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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Oct 14. 2017

#9.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먹어라 아들아, 근데...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나서 제일 궁금한 게 아침 수업에 지각하지 않고 제대로 수업을 듣고 있는지였다. 아침잠이 워낙 많을뿐더러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를 아무리 크게 틀어 놓아도 잘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라 걱정이 말도 아니었다. 걱정되어 아침 수업 빠지지 않고 잘 듣고 있냐고 물어보면 늘 대답은 성의 없게 잘 하고 있다는 말만 들려온다. 물어보는 내가 어리석지 싶다. 설마 아이들이 아침에 못 일어나서 수업을 벌써 몇 개나 놓쳤는지 모르겠다고 진실을 말해준다 해도, 거짓말로 잘 하고 있다고 둘러대도 똑같이 의심스럽고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라 내 마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답은 하나. 묻지 않는 게 최선이다. 

 

아침 수업도 그렇지만, 일과를 마치고 밤에 기숙사로 일찍 돌아오고 있는지 그것도 궁금하긴 하다. 너무 밤늦게 다니다가 길거리에서 안 좋은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늦게 자서 다음 날 수업에 지장이 생기면 어쩌나 부모의 걱정은 끝이 없다. 궁금한 것으로 따지자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교회는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는지, 주말에 친구들이랑 지내는지 아니면 혼자서 우두커니 빈 시간을 때우는지, 가끔 근교로 시내 구경을 나가기도 하는지 아이들의 행동반경이 제일 궁금하다.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알 방법은 하나도 없다. 나처럼 불안하고 궁금한 부모에게 대학이 아이들의 행동반경을 CCTV로 찍어 실시간으로 보여준다면 거액을 내서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궁금증도 시간이 지나니 차차 식어 가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 아이들의 행동반경을 알 수 있는 단서를 하나 찾았다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현금 카드가 어느 시각에 어디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추적해 보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온라인 계좌에 들어가 내 은행 계좌 아래 딸린 아이들의 지출 내용을 살핀다. 월요일엔 맥도널드에 가서 뭘 먹었구나, 음 Rite Aid에는 왜 갔을까? 비용이 적은 걸 보니 캔디를 한 봉지 사 먹었나? 아, 어젠 북스토어에 가서 학용품을 샀나 보네? Seoul Market이라는 업소 이름이 찍혀 나온 걸 보니 한국 마켓에 가서 라면이나 과자를 샀나? 가끔은 인터넷으로 옷을 구입했는지 인터넷 스토어에 지급된 금액도 나온다. 바지를 샀는지 셔츠를 샀는지 뭘 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날씨가 추워져서 옷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전혀 알 수 없는 업소 이름이 나오길래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온라인 게임 이름이 떴다. 기겁해 아이에게 즉시 문자를 보내며 단단히 주의를 주기도 했다. 불과 5불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게임하면서 돈까지 쓰면 안 된다고, 그러다가 도박으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아이들의 카드 내역을 보는 일은 나의 주중 일과가 되었다. 마치 범인의 행동거지를 카드 지출을 갖고 수사망을 좁혀 나가는 탐정이라도 된 듯이 말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또 돈은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마치 추리소설의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가듯 흥미진진하다. 유일하게 아이들을 추적할 수 있는 길이자, 아이들이 이미 지나갔던 곳을 시간 여행하듯 쫓아가 보는 수단이기도 하니까. 

 

며칠 전에도 현금 카드의 내역을 살피고 있었다대부분의 지출이 10불에서 15불을 넘지 않는 비교적 적은 비용들이 대부분인데, 그중에 50불이 넘는 지급 내역이 떴다. 한국 레스토랑이다. 주말에 학교 근처 한국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왔나 보다. 그런데 아무리 먹어도 50불 이상의 가격은 혼자 먹는 밥값 치고 너무 많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레스토랑에 가서 먹고 아들 녀석이 허풍을 떨며 자기가 밥값을 냈나 싶기도 했다. 명세서를 읽어 주는데 남편이 무슨 대학생이 돈을 물 쓰듯 쓰냐고 노발대발이다. 당장 애한테 전화해서 어디에 쓴 돈인지 추궁해 보란다. 나도 같은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대학생이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식권을 놔두고 굳이 레스토랑까지 가서 뭔가를 사 먹는다는 것도 그렇고 (내 정서인지 모르겠지만), 자기만 한 그릇 먹으면 모를까 다른 친구들 밥까지 무슨 재벌 집 아들이라고 되는 양 돈을 물 쓰듯 쓰는 것도 못마땅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해서 돈을 썼다고만 볼 수 없는 게, 카드로 대신 지급하고 같이 간 친구들로부터 현금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전화를 해서 사정을 확인하자니, 부모로서 치사하게 먹는 걸 갖고 추궁하는 것도 우스워 일단은 언성을 내는 남편을 달랬다. 다음에 돈을 아껴 쓰라는 말을 적절한 기회에 하겠다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그러고 나도, 남편은 자꾸 아이가 괜히 돈으로 친구들 앞에서 허영이라도 부리는 게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그 말도 일리가 없진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불쑥 내 유학 시절이 생각났다그 당시 우리 집안 형편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늘 내 은행 잔고에 넉넉한 생활비를 보내 줬었다. 컴퓨터를 새로 사야겠다고 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송금을 하셨다. 생활비가 넉넉해 머리 식힐 겸 쇼핑도 가끔 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새로 나온 옷도 철마다 한 두 가지는 살 수 있었다. 돈이 없어서 먹고 싶은 걸 못 사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여윳돈이 남아 몇 달 치 용돈을 모아 싸구려 중고차를 엄마 몰래 구입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때 내 생각을 하니, 아이들이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 돈 몇 푼 쓴 걸 가지고 추궁하는 게 더 멋쩍어졌다. 유학 시절 돈이 궁해서 어렵게 유학 생활을 했으면 그렇지 않아도 서글픈 유학 생활이 얼마나 더 우울해졌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엄마는 나에게 어디에 돈을 얼마 썼냐, 아껴 써야 한다 등등 잔소리 한마디 하지 않으셨는데 나를 전적으로 믿어 주셨던 것 같다. 

 

이런 내 이야기를 핑계 삼아 남편에게 전하며 아이가 먹은 음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거기에 한 마디 더 보탰다. 그나마 돈이 전혀 없지 않아서 아이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지만 남편은 아직도 많이 못마땅한 모습이다. 지지 않을 기세로 한 마디 일침을 놓는다. "난 대학교 때 레스토랑 가서 뭐 하나 사 먹어 본 적 없다고. 대학 졸업하고 자기를 만났을 때 데이트하느라 비싼 레스토랑에 간 게 처음이라고." 역시 부모도 각자 자라 온 가정환경에 따라 이해하는 것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나 보다. 아들이 매일 같이 고기 파티를 하는 게 아니니 난 엄마로서 아이가 맛있는 거 먹는 게 그냥 흐뭇하다. 나의 멈췄다고 생각했던 모성애가 오작동하기 시작한 걸까?

 

남편에게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아들에게 전한다. 

 

"녀석, 먹고 싶은 거 챙겨 먹을 줄도 알고… 그래, 맘껏 먹어라. 엄마가 옆에서 해 주지도 못하는데 먹고 싶은 거라도 실컷 먹어야지. 하지만 네가 친구들 것까지 다 내는 건 좀 자제하거라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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