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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Aug 29. 2017

#6.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달리아 정원사에게 배웁니다

지인의 뒤뜰에 달리아가 한창입니다. 서로 다른 색의 달리아 꽃이 경쟁하듯 피었더군요. 화려한 빛깔에 정교한 꽃잎은 물론 늘씬한 큰 키까지 자랑하고 있었어요. 착해 보이는 연보라색 달리아와 옆에 나란히 피어 있던 진한 보랏빛 달리아는 오누이처럼 다정해 보였고요, 적포도주 빛깔과 노란색 달리아는 한데 엉켜 친구가 되어 보려는 것 같았어요. 형형색색의 달리아가 지인의 뒷마당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만개한 꽃송이는 어린아이의 활짝 웃는 얼굴처럼 그렇게 당당하고 밝을 수가 없더군요. 이 꽃 저 꽃 사이에서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몰라 뒷마당을 온통 휘젓고 다녔습니다. 꽃동산에서 달리아에 취해 헤매는 즐거움이란 참으로 행복한 경험입니다.


 

이 아름다운 정원의 주인에게는 저처럼 아들이 둘 있습니다. 저보다 열두 띠를 먼저 사신 분이신지라 지인의 아드님들은 이제 모두 장성해 각자 제 길을 찾아가고 있죠.

 

지인이 아들 둘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났을 때 허전한 마음을 달래느라 조각 이불을 만드는 퀼트를 하셨답니다. 갓난아이에게 덮어줄 만한 치수의 아담한 담요였는데, 조각 보는 아이가 어려서 그렸던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아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나이에 그린 그림들 같아 보입니다. 아이가 좋아한 것들을 그렸던 것 같은데 야구 방망이도 보이고 튤립 꽃도 보이고 까만 개미랑 나뭇잎도 보입니다. 고만고만한 그림들 가운데에는‘Spring’이라는 제목이 무지개 색 글자로 수놓고 있었습니다. 조각 이불의 맨 아랫단에는 아이가 쓴 필체 그대로 사인이 되어 있었고요.

 

그림 한 조각 한 조각을 이불에 프린트했고, 그 사이사이는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섬세하게 디자인되어 있었습니다. 자식을 그리워하는 지인의 마음이 이불 전체에 꼼꼼히 아로새겨진,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조각 이불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어요. 이불을 뒤집으면 아무 무늬가 없는 하얀 바탕이 나오는데, 그 안에 암호를 새기듯 빨간 실로 보일 듯 말 듯 십자가를 디자인해서 새겨 넣었습니다.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빨간 실로 이어진 십자가의 형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드러내서 십자가를 그리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뒤에서 조용히 기도로 함께 하고 싶은 엄마의 겸허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조각 이불을 보면서 조각조각에 담긴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그야말로 물결치듯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엄마의 마음이 또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바느질하면서 아들을 위해 절절히 기도했을 그 수 없는 시간이 파도처럼 한꺼번에 밀려왔고요. 바느질 한 땀 한 땀이 너무도 정교하고 촘촘해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의 줄은 그 어떤 어려움에도 절대 끊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든든한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을 너끈히 뒤받쳐 주고도 남아 보입니다.

 

부러움과 존경심으로 지인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을 위해 좀 더 기도하지 못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들이 떠나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며 신세계를 사는 어머니인 양 자랑처럼 내뱉은 나의 황량한 마음 밭이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습니다.

 

지인처럼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퀼트를 만들어 줄 수는 없을 겁니다. 허접스러운 제 바느질 솜씨로 퀼트를 한다는 것도 무리이지만, 이 무정한 엄마는 아이들이 어려서 그렸던 그림들을 남김없이 모두 재활용한 지 오래거든요.

 

하지만, 청개구리처럼 육아일기를 거꾸로 쓰는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을 위해 마음속 기도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지인의 달리아 정원이 유난히도 아름다웠던 비결이 다른 데 있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정성껏 키운 정원사의 마음은, 아이를 생각하며 조각 이불을 만든 엄마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달리아의 커다란 꽃잎 속에서 웃음 가득한 어린아이의 얼굴이 떠오른 것도 같은 엄마의 손을 거쳐 자랐기 때문일테고요.


 

봄날 따뜻한 햇볕에 새싹들이 쑥쑥 자라듯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만개할 때까지 엄마의 기도는 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아이를 다 키운 것 같았는데, 꽃밭을 가꾸는 정원사처럼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음을 지인의 정원을 다녀와서 깨닫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마음 밭에서 엄마가 일손을 놓지 않는 한 계속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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