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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Sep 04. 2017

#7.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 사이에서

살다 보니 참 별일이 다 있네요. 제 쌍둥이 아들 녀석들이 대학교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주일입니다. 그중에 한 녀석이 학교를 앞으로 계속 다닐지 모르겠습니다. 아들 녀석이 피츠버그에서 뼈를 묻고 살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이야긴즉슨 이렇습니다. 바야흐로 이야기 시작은 석의 고등학교 첫해인 9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아들이 저에게 습니다.

 

엄마, 나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니면 안 될까?”

뭣이?”

 

엄마인 저는 아들 녀석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길래, 그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고 한 귀퉁이로 흘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 살짝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혹시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나? 갑자기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가더니 적응하는 것이 힘들어졌나? 친구를 못 사귀나? 사회성이 부족한가?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의 질문이 너무 뜬금없고 대책 없는 질문인지라 일단 과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얘기이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만 명시해 주는 것으로 깨끗하게 마무리를 했죠. 아들 녀석도 고등학교를 한국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거라 짐작했는지 그 뒤로 더 묻지 않았습니다.

 

9학년과 10학년 별 탈 없이 잘 지냈고, 11학년에는 성적관리를 제법 잘 하면서 대학 입시를 위한 시험 준비로 열심을 보이더군요. 그러길래, 전에 물어봤던 녀석의 뜬금없는 한국 타령은 사춘기에 잠깐 들었던 생각의 일탈 정도로 가볍게 믿었습니다. 사실 아들 녀석이 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은지 설득이 갈 만한 이유나 사연을 제시했던 것도 아니었고요. 저와 제 남편은 그저 아이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더니 한국을 저렇게 좋아하는구나 하고, 한류의 숨은 위력에 감탄만 했습니다.

 

12학년에 들어가 대학 원서를 준비할 때였어요. 어느 날 아들 녀석이 정색하고 저에게 묻더군요.

 

엄마, 나 한국에서 대학 가고 싶은데, 한국 대학에 원서 넣는 걸 좀 엄마가 도와줄 수 없을까요?”

 

제 대답은 일언지하에 “NO”였습니다. 여러분, 미국에서 태어나서 여태껏 K-12의 미국 교육을 받은 애가 한국으로 대학을 간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열에 열 모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겠죠. 제 주변의 또래 엄마들도 일제히 그렇게 합창을 합니다. 교육 때문에 이민 온 엄마들은 더더욱 미친 짓이다 라고 하고, 미국에서 오래 산 엄마들도 한국 교육은 믿을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소리를 했습니다. 한 해 정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가는 것으로 잘 타이르라고 조언을 하면서요.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모두 다 헬조선을 외치는 한국에 한국어마저도 어눌한 제 아들이 들어가서 살면 얼마나 잘 살 것이며, 미국 교포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은 게 현실이라, 한국에 가서 대학을 나온다는 게 위험천만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죠.

 

무엇보다도 여기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니까 당연히 이 땅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거라고, 한 치의 의문도 갖지 않고 여태껏 살아왔습니다. 모두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나오는 판에 ‘거꾸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대학을 간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한심하고 무모한 짓이 어디 있겠느냐고요? 한국으로 역이민을 준비한 것도 아니고, 엄마 아빠가 한국에 거주하는 것도 아니고, 저나 제 남편이나 모두 삶의 터전이 버젓이 이곳에 있는데 말이에요. 더더구나 20년 넘게 미국에 살면서 이민을 후회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이건 말도안되는 얼토당토않은 일이라고 단박에 아이에게 대꾸했습니다. 네가 정신이 있냐?라는 말투도 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너무 단호하게 얘기해서인지, 아이도 한 번 물어보고는 다시 묻지 않더라고요. 한국 대학에 가고 싶어도 일단 미국 대학에 원서를 넣으라고 했습니다. 미국 대학의 결정을 보고 난 후에 얘기해도 늦지 않는다고 맘에 없는 말로 한 큐에 잘라 얼버무리고, 일단 아이의 생각을 막아버렸습니다. 한창 원서 준비로 정신없을 12학년 초에 한국 대학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녀석의 에너지와 몰입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요. 그런 잡초 같은 생각은 얼른 뽑아버리고 싶은 마음만 컸으니까요.

 

원서 준비가 다 끝나고, 대학 입학 결정도 모두 마치고, 마침내 아이는 12학년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도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대학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부모인 저희 안중에는 낄 틈새도 없었고요. 대학 입학의 최종 선택을 놓고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았거든요.

 

저희가 그토록 원했던 (아이는 딱히 별생각이 없었겠지만) 7년 의대 입학이 좌절되고 마지막 보루였던(학교가 처진다는 이유로) 모 의대마저 아이 스스로 안 가겠다고 일축을 하고 나니, 그간 온 힘을 의대 입학에 쏟았던 저와 제 남편의 풀이 맥없이 한꺼번에 꺾였더랍니다. 미국에서는 보통 의대를 4년 대학 졸업한 후에 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direct 입학하는 과정이 있는 의대가 소수 있기는 한데, 입학하기가 워낙 어렵습니다. 그런 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시도를 해 보기로 했죠. 역시나 의대는 의대인지 바늘구멍처럼 들어가기 쉽지 않더군요. 사실 김이 좀 많이 빠졌던 차였습니다. 아이도 어느 정도 실망을 했던 것 같고요.

 

그러고 나니, 어느 대학을 가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물론 의대 진학이 힘들 경우를 대비해 다른 대학에도 여러 곳 지원을 했었습니다. 입학 결과를 놓고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Liberal Arts의 작은 대학에 가서 착실하게 공부를 하게 할까? 가성비가 월등한 워싱턴 주립대를 보낼까? 4년 전액 장학금을 주는 학교로 갈까? 6년제 direct 약대를 갈까? 등록금이 비싸긴 하나 랭킹이 좀 더 높은 사립대를 갈까? 정말 많은 고민이 되더군요. 이 시기를 어렵게 어렵게 지나고, 여차여차해서 피츠버그로 가게 된 것입니다. 의대는 아니라도 아이가 여전히 메디컬 쪽의 분야에 관심이 더 있다고 했고, 마침 그 학교가 간호대로 전공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거든요. 여기까지의 길도 참 고단하고 어려운 선택과 결정의 과정이었습니다.

 

사실 저나 제 남편은 아이가 대학을 다니면서 천천히 고민해 본 후, 의대에 진학하는 것을 다시 계획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을 놓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아이는 의대 진학을 쉽게 접더라고요. 본인의 의사가 없이는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이 꼭 맞는 말임을 실감했습니다. 아는 지인한테는 의대와 약대 입학이 됐는데도 마다하고 안 가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고 한 소리 듣기도 했죠. 자식이 싫다니 어쩔 수 없더라고요. 아이는 의대보다는 상대적으로 공부하기가 수월하나 여전히 고액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전문직을 선호했고, 그래서 마취 간호사가 되겠다며 간호대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마취 간호사 (CRNA)라는 직업군을 아들 녀석이 잘 알아서 내린 결정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메디컬 관련 직종에서 연봉이 높은 측에 속하다는 것만 알고 단순하게 고른 전공이었죠. 아이의 표현 그대로를 빌리면 ‘가장 적게 일해서 가장 많이 버는 직업’을 원했으니까요. 열심히 노력할 생각은 없고 그저 쉽게 인생을 꾀부리며 살려고 하는 도둑놈 심보 같은 아이의 말이 한심하게 들리긴 했지만, 저희 마음속에 한 가닥 남아 있던 의대에 대한 꿈은 접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게 된 대학인데, 이 대학을 계속 다녀야 할지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삶은 언제나 이렇게 예고 없이 가혹하게 뒤통수를 내리치나 봅니다. 고등학교까지의 온실 같은 터를 이제 막 나오고 나니, 온갖 고난도의 장애물이 아들의 삶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문제의 화근은 지난 여름 방학에 시작되었습니다. 글쎄 이 녀석이 7월 여름 방학에 한국어 공부를 위해 한국에 가겠다고 하더군요. 대학 입학을 코앞에 놔두고, 무슨 한국어 공부냐?라고 역시 그것도 귀퉁이로 받아쳤지만, 놀아도 공부하면서 논다기에 고등학교 졸업 선물 겸 해서 한국에 보내줬습니다.

 

녀석이 거기 간 것까지는 좋은데, 가서 한국 대학에 원서를 덜컥 넣고 왔습니다. 원서를 넣는다고 합격이 되는 건 아니기에, 설마 했죠. 보낼 마음도 없었기에 합격을 기대하지는 않았고요. 엊그제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 자식에게 (아니 저에게!) 일어나는지 참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길길이 뛰고, 저는 아이에게 훗날 원망을 사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서 해라 마라 뭐라고 섣불리 조언하기도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저 좋다는 대로 한국으로 대학을 가라고 하기엔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앞으로 대학을 나오면 진로는 어떻게 되는지 불안하기 짝이 없고 그렇습니다.

 

남들은 아이들 대학을 보내 놓고 맘 편하게 지낼 이때에 (저도 그렇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이게 웬 날벼락이래요? 멘탈의 붕괴는 이럴 때 쓰라고 준비된 말인지 싶습니다. 친정엄마에게 의논했더니, 엄마의 멘트가 재밌습니다. 너는 쌍둥이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냐고 하시면서요. 네 노후를 생각해서라도 아이가 한국에 살게 되면, 앞으로 한국에 가 있을 곳이라고 있고 오죽 좋겠냐고 하십니다. 제 노후를 위한 좋은 준비랍니다. 역시 노후를 살고 계신 80이 다 되어가고 계신 울 어머니다운 말씀이십니다.

 

제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하나라는 걸 압니다. 아들의 인생은 제 인생이 아니라는 것. 아들이 원하면 그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것. 그렇게 아들에게 정답을 전달했습니다. 네가 선택하는 결정은 무엇이 되었든 기꺼이 지원해 주겠노라는 말도 덧붙였고요. 제 할 도리는 다한 것 같습니다. 이제 앞으로 울 아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 남았죠. 그런데 왜 그렇게 떨리고 불안한지 제 일보다 곱절로 더 기운이 빠집니다. 아들이 못 미더워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부모라는 유전자는 좀 더 많은 불안의 인자가 시시때때로 자동 생성되도록 생겨먹은 걸까요?

 

감사한 것은 아들의 지금 직면한 선택의 양 갈래는 미국이나 한국을 막론해 둘 다 썩 좋은 기회이고 둘 다 썩 가볼 만한 괜찮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이냐 미국이냐? 이 질문을 맞닥뜨려 놓고 보니 문뜩 저의 20대 초반 시절이 떠오릅니다. 유학을 마치고 우연히 미국에서 일자리를 얻어 일하게 되었고, 한국의 어느 유망 기업에서도 오라고 환영하던 저의 호시절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살까? 아니면 한국에 들어가서 살까? 를 놓고 고민할 수 있었던 행복한 시절이었죠. 둘 다 놓치기 힘든 선택이어서 정말 갈등이 많았더랍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정확하게 이거라고 짚어 주지 못하더라고요. 심지어 부모님 조차도요. 저 자신을 믿을 만큼 줏대가 있었다거나 명철하지도 못했고요. 제가 내린 선택이 과연 탁월한 선택일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그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선택이 힘들었던 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저를 평생 따라다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원망하든, 조언해 준 그 누구를 원망하든, 인생이 잘 풀리든 풀리지 않든, 후회라는 주머니가 늘 저를 따라다니며 약 올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의지할 것이 딱 하나밖에 없다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 자신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닌 절대자에게 결정권을 넘긴 겁니다. 그렇게 해야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 뒤로 정말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이제껏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봐도 그때 내린 판단이 제가 한 판단 중에 꽤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이제 아이에게 그때 제가 어떻게 답을 얻었는지 들려줘야 할 때가 온 걸까요?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이왕이면 자신이 걷고 싶은 길로 걷는 것이 좋겠죠. 살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디 인생이 제 맘대로 되고, 계획대로만 되겠습니까?

 

무엇을 하든 어디에 살든, 원하는 것을 향해 자신을 기꺼이 던져 시험해 볼 수 있는 고양된 정신력을 가진 자식이라면 그것으로 만족하렵니다. 원치 않는 길은 무슨 이유로든 걷지 않겠다는 용기와 의지가 있다면, 앞으로 그 녀석은 뭘 해도 혼자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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