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조남주
한국에서 현재 30대 중반을 사는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많이 얻어 인기가 높은 책이라고 들었다. 나와는 10년하고도 1년이 차이 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요즘같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나이 탓인지 젊은 여성들의 삶이 궁금했다.
충격적이게도 그간 강산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살았던 70-90년대 초반의 한국이랑 비교해도 별다를 바 없다. 마치 90년대 초에 유행했던 드라마 <아들과 딸>의 재판을 보고 있는 듯. 남아 선호 사상이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기에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직간접적으로 받는 차별이나 억압 또는 기회의 부족은 아직도 여전하다. 호주제가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사람들 뼛속 깊이 또 DNA의 저 원초적 단위까지 학습되어 굳어진 여성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변화해 갈 길이 멀다.
달라진 게 없다는 것 빼고는 하나도 놀라울 것이 없는 이야기. 소설이라고 하기에 매우 건조한 이 책을 조금은 지루하게 읽었다. 그러나 한가지 놀랄 만한 사실을 전달할 의무감이 생겼다. 71년생인 내가 여성으로 미국에서 커리어와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지난 20년 이상의 지내온 삶을 돌이켜 비교해 보니,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여성이기에 넘어야 하는 장애물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71년생 이효경(필자)의 삶을 거칠게 요약해 볼까 한다.
71년생 이효경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유학을 갔다. 위로 언니와 오빠가 해외 유학을 갔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모든 형제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고자 먼저 제안한 일이었다. 일단 가정에서 남녀 차별을 받고 자라지 않았다. 유학을 가서 석사를 마치자, 나이가 더 차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부모의 강력한 권고가 있었지만, 이효경은 결혼보다는 미국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컸기에 결국 한국에 들어가지 않고 미국에서 일자리를 얻어 취업한다. 운 좋게 직장을 얻게 되고 미국 교포를 만나 결혼까지 일사천리도 20대의 후반을 보냈다.
결혼 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쌍둥이를 임신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 둘을 어떻게 키울까 하는 걱정이 아이가 탄생한다는 기대보다 훨씬 무거웠다. 남들보다 두 배로 심했던 입덧을 참아가며 임신 8개월까지 직장 생활을 어렵게 유지한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마지막 두 달은 집에서 쉬면서 출산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친정어머니가 오셔서 산후 뒷바라지를 해 주셨지만, 3주 만에 직장으로 복귀했다. 서둘러 직장에 돌아가야 했던 이유는 금전적인 것과 직장에 들어온 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입 사원이라는 부담감에서 였다. 유명한 아이비리그 대학의 정규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출산 휴가는 유급이 아니라 무급이었다. 신혼 초 남편 월급만으로는 빠듯한 살림이었기에 두 아이의 기저귀와 우윳값을 대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효경은 한 달도 채 안 된 핏덩어리 아이 둘을 아이 돌보는 도우미에게 과감히 맡겼다. 아이들을 뒤로하고 출근을 할 때마다,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직장에 나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엄마로서 못 할 짓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직장에서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인지라 월급이 그닥 많은 것도 아니어서 버는 족족 모두 육아 도우미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많이 벌지 못하는 엄마로서의 죄책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게 직장을 포기하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되려 직장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었다. 남의 손에 아이들이 크는 것이 그렇게 몹쓸 일은 아니라는 위로의 말이 이효경에게는 직장을 병행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그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만 들어가면 다 괜찮아질 거로 생각하며 직장과 가정을 어렵게 어렵게 유지해 나갔다. 그러나 하루에도 열두 번, 오늘이라도 직장 일을 때려 치우고 아이 둘을 내 손으로 돌볼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돈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 얻은 첫 직장이 아까워 선뜻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워킹맘의 고뇌는 작아지지 않고 되려 커져만 갔다.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자 유치원에 다닐 때보다 엄마의 손을 더 많이 탔다. 숙제도 봐 줘야 하고 가끔 아이들 학교에 자원봉사도 가야 하고 급우 엄마들과 교제도 나누면서 아이들의 사회성을 키워줘야 하는 일까지 주말에도 아이들의 다양한 과외활동이 워킹맘의 그나마 없는 시간을 더 탈탈 털어내게 했다.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부담도 작지 않았다. 5살짜리 아이가 방과 후에도 집으로 가지 못하고 놀이방에서 엄마 퇴근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물론, 학교 수업 시간에 다른 엄마들처럼 자원봉사자로 자주 나오질 못해 낮아진 아이의 사기를 올려 주지도 못한다. 퇴근 후 아이를 놀이방에서 찾아와 부랴부랴 집에 와서는, 시간에 쫓겨 맛있는 밥상을 정성껏 차리기도 늘 분주했고, 저녁 설거지를 쌓아 둔 채 아이들 숙제를 봐 줘야 하고, 씻기고 재우는 일을 마치고 나면 워킹맘의 하루는 어떤 노동자보다도 고단했다.
엄마와 커리어 우먼의 역할을 다 해내기에는 슈퍼 우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옆에서 남편이 가사 일과 육아를 함께 많이 도와주었지만,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키우면 손이 딸리고 부족하기 마련이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 것이 힘들어 차라리 아이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하던 일을 접고 자녀 양육에 올인하는 평범한 엄마가 되어야 하나 고민도 수차례 했다. 그런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게 할 때마다, 이효경은 오기가 났다. 자식이 더 어렸을 때도 남의 손에 자녀를 맡겼었는데, 이제 와서 그만둔다면 어렵게 버텨온 지난 세월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뒤로 돌리기에는 이제까지 한 희생이 아까웠다. 그래서 눈을 찔끔 감고 커리어를 놓지 않았다. 놓으면 분명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에.
71년생 이효경은 82년생 김지영보다 좀 더 이기적인 여성이었고 엄마였던 건 사실이다.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고통받는 것보단 자신의 커리어에 발목을 잡히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했으니까. 커리어 우먼으로 점점 직책이 높아져 감에 따라 집을 비우고 출장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1주일 때로는 2주일 장기 출장을 가면, 남편에게 아이 둘을 홀로 맡겨야 했다. 남편에게 항상 미안했지만, 한 해 두 해 해가 쌓이니 남편도 아이들도 엄마의 출장을 으레 있는 연중 행사로 여기게 되었다.
이효경은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자기 일로 인해 자아가 행복한 엄마가 아이들에게도 행복한 삶을 가르쳐 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굳센 그 믿음 덕분에 주변의 시선이나 어려움이 밀려 올 때마다 아랑곳하지 않고 커리어와 가정을 꿋꿋이 병행해 갔다. 한 번은 직장 상사와 해외 출장을 나갔다. 상사는 미국에서도 여성으로 유리 천정을 깨고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가정을 가진 여성이 얼마나 취약하고 힘든 지 들려주었다. 여성이었던 직장 상사는 자녀가 없었기에 그 남은 시간에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남편이 외조를 잘해준 덕임을 상사는 인정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 중에 marry-down (자신보다 지위나 연봉이 낮은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성에게도 가정을 책임질 ‘아내’가 성공을 위해선 필요하다는 뜻이다. 미국 사회도 여자가 성공하려면 주변의 희생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71년생 이효경은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대학을 가는 나이를 맞이했고, 그간 자신의 커리어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경력 20년이라는 하마터면 한순간에 수포가 될 뻔했던 영광을 이제사 누리며. 지금 이효경은 아이들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잘 버텨올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들에게 무한 감사한다. 망설임 속에서 좀 더 이기적인 자신을 선택하기 위해 좀 덜 훌륭한 엄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건 스스로 내린 결정 중에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까지가 71년생 이효경의 미국판 워킹맘 이야기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매우 단순한 이야기이다. 세상이 총체적으로 바뀌려면 강산이 한두 번 바뀌는 정도로는 힘들고 정말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지 모른다.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여성으로서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영향력을 지금 당장 끼칠 수 있는 ‘나’의 선택은 우리 여성 스스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남을 변화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변화되자는 얘기다.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과 관습 또 오랜 전통이 몸에 배어 있는 여성 비하적인 인식을 변화시키기란 사람을 개조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일이기에 매우 어렵고 지난한 길이다. 변화하지 않을 거라고 비관적인 태도를 취하자는 건 절대 아니다. 어머니 세대보다 딸의 세대가 많이 변화하지는 않았다고 말하지만, 긍정적으로 변한 건 사실이다.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 가면서 내가 먼저 변하는 것을 고려해 보자는 거다.
나는 미국에서 젊은 여자 후배들에게 평생 자신의 커리어를 놓지 말라고 거듭 충고한다.
특히 결혼을 앞둔 여성들에게 말이다. 대학까지 또 대학원까지 남자들과 똑같이 경쟁해서 이룬 자신만의 꿈의 커리어가 있다면, 그것을 끝까지 사수하라고 나는 강력히 권한다. 아이들은 고작해야 18년 정도 양육을 마치고 나면 끝이 나지만, 자신의 커리어란 그보다 보통 2배 이상 (특히 100세 시대에서는)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명한 투자를 하려면 자식보단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여성이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자녀를 꼭 엄마의 손으로 24시간 키워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게 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나는 얘기해 준다. 자녀를 돌보는 일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의 양이 더 중요한 것을 머리로만 믿지 말고 마음으로 가슴으로 온통 믿어야 한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엄마가 자신의 삶에 행복하지 않으면 그 불행한 바이러스가 자녀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가엾은 82년생 김지영을 보라.
모든 여성이 커리어 우먼이 될 필요는 없다. 그건 여성 철저히 자신의 선택이다. 커리어 보다 가사 일에 더 흥미를 느끼고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지내도 행복하고 삶의 보람을 커리어에서 느끼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 충분히 느끼는 여성이라면 커리어를 당장 그만두고 가사에 몰입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물론 선택 자체가 누구나에게 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적어도 여성 스스로 자신을 ‘맘충’으로 비하시키지는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자신이 어떤 여성인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는 자신의 선택에 평생 후회를 하거나 평생 자기 최면을 걸고 인생을 마지못해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
셰릴 샌드버그가 쓴 <Lean In>이라는 책에서 그녀가 충고했던 명언이 있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나서는 커리어를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때 자신의 연봉이 너무 적어서 아이들 육아비에 탕진한다는 생각만 하고, 쉽게 커리어를 포기한다고 한다. 아주 큰 실수라는 것이다. 보통 아이를 키우는 시기의 워킹맘은 기껏해야 30대 초반이고, 그들의 연봉은 당연히 직장 초년생에 불과하기에 상대적으로 적다. 정확하게 비교를 하려면, 당시의 그 당시 연봉만 볼 게 아니라 커리어 우먼으로 자리를 잡고 난 후 적어도 10년 혹은 20년 후의 올라갔을 연봉을 가지고 계산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연봉이 절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 당장은 포기하기가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20년 후 한창 잘 나갈 때의 연봉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정말 맞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젊어서 그렇게 눈앞의 것만 생각했으니까.
여성 자신이 자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지켜나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주변의 도움은 더더욱 무시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82년생 김지영에게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녀에겐 쓸만한 삶의 동반자 남편 정대현 씨가 있다. 아이스크림 판매원이라도 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녀에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아이까지 키우면서 당신이 원하는 일이 아닌 일까지 하지는 말라”고 했던 양심이 바로 박힌 남편이 있다.
여성이 자신의 꿈을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필자에게도 남편의 역할은 컸다. 긴 출장을 떠나도 궂은소리 한 번 하지 않았고, 받은 월급을 모두 육아 도우미에게 주면서 아이들을 엄마 손으로 직접 키우지 못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런 남편이 있었기에 가정과 커리어를 모두 지켜올 수 있었던 것처럼, 82년생 김지영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어 줄 남편과 가까운 가족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는 것이 여성의 성공을 위해 너무도 중요하다.
사회의 구석구석이 바뀌기까진 정말 많은 세월이 더 흘러야 할지 모르고,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아이를 낳는 초과학적인 시대가 도래하지 않고는 육아 문제는 끊임없이 여성의 존재감을 흔들어 댈 것이다.
모든 여성이 슈퍼 우먼이 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슈퍼 우먼이 되기를 강요하는 지금과 같은 현시대에서 슈퍼 우먼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변에 먼저 동급의 슈퍼 맨들이 많아져야 함을 다시금 느끼며 이 책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