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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Sep 19. 2017

영국 신사의 유산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로 익숙한 찰스 디킨스의 장편 소설 <위대한 유산>을 읽었다.


어느 번역본에는 <막대한 유산>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원제목은 <Great Expectations>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영어 단어 expectations를 inheritance라는 의미의 ‘유산’으로 번역한 것이 맞는지 의아했다.‘유산’ 앞에 ‘막대한’이라는 형용사까지 붙였다면 재산 상속의 유산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싶어 번역어에 대한 찜찜함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책의 스토리에 주인공이 받게 되는 유산이 중요한 사건이기에 딱히 틀리지 않은 번역이라 믿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유산’이 그 유산을 말하는 것일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디킨스가 유산이라는 말을 꼭 쓰고 싶었다면 inheritance나 bequest라는 적절한 단어를 놔두고 굳이 expectations (그것도 복수형으로)의 단어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책을 다 읽고 나니, 번역 제목으로 <위대한 유산>은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를 자세히 짚어보고자 한다.  



소설의 주인공 핍은 어느 날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의문의 은인으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받도록 계획된다. 유산은 주인공 핍에게 막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주인공 핍의 외적 변화와 더불어 거침없이 달라져 가는 그의 성격과 내면의 상태를 읽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종신형 죄수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줄 정도로 순박했던 어린아이 핍이 갑자기 많은 돈을 유산으로 받게 되어 가난한 대장장이에서 부유한 영국 런던의 신사로 변모해 간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했던 아이의 심장도 새 옷을 갈아입듯 도시 생활에 맞게 차갑게 굳어져 간다. 핍도 달라진 자신의 변모를 인식하며, 두고 온 가족 (특히 친구 같은 대장장이 매형 조)에 대한 미안함과 배은망덕함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가시방석처럼 불편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신사가 되는 길에 시골뜨기가 한 때 가졌던 마음의 양심이란 자리 잡을 틈이 없다.  


유산은 또한 주인공 핍의 흙수저 운명을 금수저 운명으로 한순간에 격상시켜 준다. 1800년대 중반 영국의 전성기 빅토리아 시대에 산업혁명으로 인해 신분에 상관없이 부를 축적하게 된 자본 계급층이 급증했던 시기적 배경과 맥락을 같이 한다. 영국의 신사는 빅토리아 시대에서 유래한다고 하니, 주인공 핍이 신사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런던에 가서 교육을 받는 일은 불가피하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게 돈인지라 주인공 핍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절제한 낭비와 향락에 빠져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시골 촌뜨기의 때를 벗고 하루아침에 영국 신사가 되기는 쉽지 않지만, 수중에 거액의 돈이 쥐여 줬을 때 흥청망청 쓰는 일은 물 쓰듯 쉽기만 하다. 돈을 탕진하는 일이야 사실 큰 문제도 아니다. 진실하고 따뜻했던 마음씨를 낭비하고 쉽게 팔아 치우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핍의 돈 씀씀이는 마음의 씀씀이와 함께 자라지 못했는데, 아무튼 핍은 그렇게 도시형 인간으로 변해 갔다.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신사 교육의 허점인 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유산은 또한 핍에게 신분 상승의 기대를 하게 했다. 유산으로 인해 격상된 자신의 위치가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아름다운 여인 에스텔러와의 만남을 보장하리라 기대한다. 핍은 자신의 상속이 에스텔러의 양어머니 미스해비셤으로부터 왔다고 철저히 믿었는데, 자신을 에스텔러의 짝으로 삼기 위한 미스해비셤이 유산을 통해 핍에게 신사 교육을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라한 대장장이의 과거를 버리고 하루빨리 신사가 되는 것이 미스해비셤의 기대에 보답하는 길이라 믿고, 핍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이렇듯 유산은 핍에게 과거에 꿈꾸지 못했던 꿈을 꾸도록 지위를 허락한다.


뻔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잠깐 돈의 위력과 그 위험에 대해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꿈꿀 수 없었던 것을 꿈꾸게 해 준다니, 돈의 위력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돈 앞에 인간이 노예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꿈도 꾸지 못하는 인생의 덫에 걸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된다. 돈 이외의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다면, 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대다수의 사람이겠지만), 돈이 삶의 목적을 쉽게 찾아 줄 수도 있다. 돈이 많다면야 무슨 고민이겠냐만, 우리 대부분은 그런 형편이 되기 쉽지 않기에, 돈 없이도 삶의 기대를 놓지 않고 살 방법을 찾는 일이 중요해진다. 물론 그 길에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가 따르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겠지만.

  

최근 어느 친구가 했던 쓸쓸한 말이 떠오른다. 친구는 앞으로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삶 때문에 이만큼 산 것으로 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갑자기 흙수저의 삶이 금수저로 바뀔 것으로 보이지 않고 그래서 이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은 힘든 일임을 믿기에, 그냥 여기서 생이 마감되어도 별로 섭섭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어떻게 들으면 자족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마음에 더 이상 꿈꾸기를 시도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쨍하고 해 뜰 날이 내게는 더 이상 찾아올 것 같지 않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살아 있는 생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수 없다는 희망의 포기가 우리의 생을 갉아먹으며.


돈이 인생의 최대 목적이라면 돈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래서 돈 없이도 행복하고 짱짱하게 빛나는 삶을 우리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돈보다도 훨씬 값지고 중요한 이유이겠다.


아무튼, 주인공 핍은 에스텔러와 맺어질 자신의 찬란한 운명을 기대하며 맘껏 기대에 들뜬다. 비록 그 기대가 물거품처럼 헛된 것이 되었을 망정.  


유산이 핍을 꿈꾸게 하고 꿈에 들떠 기대하게 했다면, 그가 받은 유산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과 기대를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유산은 누군가에게 기대를 낳고, 또 다른 누군가의 기대는 유산을 남긴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유산이 가져온 여러 가지 엄청난 ‘기대’나 ‘바람’(expectation의 의미)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대신 이루어 줄 대상으로 핍이 선택된다. 핍에게 유산을 주기로 한 은인은 핍에게 진정한 신사로 성장하길 누구보다도 바랐다. 비록 자신은 종신 유형수의 쓰레기 같은 존재로 살아가지만, 그에게 생의 유일한 기쁨은 런던의 한 멋진 신사를 키우고 있다는 보람이다. 춥고 배고팠던 자신의 어두운 과거에 어린아이 핍이 보여준 사랑이 유형수의 가슴에 아름다운 꿈을 싹트게 한 것이다. 그는 사랑을 갚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핍을 훌륭한 신사로 키우는데 아낌없이 바친다. 마침내 자신이 이룬 꿈을 보기 위해 핍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진정한 신사는 핍이 아니라 신사를 키운 죄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핍은 자신에게 유산을 준 자가 미스해비셤이 아니라 어려서 만났던 죄수였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심지어 불쾌하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흉측하고 괴물 같았던 죄수의 돈에 의해 자신이 이제껏 의탁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에 균열을 일으킨다. 무엇보다도 에스텔러의 양모인 미스해비셤이 비밀리에 계획한 일이라고 믿었던 확신에 금이 간 것을 핍은 괴로워했다. 그토록 꿈꿔왔던 에스텔러와의 결합이 혼자만의 상상으로 비참하게 마무리해야 했기에.


타인의 기대는 이루었지만, 대신 자신의 꿈이 깨어지는 아픔을 주인공 핍은 느껴야 했다. 누군가 차지한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으로 되돌아오듯이 말이다. 자신의 재산으로 훌륭하게 성장한 핍을 바라보는 죄수의 마음이 한없이 뿌듯했던 것과 핍이 가진 감정은 매우 상반되다. 신사와 시골뜨기의 차이만큼. 이 사이에서 핍은 극도의 혼란을 느끼며 자신이 죄수보다도 초라한 인간이었음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된다.   


주인공 핍은 결국 재산을 온전히 상속받지 못했고 (죄수의 붙잡힘으로 그가 가지고 있던 재산도 함께 몰수된다), 그렇게 기대했던 에스텔러와의 결합도 수포가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얻게 된 값진 것이 있는데 바로 잃어버렸던 인간성에의 회복이다.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것. 돈 때문에 잃었던 것. 유산의 거품이 걷히고 얻게 된 또 다른 소중한 유산, 그건 자신 안에 남아있던 일말의 인간성 복원이다.


죄수로 쫓기고 족쇄에 묶여 상처를 입고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핍의 은인이 되고자 했던 그 한 아름다운 영혼을 보며, 핍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감사와 관대함의 감정을 긴 세월 동안 조금도 변함없이 간직해 온 인간의 아름다운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인간의 모습을 죄수의 모습 속에서 마침내 발견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시골의 대장장이로 묵묵히 살아가는 매형 조에게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미를 느낀다. 유산을 잃고 의지할 곳 없던 핍을 간호해 주며 자신을 지켜 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천사처럼 아무런 대가 없이 행하는 매형의 사랑. 어렸을 때 핍을 누이의 구박에서 늘 보호하고 지켜주었듯이 그렇게 진실한 애정으로 핍을 보살피는 매형의 사랑을 직접 체험하면서 그것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핍은 깨닫게 된다.


진정한 영국 신사로의 제대로 된 변모가 드디어 핍에게 시작되는 순간이다. 비록 돈을 잃고 사랑을 잃고 혈혈단신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핍은 신사적으로 되어 간다. 잃었던 인간애의 마음을 되찾은 신사 말이다. 마음이 부유한 진정한 부자가 된 것이다. 물질적 유산이라는 해프닝이 핍에게 가장 고귀한 마음과 정신의 유산을 남긴 셈이다.


그래서 <위대한 유산>의 제목은 탁월한 번역이 아닐 수 없다. 돈과 정신의 유산을 동시에 포함하는 단어로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으니 말이다.  




돌고 도는 것이 돈이다. 누군가한테서 온 돈이 나를 거쳐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 돌아간다. 돈과 비슷한 것이 누군가에게 베푼 사랑과 인간애가 아닐까? 나를 거쳐 타인에게 흘러간 사랑은 돌고 돌아 자신에게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비천한 누군가를 도와준 사랑이 핍에게 커다란 유산이 되어 돌아올 수 있었던 이 감동적인 소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돈과 사랑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돈은 쉽게 오고 쉽게 우리를 떠나가지만 사랑은 행하기에 결코 쉽지 않지만, 한 번 베푼 사랑은 쉽게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신사로 성장한 핍을 통해 디킨스가 21세기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우리가 잊지 말고 물려받는 데 성공해야 할 <위대한 유산>, 또 다음 후세에게 영원히 전수할 <위대한 유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특히 테러와 폭력과 전쟁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2017년 이 9월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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