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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Jun 18. 2017

소설이 소설다워질 때

<냉정과 열정사이 Blu> 츠치 히토나리

영화로 봐야 했을까? 책으로는 영 재미를 보지 못했다. 베스트셀러였다고 들었는데 반쪽만 읽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로맨스 소설의 감동이 그저 그렇다. 로맨스 소설에 없던 알레르기가 생겼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아마도 같은 제목에 Rosso라는 ‘붉은’ 뜻의 이탈리아어 부제를 달은 또 한 권의 소설을 미처 읽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소설이 소개될 때는 남자 작가와 여자 작가가 소설의 큰 틀만 정해두고 결말도 정하지 않은 채, 잡지에 한 회씩 릴레이 하듯 연재하면서 썼다고 한다. 그렇게 읽었으면 소설이 지금보다 흥미로웠을까?


바로 그 이유로 소설이 온갖 픽션의 잡화상같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의심스럽다. 연재를 위해 과하게 극적인 사건들을 총출동시켜야 했을지 모르니까.


소설에 불려 온 각종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대충 몇 가지 열거해 보면 이렇다. 가장 먼저, 로맨틱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오래전 헤어진 연인과 미래에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이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30세 여자 주인공 생일에,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코플라에서 만날 것을 두 연인은 약속한다.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면서. 이 약속이라는 전제를 두고 소설은 미래만 바라보며 한 발자국씩 걸어나간다. 게다가 이 둘은 소설처럼 약속의 장소에서 정말 만나기까지 한다. 로맨스가 지나치면 진부해지기 쉽다. 그러나 이 전제는 소설의 중심 모티브로 중요하니까 그렇다고 치자.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게 된 이유가 또 하나의 드라마다. 한국의 막장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되는 레퍼토리. 여자는 남자 모르게 아이를 뱄다 유산을 한다. 여자의 아픈 과거를 하필이면 남자 주인공은 꼭 그렇게 뒤늦게 알게 된다. 그것도 아주 우연히 만나게 된 옛 친구를 통해 듣게 되는데, 억지처럼 들리지만, 단골로 등장하는 스토리이다. 연인 사이의 애절함을 더 진하게 만드는 효과로 작용하긴 하나 식상한 건 사실이다. 아님, 그렇게 느끼는 내가 너무 통속소설을 많이 읽었거나.


이 두 연인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은 임신과 유산보다 더 저 차원의 수법을 사용한다. 옛 친구를 통해 여자의 소식을 듣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그녀의 현재 연락처까지 전해받는다. 이 정도면 많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는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 여자는 편지를 받은 후에 남자에게 전화를 걸지만, 아무 말하지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아 독자의 마음을 애타게 한다.


주인공 남녀의 이야기만 극적인 게 아니다. 복원사로 일하는 남자 주인공과 복원실의 여선생과의 관계도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남자의 벌거벗은 몸을 그리는 선생의 취미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치자. 제자의 복원 실력을 질투해 아무도 모르게 그가 복원 중인 그림을 사정없이 칼로 그어 망쳐 놓는다. 이 사건을 통해 복원실이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게 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선생의 절박감에 개연성이 부족해 보인다. 독자로 하여금 감동이 아닌 충격 효과만을 노린 것 같은 기분이 들뿐.


지나치게 다정다감하고 애정이 넘치는 남자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그와는 한 가족이라고 하기에 너무도 동떨어진 성격을 가진 아버지에게도 별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부재도 주인공 남자에게 모성애적 자극을 주려는 군더더기 설정이라는 인상만 강하게 풍긴다.


이렇게 나는 이 소설을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게 아주 삐딱하게 읽었다. 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사사건건 탐탁지 않은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로맨스 알레르기의 중증이라 불러도 좋다.


그러나 딱 한 부분, 소설이 비로소 소설답다고 느껴진 부분이 있었는데, 주인공 남녀가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기적처럼 재회하고 뜨거워진 마음과 몸으로 서로 사랑을 나눈 후다. 육체적 관계를 맺고 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두고 “아오이는 아오이가 아니었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소설을 가장 소설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소설답다’란 허구적 성격과 과장된 설정이 빠진 진솔하고 진짜 사람들이 사는 살 냄새가 나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꿈에 그리던 연인을 8년 만에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과 몸을 나누고 나눴지만, 주인공 남자는 8년 전 연인이 아님을 자각한다. 8년이라는 세월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자신들이 끌어안고 있는 것이, 과거의 자신들이지 현재는 아니라는 확인을 냉정하게 시켜준 셈이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기다려온 미래의 한순간에서 지나온 8년의 공백을 복원시킬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남자는 말한다. 8년의 공백을 복원할 열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고. 그리움만 간직한 냉정한 동창회와도 같았다고. 과거와 미래만 가슴에 품고 살아온 남자에게 인정사정없는 현재가 날린 차가운 펀치이다.


이 대목이 있었기에 한없이 통속소설로만 흐를뻔한 소설이 내게 감동을 남겼다. 과거와 미래만 가슴에 품고 살아온 이 남자 주인공이 현재의 어마어마한 무게를 체감하게 되는 매우 인간적인 대목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내야 하는 주인공이 갖는 당혹감은 과거와 미래에 갇혀 있던 옛 연인이 현재의 삶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을 때, 비로소 그 무게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과거와 미래를 방패 삼아 현실을 잊고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삶인 것을 깨닫지 못한 채로 말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주인공이 과거와 미래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재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을 어렴풋이 암시해 준다. “열정 하나가 반격에 나서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퇴색하고 현재만이 빛을 발하는 것임을 깨달으며 주인공 남자는 여자를 찾아 기차 플랫폼을 향해 힘차게 달린다. 주인공 남자에게 의식하지 못했던 현재라는 삶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머지 반쪽의 소설에선 여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한다. 단순히 블루와 냉정, 레드와 열정의 이분법을 통해 남녀 주인공 이야기의 다른 색깔을 전달하리라 생각했는데, 제목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그 ‘사이’가 주는 의미가 남자 주인공의 변화와 맞물려 단순하지 않게 다가온다.


남자 주인공은 적어도 냉정에서 열정의 사이를 건넜다고 본다. 과거와 미래의 차갑게 얼어붙은 틈을 열정으로 녹이고 현재를 맞이했다. 



그렇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선 열정이 필수이다. 현재에 열정이 없다면 혹 나도 주인공처럼 과거와 미래 속에서 냉랭한 가슴만으로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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