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테네시 윌리엄스
고양이를 직접 키워 봐서 알지만,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올라가 있을 어리석은 고양이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녀석들은 워낙 날렵하고 약삭빠르니까. 책의 주인공 매기(마거리트)는 자신을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라고 비유하지만, 절대 어리석지 않았다. 결말에서 보이는 그녀의 빠른 기지와 재치는 한 마리의 앙큼한 암컷 고양이였으니까.
책의 내용은 미시시피 남부 대농장을 소유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하루 저녁 이야기이다. 농장주의 65세 생일을 맞아 두 아들의 가족들이 저택에 모두 모였다. 농장주의 첫째 아들 내외와 여러 명의 어린 자녀들, 그리고 아이가 없는 둘째 아들 내외, 농장주의 아내가 등장한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암에 걸린 것을 애써 숨기며, 속으로는 서로 자신이 더 많은 상속을 받고자 온갖 사탕발림과 아부를 떤다.
주목해서 봐야 할 인물은 둘째 아들 브릭과 그의 아내 매기 그리고 그들의 예사롭지 않은 부부 관계다. 매기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때 풋볼 선수였던 브릭과 결혼했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시아버지의 환심을 사서 더 많은 상속을 받고자 고양이처럼 묘책을 꾸민다. 아버지 생신을 위해 선물을 사고, 남편에게도 아버지 마음에 들도록 간섭을 하며, 손 위 형님네 자식들이 할아버지의 관심을 얻을까 노심초사하며 상속자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한다.
한편 매기의 남편이자 둘째 아들 브릭은 가족들의 허위적인 모습에 신물이 난다. 알코올 중독자인 그는 아버지 재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브릭은 다리 부상으로 인해 풋볼 선수로 뛰지 못하게 된 신세이다.
아버지는 알코올에 의지해 살아가는 아들이 안쓰럽다. 큰아들보다는 둘째 아들 브릭에게 자신의 농장을 물려줄 마음이다. 그러나 갈수록 술에 의존해 살아가는 아들이 못마땅하다. 그와 며느리 간의 결혼 생활도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아 마음이 쓰인다. 그러던 차에 아버지는 아들의 알코올 중독이 과거 동료 풋볼 친구였던 스키퍼로 인한 것으로 생각해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과거 이야기를 어렵게 이끌어 낸다.
브릭과 스키퍼는 풋볼 절친이었다. 브릭은 매기와 결혼했고 한때 행복한 신혼을 보냈다. 그러나 매기는 남편과 스키퍼 사이가 예사롭지 않게 가까운 것을 눈치채고, 스키퍼에게 자신의 남편을 그만 사랑하라고 애원한다. 그것이 안 된다면 남편에게 사실대로 고백하라고 추궁하면서.
스키퍼는 브릭과의 관계를 증명하고자 매기와 잠자리를 시도하나 애만 쓰고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스키퍼는 마침내 브릭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마는데, 브릭은 스키퍼의 고백을 매정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스키퍼는 술과 마약 그리고 종국에는 자살로 이어지는 삶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 후로 브릭은 자책감과 더불어 스키퍼와의 동성애적 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자기 자신 때문에 매기와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과거 일련의 사실들이 아버지의 생일날 브릭 앞에 모두 정면충돌해 브릭이 견뎌 온 오랜 침묵을 깬다. 아내 매기로부터는 스키퍼와 잠자리를 갖게 된 아픈 이유를 다시 듣게 되고, 의심하는 아버지에게는 자신과 스키퍼의 관계가 동성애적 관계가 아닌 순수한 우정이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브릭이 주장한 자신의 결백함이 과연 결백했을까? 본인의 믿음과는 다르게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고 정면 대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임을 재발견하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책하고 있는 것이 결국 스키퍼의 고백을 인정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위선과 허위였다고 아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준다. 친구의 고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친구와 함께 져야 할 책임을 술로 회피하고 있는 아들을 꾸짖으면서.
흥미로운 건 이후로 이 가정에 찾아온 반전이다. 이 책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거짓과 허위의 또 다른 등장이다. 매기는 시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브릭의 아들을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잃었던 자신의 삶을 되찾게 되는 희망을 얻는다. 아버지로부터 아들의 2세를 축복받게 되는 것은 물론, 그동안 멀게만 있었던 남편의 사랑에 희미한 불빛이 다시 피어오른다.
똑똑한 고양이 매기가 말한다. 이김에 허위를 아예 진실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생명을 잉태했다고 거짓말을 한 김에 아이를 갖기 위한 사랑을 나누자는 달콤한 제안이다. 거기에 호응하는 남편 브릭. 아마도 브릭에게 이런 전환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그동안 스키퍼와의 동성애적 관계를 허위로 위장하고 살아온 것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부인하고 거짓이라고 주장하기보다 그것을 인정했을 때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진리.
허위와 진실이 난무하는 이야기 속에 배우는 교훈이 하나 있다. 진실을 지키는 힘은 허위를 마냥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견디기엔 뜨겁지만, 현실을 인정함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남들의 시선이 두렵고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어서, 진실을 왜곡하느라 온갖 허위의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원래 흑역사를 덮는 일이 역사를 다시 쓰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브릭도 매기와 같이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어리석게 버티고 있었기는 마찬가지. 이제는 뜨겁지만, 지붕을 밟고 지나가는 것이 두 고양이 모두에게 현명한 일인 것 같다.
동성애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무겁게 읽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역시 끝이 희망적이어서 마음은 고양이 발바닥처럼 가벼워졌다. 양철 지붕 위를 사뿐사뿐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