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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Oct 04. 2017

#8.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엄마 맞아요???


지인:   아들은 대학교 한국으로 가기로 했어요?

:      네… 현재로는

지인:   복잡하시겠어요

:      이제 다 정리됐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한 번뿐인 인생,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죠. 누가 말리겠어요?

지인:   그렇긴 하죠….

:      제 인생이 아니라서 그런지 한편으로 exciting 해요

지인:   엄마 맞아요???

:      ㅋㅋ 엄마이기 전에 그냥 지구인이요

지인:   아들은 대범한 엄마 만나서 좋겠어요 ^^

:      각기 다른 인생을 사는.. ㅋㅋ 음 제가 좀 대범하긴 하죠

지인:   네 ㅎㅎ

:      골치 아픈 게 싫어서 그래요.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지인:   그게 현명하신 거죠

:      이제까지 너무 가두고 산 것 같아 확 풀어주고도 싶고

지인:   네 저도 거기에는 찬성이요

:      애들과 attach가 덜 돼서 그럴 거예요. 애들이 절 그렇게 키웠어요!!

지인:   ㅋㅋㅋ

:      다음 생에는 다른 엄마로 태어나고 싶어요~

지인:   ㅎㅎㅎ 벌써 다음 생 계획까지

:      근데 아직 다 안 살아봐서 맘이 바뀔 수도…

지인:   이번 생도 아직 그리 늦진 않았어요 ㅋㅋ

:      늘 희망은 많죠…


최근 지인과 나눈 문자메시지를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짧게 문자로 나눈 대화였지만, 지금 내 심정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지인인지라 마음속 그대로의 생각을 숨김없이 전했고, 내가 생각해 봐도 짧은 글 속에 담긴 내 생각이 압축된 것 같아 내가 보낸 문자를 다시 읽어 보니 한 번 더 정리되는 느낌이다.

 

엄마 맞아요? 이 질문이 제일 먼저 가슴에 와서 콕 박혔다. 내가 너무 솔직했나? exciting이라는 단어의 선택이 지나치게 과격했나? 짧은 순간이지만 나름 선택해서 고른 단어이고, 내 현재의 마음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단어라는 확신을 하고 고른 단어였다. 18년간 아들을 미국 땅에서 키워 놓고 한국으로 대학을 보내야 하는 엄마가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기대가 되고 흥분이 되는 걸 어쩌나? 걱정?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아들이 결정을 바꿀 일도 아니고 해서 부모로서 갖는 걱정은 가능하면 문제의 핵심에서 한 편으로 밀어놓고 보려고 했다. 걱정할 때 하게 되더라도 내 걱정이 현실적으로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리고 아들이 무엇을 하며 어디서 어떻게 살든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걱정하는 나를 달랬다. 아들이 하버드에 들어갔다고 해서 걱정을 안 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러고 나니 내가 마치 아들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들뜬다. 24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이라는 나라로 유학을 떠났던 그때의 내 마음처럼 말이다. 아들도 얼마나 흥분이 되고 exciting 할까?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엄마의 나라라는 곳에 가서 비슷하게 생긴 또래의 한국 아이들과 함께 대학이라는 낭만과 꿈이 있는 시절을 보낸다는 게 가슴이 뛸 일이 아니면 무엇일까 싶다.

 

아마도 지인은 내가 무척 고민과 걱정에 싸여 있으리라 생각했던가 보다. 끝끝내 아이의 마음을 돌려서 어떻게 해서든 바른길(?)을 가게 하려고 아이를 설득하는 엄마를 당연히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아들이 한국 대학이라는 옵션을 두고 고민했을 때 (합격 통지서를 받아 보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합격이 안 되면 어쩌나 그걸 걱정하기도 했었으니까. 어린 아들이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서 그 꿈이 좌절되었을 때 받을 상처가 내게는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래서 합격이라는 통지서가 날라 왔을 때 ‘아 이제 정말 이 일을 어쩌나?’ 하는 현실적 당혹감보단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아이가 행여 어떠한 이유로든 마음을 바꿔 먹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난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무모할 정도로의 강단과 의욕이 있기를 바라는 엄마였는지 모르겠다. 원하는 것이 있어도 여러 가지 이유를 따지고 계산해서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그래서 꿈과 야망의 날개를 접는 모습을 보는 것보단 무모하더라도 그 나이에는 꿈을 좇으며 날갯짓을 크게 지어보는 대범한 아들을 마음속 깊이 원했는지 모르겠다. 아들의 대범함에 나도 따라 대범해진 건지, 대범한 엄마에 아들도 대범한 결정을 내리게 된 건지 그 순서의 앞뒤를 따지기는 힘들겠지만.

 

아들의 결정을 지지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했었고, 아들의 결정이 여느 엄마들처럼 마냥 불안했다. 게다가 한국의 안보 정세까지 급속도로 안 좋아져서 로켓 맨 김정은의 핵 장난이 무척 신경이 쓰이는 요즘이었다. 미국에서 편안하게 학교 생활하면 좋을 것을,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에 가서 언어와 문화충격을 온몸으로 받을 테고, 어려운 공부까지 하겠다고 한 아들 녀석의 선택이 정말 한참은 잘못되어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다. 아직도 이 부분에 있어 아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는 결과를 모르니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왠지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것만은 분명한 느낌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한 아들이 걱정되고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을 다 접고서라도 아들을 지지해 주고 싶은 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는 그 용기에 있다. 설령 그것이 지름길을 놔두고 한없이 돌아가는 길을 바보같이 선택한 것일지언정, 아들의 패기 어린 마음과 어렵게 내린 그의 결정을 존중해 주고 싶다.

 

고등학교까지는 내 맘대로 아들의 삶에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구 그리려고 하더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갑자기 하얀 도화지를 통째로 주며 붓 통과 팔레트까지 아들에게 다 맡기는 그런 형국이 되긴 했다. 그래도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아들이 붓을 들고 자기 스스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을 막고 싶지 않다. 자신의 그림이 맘에 안 들어 도화지를 다시 사 달라고 할지 모르고, 원하는 색깔이 나오지 않는다고 애꿎은 물감을 탓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들 자신이 스스로 손에 붓을 쥐고 뭔가를 그려보고 싶어 하는 그 모습을 보는 게 그렇게 exciting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엄마 맞아요?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아들이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 가슴 떨리며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이제 혼자서 그려야 하는 그림이라면, 빠르면 빠를수록 습작의 연습을 하는 것이 앞으로 나올 아들만의 작품을 위해 나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붙잡고서.

 

엄마라는 길에 하나의 정석만이 있는 건 아니지 싶다. 이런 아이 저런 아이가 있듯이 엄마의 종류도 다양하고 그래야 할 것 같다. 난 내가 아들을 내 방식대로 키우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데, 아들이 첫째 내게 그렇게 하도록 가만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난히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이어서 3살 때부터 사춘기 아들을 키운다는 생각을 들게 했으니까.

 

보통은 부모가 자식을 키웠다고 생각하지만 (보통은 또 그렇게 아이들이 순순히 부모의 뜻을 따르지만), 때로는 아이들이 엄마를 만들어 낸다고 나는 믿는다. 바로 내 경우가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과 부대끼며 서로의 모난 곳을 깎고 깎아 내는 풍화 작용을 통해 지금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본다. 또 다른 빛깔의 다른 모양을 가진 아이는 다른 모습의 엄마를 만들 것이다. 두 사람 간에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모든 인간관계 형성의 기본이 되듯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 이치가 그대로 작용한다고 본다.

 

아이들이 나를 이런 엄마로 만들었다. 나도 현재의 아이들을 만든 장본인이고, 아이들도 현재의 나를 만든 장본인이다. 우린 이런 엄마, 이런 아이로 서로 반반씩 함께 지난 세월을 보냈으니까.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의 엄마가 될 것인가? 그건 내가 너무도 궁금해하는 부분 중의 하나다. 사람과의 관계인지라 아이들과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길 원하고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마음 그대로 아이들이 나를 괜찮은 엄마로 만들어 주길 기대해도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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