜켜이 쌓아 입체감을 주는 것 같다. 그저 결과를 위해서만 사는 것은 삶에 깊이와 입체감을 부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홍콩에서 지내는 동안 어떤 결과를 얻기보다 이 순간을 더 잘 누리고 싶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삶보다는, 하루하루 발생하는 일들을 다 누리며 삶을 쌓는 그런 시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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