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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Oct 22. 2017

#11.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쌍둥이 컨스피러시?

엊그제 마을도서관을 걸어 나오면서 평소 걷지 않던 집 앞길 35가를 걷다가 문뜩 생각난 것이 있었다. 길가에 있는 주유소를 마주하고 보니 옛 기억에 가슴이 뜨끔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하늘이 순간 노랗게 변해버리는 줄 알았으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금 웃음이 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흐른 세월 덕분이고 해피엔딩의 결말 때문이다.

 

아마도 아이들이 초등학생 1~2학년 정도 어린 시절이었을까? 퇴근 후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가던 평범한 어느 저녁이었다. 차에 기름이 떨어져 주유하기 위해 가까운 주유소에 들렀다. 평소 자주 가는 주유소는 아니었다. 참고로 미국의 주유소는 주로 셀프서비스로 운영된다.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직접 나가서 주유해야 한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빠져나와 주유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늘 그렇듯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서둘러 주유를 마치고 운전석으로 돌아와 시동을 걸고 다시 집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주유소와 집과의 거리는 도보로 약 15분 정도에 거리상으로는 0.5마일 정도다. 신호등에 걸리지만 않으면 차로 5분 안에 도착할 비교적 짧은 거리다.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려고 뒤를 돌아본 순간, 나란히 뒷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아이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쌍둥이 하나가 귀신같이 사라지고 없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심지어 장난을 치는가 싶어 트렁크를 살펴도) 덩그러니 아이 한 명만 좌석 벨트를 맨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둥 앉아있을 뿐이었다. 맙소사! 머리카락이 쭈뼛 섰고 정신이 혼미해 말문이 열리는 데 몇 초가 흘렀을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로 “OO야, XX 어디 갔어? 어떻게 된 거야? XX가 어디에 있냐고?” 남아 있던 아이를 다그치며 물었다. 나머지 쌍둥이 하나는 아까 주유소에서 엄마가 주유할 때같이 따라 내렸다는 거다. 아이의 표정이 의외로 담담하다. 당연히 엄마가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몰랐냐는 투의 태연한 얼굴이다. 이런… 그러면 진작 엄마한테 말을 해 줬어야지.

 

나는 급히 차에 시동을 켜고 운전대를 허겁지겁 잡은 채 왔던 길을 다급히 돌아갔다. 아이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목격한 바가 없었다. 아이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봤든 못 봤든, 차에 두 아이가 모두 잘 탔는지 확인도 안하고 부랴부랴 차를 몰고 온 나 자신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한심한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주유소와 집과의 거리가 그나마 단거리였기 망정이지 한참을 달려 먼 곳에 와 버렸더라면 어쨌을까 생각만 해도 앞이 캄캄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거지? 정말 믿기지 않았다. 너무 놀라고 걱정이 돼 나 자신의 부주의함을 탓할 겨를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 몰려와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고, 가슴은 쉴 틈 없이 방망이질하듯 뛰었다.

 

미국은 초등학생 1-2학년이라 봤자 겨우 만 6-7세의 어린 아이다. 미국에서 이 나이의 아이들은 혼자서 집 밖을 걸어 다니지 않을 정도로 매우 통제된 공간에서만 보호받으며 자라게 된다. 13세 이하의 나이 어린아이를 집 안에 혼자 있게 방치만 해도 부모가 아동 유기죄로 경찰에 잡혀가는 나라다.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아이가 보호자 없이 혼자 걸어 다닐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있을 수 없다. 혼자 있는 아이를 보면 걱정이 된 주변에서 아이에게 보호자가 있는지 확인하거나 경찰서에 바로 신고하려 들지 모른다.

 

미국이란 곳이 아무리 가까운 곳도 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산책을 위해 일부러 집 밖을 나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걸어서 어딘가를 가는 일이 극히 드물다. 집 밖을 나선다는 건 동시에 차를 타고 나간다는 의미와 같다. 차를 타고 슈퍼에 가고, 차를 타고 학교에 가고, 차를 타야 커피점에도 간다. 이렇듯 차를 타야 어디든 갈 수 있기에 아이들이 집 밖을 혼자 걸어 다닐 일이 없다. 그래서 아이 들은 자기가 사는 동네라도 길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그런 아이들에게 동네 슈퍼에서 집을 찾아 혼자 오라는 건 어린아이에게 혼자 차를 운전해서 오라는 어불성설이.

 

그런 멋모르는 아이를 낯선 주유소에 홀로 놔두고 차 문을 매몰차게 닫고 떠나가 버렸으니 대형 사고를 친 셈이다. 홀로 남은 아이가 말도 없이 성급히 떠나가는 차의 뒤 유리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엄마가 일부러 나를 이 낯선 주유소에 버리기라도 작정한 것일까? 왜 나를 버리고 가는 거지? 여긴 기름 냄새에 차만 오고 갈 뿐 내가 있을 곳도 아닌데’ 하면서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고도 남았을 거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 짧은 0.5 마일의 거리가 숨 막히도록 멀게 느껴졌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차라리 내려서 뛰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조급한 마음에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

 

7살 난 아이는 동네 지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엄마 차의 뒤꽁무니를 100m 달리기의 속도로 따라온다고 해도 40마일로 달리는 차와 경주해 집을 찾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 차를 쫓아오다가 다른 길로 잘못 들어 길을 잃으면 어쩌지? 아이가 주유소에 버려진 사이 누가 아이를 잡아 태워 유괴라도 했으면 어쩌지?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경찰서로 데려간 건 아닐까? 주유하는 동안 아이를 본 기억이 없는데 아이가 누구에게 계획적으로 납치된 게 아닐까? 걱정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뒷좌석에 앉은 다른 아들 녀석을 원망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 네 잘못은 아니지, 확인하지 않은 엄마 잘못이지 속으로 자책하면서도 쌍둥이 형제가 옆좌석에 타지 않았는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추궁하지 않을  없었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그 당시 차에 앉아 있던 아이가 뭐라고 내게 대꾸를 했었는지 도무지 기이 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했었어도 귀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 차를 몰았다. 아이를 찾으며 길 양옆을 분주히 살폈다. 혹시 아이가 용케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집 앞길을 지나 큰 대로에 들어서 좌회전을 하고 주유소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을 즈음, 저 멀리서 두 팔을 양옆으로 정신없이 흔들며 뛰어오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들은 마치 엄마 차의 꽁무니를 놓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엄마가 떠난 방향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음박질해 오고 있었다. 급히 차를 돌려 아이가 달려오는 쪽에 주차하고 내렸다. 아이는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엄마를 보고는 달리기를 멈추고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난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에 아이의 눈망울부터 살폈다. 다행이도 울지는 않은 모양이다. 달리기에 숨이 차서 씩씩거리며 아이는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이를 얼른 차에 태우고 자리에 앉혔다. 안전벨트를 직접 내 손으로 채워주면서.

 

아이의 얼굴에 걱정했던 불평이나 원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재미난 게임이라도 하고 난 뒤 흥분된 모습이다. 백미러로 자리에 앉은 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그렇게 고맙고 대견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엉터리 엄마인 나는 아이에게 차마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대신 나는 엄마한테 말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리면 안 된다는 주의만 아이에게 힘없이 전달했던 것 같다.


나중에 자세히 두 아이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았다. 아이는 내가 주유를 다 마치고 운전석에 올라타려고 걸어가는 그 순간, 하필이면 그때 차에서 내렸던 것 같다. 아이가 왜 내렸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엄마가 바로 거기 있었으니까 자기도 내려서 구경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바람을 쐬러 차에서 내렸는지, 엄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차에 내렸는지, 주유소 가게에서 사탕 사 달라고 말하려고 내리려 했는지, 그 이유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아마 너무 놀란 나머지 아이를 찾은 기쁨에 취해 어떤 이유로 아이가 차에서 내렸었는지는 귀담아듣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주유소를 지나칠 때면 아이가 양팔을 힘차게 흔들며 뛰어오던 조그만 덩치의 아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얼마나 열심히 뛰고 있었는지 멀리서 봐도 아이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선명했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달렸을까?

 

‘이것 참, 엄마는 도대체 어쩌라고 나를 주유소에 놓고 가버린 거지? 이렇게 가버릴 줄 몰랐는데, 내리자마자 차가 떠나버리니 참 어이가 없네. 이런, 내리지 말고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을걸. 엄마를 만나면 왜 내렸냐고 혼날지 모르겠군.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찾아가는 길이라도 사전에 익혀 두는 건데. 엄마를 못 찾으면 어쩌지? 집에 찾아가는 길도 모르는데 이 방향으로 엄마 차가 떠난 건 확실한데 그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다 물어볼 수도 없고, 쌍둥이 녀석은 왜 내가 타지 않았다고 엄마한테 말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혼이 났으면 해서 아무 말하지 않았을까? 설마 이 녀석 이김에 나를 버리고 엄마를 혼자 독차지하려고?’


이런저런 걱정으로 아이의 가슴이 콩알처럼 작아졌을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내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세상에 이렇게 몹쓸 짓을 아이에게 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엄마도 있다니. 쯧쯧 내가 생각해도 해외 뉴스 토픽감이 아닌가 싶다.

 

근데, 정말 궁금하다. 좌석에 앉아 있던 아이는 제 쌍둥이 형제가 자리에 타지 않았던 걸 알면서도 왜 내게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걸까? 이 글을 쓰다 보니 더 궁금해져 현장에도 없었던 남편을 기용해 수사관처럼 물었더니, 역시…“이 사람아, 걔가 말했는데 자기가 못 들었겠지. 왜 애꿎은 아들을 탓하고 그래?”

 

쌍둥이 음모라도 있었을 거로 생각했던 이 기막힌 엄마, 해외토픽에 실어 모든 어머니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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